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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 만에 中 '가상적국' 지정 뒤…역사상 가장 싸늘했던 나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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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28개 회원국 정상들이 12월 3~4일 영국 런던에서 열었던 ‘창설 70주년 정상회의’는 여러모로 역사적이다. 70년이나 지속한 동맹은 역사에서 보기 드물지만 이번 정상회의는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싸늘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12월 4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의의 모습. 올해 정상회의에서는 처음으로 중국을 가상적국으로 지정했지만 정상회의 내내 분열과 반목의 불협화음이 거셌다. [EPA=연합뉴스]

12월 4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의의 모습. 올해 정상회의에서는 처음으로 중국을 가상적국으로 지정했지만 정상회의 내내 분열과 반목의 불협화음이 거셌다. [EPA=연합뉴스]

나토 정체성 포함 3가지 불안한 그림자

이번 정상회의는 나토의 미래에 불안한 그림자를 드리우는 행사로 기록될 것이다. 이는 나토의 세 가지 고민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첫째,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붕괴하고 냉전이 막을 내린 지 30년이 된 현재 나토가 겪고 있는 정체성 위기다. 둘째, 고도로 세계화하고 다극화한 글로벌 세상에서 집단안보체제를 바탕으로 하는 나토 동맹이 지속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다. 셋째, 동맹을 비용으로 바라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발언이 앞으로 어떤 파문을 가져올지에 대한 불안이다.

[채인택의 글로벌 줌업] #러가 오늘의 위협이라면 중은 내일의 악몽 #나토 70주년 정상회의, 갈등미봉·불씨상존 #가치동맹에서 비용분담 거래로 불안한 전환 #나토, 49년 마셜플랜과 함께 서방 기둥 출발 #민주주의·인권·시장경제 공유 ‘가치동맹’으로 #냉전 뒤 러·중·테러 견제 글로벌 안보 기구로 #미국, 전력 7할 차지 과도한 힘 쏠림도 문제 #미래 나토 방향 재조정과 부담 확대의 기로

중국인민해방군이 상륙훈련을 벌이고 있다. 상륙 훈련은 대만에 대한 커다란 위협으로 간주된다. [로이터=연합뉴스]

중국인민해방군이 상륙훈련을 벌이고 있다. 상륙 훈련은 대만에 대한 커다란 위협으로 간주된다. [로이터=연합뉴스]

중국 군사 대국 부상에 ‘공동대응’ 결의

물론 겉보기로 나토는 강고하게 단합된 군사 동맹이다. 회담이 끝난 4일 나토 28개 회원국 정상은 ‘대서양 동맹’의 유대가 계속될 것임을 재확인하는 공동 선언문을 발표했다. 대서양 동맹은 나토를 통한 미국과 유럽 간의 군사동맹을 가리키는 말로 시작해 냉전 이후에는 가치·경제·문화 협력까지 의미가 확대됐다. 올해 공동 선언문에서 눈에 띄는 점은 “중국의 커지는 영향력은 나토가 대처할 필요가 있는 기회이면서 동시에 도전”이라는 구절이 추가됐다는 사실이다. 나토가 중국의 군사 대국 부상에 대해 공동 대응하겠다고 밝힌 것은 처음이다.
냉전 초기 1949년 소련을 적국으로 상정하면서 출발했던 나토가 창설 70년 만에 중국을 적국의 하나로 인식한 것은 커다란 사건이다. 냉전을 끝났지만, 앞으로 중국과 나토 간에 신냉전이 벌어질 수 있다는 인식을 공식화했기 때문이다. 나토는 중국의 위협을 인식하는 것은 물론 러시아와 테러세력의 위협에도 계속 대처하겠다고 천명했지만 아무래도 무게 중심은 중국으로 쏠릴 수밖에 없다.

중국이 지난 10월 1일 건국 70주년 기념일을 맞아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 열었던 열병식에서 최대 사거리 1만5000㎞로 북미지역과 유럽을 사정권으로 하는 차세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둥펑-41’이 처음으로 공개되고 있다. [AP=연합뉴스]

중국이 지난 10월 1일 건국 70주년 기념일을 맞아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 열었던 열병식에서 최대 사거리 1만5000㎞로 북미지역과 유럽을 사정권으로 하는 차세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둥펑-41’이 처음으로 공개되고 있다. [AP=연합뉴스]

