어머니 10년 모시기, 난 60점짜리 아들이 되기로 했다

중앙일보

입력 2019.12.07 07:00

[더,오래] 이한세의 노인복지 이야기(37)

요즘 새로운 여행 콘셉으로 해외에서 한 달 살아보기가 유행이다. 정신없이 겉모습만 둘러보는 관광을 넘어 방문 국가의 문화를 이해하고 동시에 나의 삶을 되돌아보는 프로그램이다. 이 기간에 여러 곳을 돌아다니기보다 한정된 지역을 정해 ‘관광’이 아닌 ‘살아보기’를 하는 것이다. 태국의 치앙마이에서 한 달 살아보기, 일본의 가고시마에서 한 달 살아보기 등이 그 예다.

나에게도 ‘살아보기’를 통해 새로운 경험의 기회가 주어졌는데 바로 ‘연로하신 어머니와 같이 살아보기’다. 지난해까지는 관광 중 식사하는 것처럼 어머니 집에 잠시 들려 저녁만 함께 먹었던 것이 전부였다. 이제 늦은 감이 있지만 어머니를 이해하고 나의 삶을 되돌아보는 ‘어머니와 같이 살아보기’를 시작하고 있다.

지난해까지는 어머니 집에 잠시 들려 저녁을 함께 먹었던 것이 전부였지만, 이제 어머니를 더 이해하고 내 삶을 되돌아보기 위해 ‘같이 살아보기’를 시작했다. [사진 pexels]

지난해까지는 어머니 집에 잠시 들려 저녁을 함께 먹었던 것이 전부였지만, 이제 어머니를 더 이해하고 내 삶을 되돌아보기 위해 ‘같이 살아보기’를 시작했다. [사진 pexels]

외할머니의 천수가 95세였음을 고려한다면 나의 어머니는 외할머니의 95세 천수를 훌쩍 뛰어넘어 100세를 넘기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 올해 어머니가 87세니 향후 적어도 10년 이상의 ‘어머니와 같이 살아보기’가 될 것이다.

며칠간의 여행이 100m 전력질주라면 해외에서 한 달 살아보기는 1000m 오래달리기에 견줄 수 있고, 10년 이상 살아보기는 40㎞가 넘는 장거리 마라톤이다. ‘어머니와 같이 살아보기’는 나에게는 마라톤이다. 마라톤은 짧은 거리라도 전력질주는 금물이다. 100m 전력 질주하고 지쳐서 100m는 걷다가, 또 100m를 전력 질주하는 방식으로 달렸다가는 완주가 어렵다. 마라톤은 빠르지 않더라도 자기 페이스에 맞추어 완급을 조절하며 꾸준히 달리는 것이 노하우다.

‘어머니와 같이 살아보기’에도 자기 페이스가 필요함을 알게 되었다. 마라톤에서 속도 완급을 조절하듯 ‘어머니와 같이 살아 보기’에서도 감정 완급을 조절하고 있다. 나의 감정 완급 조절의 지침은 ‘무엇을 무리하게 잘해 주려는 시도’를 조심하는 것이다. 자신의 감정적 역량을 넘어 무리하게 잘해 주는 행위를 시도하면 보상심리가 작동해 마라톤에서 오버페이스하듯 나중에 탈이 날 가능성이 높다. 무리하기보다 소탈하지만 내가 감정적으로 감내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무엇을 해 줄 때 감정까지 평온해지는 완전한 기브(give)가 되는 것 같다.

아내와 함께 해외출장을 갈 일이 있어 어머니가 일주일 정도 혼자 있게 되었다. 아내는 죄송한 마음에 며칠에 걸쳐 온갖 음식을 준비해 플라스틱 통에 정리하여 냉장고에 차곡차곡 쌓아 두었다. 출국 전날 냉장고에 쌓아둔 음식을 어머니에게 하나하나 설명하는 세심함도 잊지 않았다. 어머니는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였고, 내 걱정하지 말고 잘 다녀오라고 우리를 안심시켰다.

일주일 후 집에 돌아오니 냉장고에 있는 음식 대부분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어머니는 예전 15년간 혼자 지낼 때처럼 두유와 떡, 그리고 약간의 밥과 밑반찬으로 지난 일주일을 보낸 것이다. “그렇게 정성 들여 많은 음식을 준비해 드렸는데 어쩌면 거의 드시지도 않고...” 우리는 많이 속상해했다. 혹시 어머니가 혼자 남겨진 것이 불만스러워 일부러 준비해 드린 음식을 거들떠보지도 않은 것일까?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아내와 함께 해외출장을 갈 일이 있어 어머니가 일주일 정도 혼자 있게 되었다. 아내는 죄송한 마음에 온갖 음식을 냉장고에 차곡차곡 쌓아 두었는데, 돌아오니 음식 대부분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사진 pxhere]

아내와 함께 해외출장을 갈 일이 있어 어머니가 일주일 정도 혼자 있게 되었다. 아내는 죄송한 마음에 온갖 음식을 냉장고에 차곡차곡 쌓아 두었는데, 돌아오니 음식 대부분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사진 pxhere]

그 이후 두 번째로 집을 비우게 되었을 때는 어머니를 위해 준비한 음식의 양과 종류를 반으로 줄였다. 물론 그 정도로도 내가 보기에 어머니에게 충분하고 넘치는 양이었다. 어머니는 우리가 처음 해외 출장으로 집을 비운 것처럼 여전히 두유, 떡, 간단히 밥과 밑반찬으로 식사했다. 대부분의 음식이 냉장고 안에 그대로 남아 있었지만 아내의 속상함은 첫 해외출장 때보다 다소 줄어들었다. 그리고 “왜 준비해 드린 음식을 드시지 않지?”라는 의문이 다시 들었다.

나는 어머니와 단둘이 식사를 하게 되어 궁금한 마음에 넌지시 물어보았다. “어머니, 저희가 해외출장 때 집사람이 이것저것 음식을 많이 준비해 드렸는데 왜 드시지 않았나요?” 어머니는 웃으면서 “혼자 있으면 입맛이 없단다. 나 먹자고 냉장고에서 플라스틱 통 꺼내 그 안에 있는 음식을 접시에 담는 것 자체가 귀찮기도 하고.” 그러면서 미안했는지 겸연쩍어했다.

어머니는 우리가 두 번째 집을 비우게 되었을 때 어머니 드시라고 준비한 음식의 양과 종류가 반으로 줄어든 사실조차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는 첫 해외 출장 후 집에 돌아와 많이 섭섭해했고 마치 무슨 복수(?)라도 하는 것처럼 두 번째 출장 때에는 음식 준비를 반으로 줄였다. 그렇지만 어머니에게는 우리의 첫 번째 출장과 두 번째 출장 전 달라진 음식 준비가 큰 의미가 없었다. 그렇게 정성을 들여 많이 준비했는데 드시지 않다니! 아무런 잘못도 없는 어머니를 거론하며 그저 우리가 감정적으로 섭섭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머니 많이 드세요.” 아내는 자주 고등어 속살이나 연어샐러드 등 손이 약간 불편한 어머니가 집기 어려운 음식을 떠서 어머니 접시에 더 담아 드리곤 한다. 어머니는 되었으니 너희들 많이 먹으라고 하면서도 좋아한다. 그러다가 간혹 부담스러운 눈빛으로 접시를 바라보며 식사를 하는 손이 느려지는 경우가 있는데 속이 안 좋거나 어머니 접시에 담긴 음식이 너무 많을 때다. 이럴 때 우리는 주저하지 않고 “어머니 그만 드셔도 돼요”라고 말하게 되었다. 어머니는 “며느리가 정성껏 해 주었는데 남기기 미안해서”라고 말을 흐리지만 본인의 식사량을 넘어 억지로 먹어 탈이 나기보다 남은 음식을 버리는 쪽이 어머니를 위해 더 좋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친구에게 비싼 선물을 사 주었는데, 그 친구가 그 선물을 다른 사람을 주든 그것은 소유권을 가진 그 친구가 결정할 몫이다. 일단 주었으면 내가 주었다는 감정의 소유권까지도 완전하게 이전시켜 주자. [사진 pixnio]

친구에게 비싼 선물을 사 주었는데, 그 친구가 그 선물을 다른 사람을 주든 그것은 소유권을 가진 그 친구가 결정할 몫이다. 일단 주었으면 내가 주었다는 감정의 소유권까지도 완전하게 이전시켜 주자. [사진 pixnio]

무엇을 해 주었을 때는 받은 사람을 위해 마음과 감정까지 소유권을 확실히 이전해 주어야 한다. 행여 보상심리가 준동하면, 보상심리가 작동하지 않을 만큼 내 감정의 역량에 맞추어 그만큼만 주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친구에게 비싼 니트 옷을 사 주었는데 그 친구가 옷을 입든, 안 입든, 설혹 그 옷이 싫어 다른 사람을 주든 그것은 소유권을 가진 그 친구가 결정할 몫이다. 행여 이러한 친구의 결정이 섭섭하다면 니트 옷을 겉으로는 주었지만 니트에 대한 소유권을 여전히 내가 행사하려고 하는 모습이 된다.

감내할 수 있을 만큼만 주자. 그리고 일단 주었으면 내가 주었다는 감정의 소유권까지도 완전하게 이전시켜 주자. 그러면 내가 감내할 수 있는 역량만큼 줄 수 있는 것도 커진다.

스파이어리서치&컨설팅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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