중국 장거리 미사일을 위협으로 인식

앞서 3일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기자들과 만나 “중국의 군사 대국 부상이 나토 안보에 주는 영향력에 대응해야 한다”며 “중국은 세계에서 둘째로 많은 군사비를 지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스톨텐베르그 사무총장은 “중국은 최근 미국과 유럽까지 도달할 수 있는 장거리 미사일을 개발했다”며 “중국의 영향력이 나토 영역인 북미와 유럽에까지 미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중국이 유럽의 사회기반시설과 사이버 공간에 엄청난 투자를 하고 있고 북극과 아프리카에서 우리에 다가오고 있다”고 말했다. 나토의 안보 이익과 관련이 있는 중국의 인프라와 지역 투자에 집단으로 대응할 수 있음을 시사한 발언으로 볼 수밖에 없다. 나토가 중국과 안보 문제를 두고 본격적으로 충돌하고 견제하는 새로운 시대가 시작된 셈이다.
그런데도 최근 미국이 중국 통신장비업체인 화웨이 기기와 관련해 안보를 이유로 사용을 금지해달라고 요청했지만, 나토 회원국인 독일과 프랑스는 미국과 다른 입장을 보였다. 이탈리아는 중국의 일대일로에 협력해 항구 개발 등에 공동으로 투자하기로 했다. 명백한 군사적 조치나 압박에 대한 대응이 아니라면 국가 간 이익에 따라 해석이 다를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인터넷, 정보통신, 항만, 공항, 에너지 등에 대한 중국 투자가 대표적이다. 나토 차원의 대중 대처가 쉽지 않음을 보여준다. 자칫 나토의 공동 선언이 공허한 말 잔치에 그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나토의 별명이 ‘말뿐이고 행동은 없다(No Action, Talk Only)’라는 점도 생각할 필요가 있다.

12월 4일 영국 런던의 나토 정상회담장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외국 정상과 회담하고 있다. [AP=연합뉴스]

12월 4일 영국 런던의 나토 정상회담장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외국 정상과 회담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트럼프의 차가운 태도에 나토, 분열과 반목

게다가 이번 나토 정상회담은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겼다. 이견과 분열, 갈등과 반목이다. 이틀에 걸친 일정을 마친 나토 회원국 정상들이 ‘대서양 동맹’의 유대가 계속될 것임을 재확인하는 공동 선언문을 발표하고 중국의 부상에도 공동 대응하기로 했음에도 이는 표면적일 뿐 이면의 공기가 온도가 사뭇 달랐다. 이번 정상회의는 사실 분열을 보여주는 파열음이 곳곳에서 요란했다. 가장 중요한 것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나토를 보는 트럼프의 싸늘한 눈초리와 동맹 앞에 비용만 따지는 일련의 발언이다.

나토 회원국들의 GDP 2% 방위비 공약 이행 여부[나토 홈페이지]

나토 회원국들의 GDP 2% 방위비 공약 이행 여부[나토 홈페이지]

트럼프 “국방지출 늘리지 않으면 무역보복”

이러한 회담 결과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 트럼프 대통령의 귀국 뒤 발언이다. 런던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의를 마치고 워싱턴에 돌아온 트럼프 대통령은 5일 백악관에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관계자들과 오찬을 함께 하면서 “나토에 충분히 기여하지 않는 나라들에 대해서는 무역에 관한 조처를 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보도했다.
트럼프는 “많은 나라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2%’라는 국방지출 기준에 접근하고 있다”면서도 “일부는 이에 다가가지 못하고 있으며 부담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있으며 누구든 이를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토 70주년 정상회담의 핵심이 국방지출 부담 압박임을 자인한 셈이다.
트럼프는 그러면서 “우리는 무역과 관련 있는 일을 할지 모른다"”며 국방지출과 무역 문제를 연계할 뜻을 비쳤다. 통신은 “트럼프가 나토 회원국들의 국방지출 확대에 박차를 가하려고 무역 관련 조처를 하겠다고 압박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국방지출 인상 압박을 위해 동맹국에 무역 보복이나 제재를 가하겠다는 ‘살벌한’ 발언을 대놓고 한 셈이다.
트럼프는 “그들이 미국의 보호를 받으면서 그들의 돈을 내놓지 않는 것은 공평하지 않다”고 말해 동맹관계가 보호비를 지불하고 보호를 받는 관계라는 인식을 드러냈다. 동맹국들이 경악해 하고 우려할 수밖에 없는 발언이다.

나토 회원국들의 국기[중앙포토]

나토 회원국들의 국기[중앙포토]

GDP 2% 국방비 지출 가이드라인이 핵심

사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나토 무임승차론’을 제기하며 유럽 회원국들에 국방지출 증액을 압박하면서 계속 갈등을 겪어왔다. 특히 문제가 된 것이 나토 회원국은 국내총생산(GDP)의 2%를 국방비로 지출한다는 가이드라인이다. 이는 사실상 유명무실한 상태다. 2018년 이를 충족한 회원국은 미국(3.39%), 그리스(2.22%), 영국(2.15%), 에스토니아(2.07%), 폴란드(2.05%), 라트비아(2.03%), 리투아니아(2.0%)의 7개국뿐이다. 나머지는 가이드라인을 지키지 않았다. 경제 규모가 큰 주요 회원국인 프랑스(1.82%), 터키(1.64%) 독일(1.23%) 이탈리아(1.15%)도 마찬가지다. 스페인(0.93%), 벨기에(0.93%), 룩셈부르크(0.54%)는 가이드라인의 절반인 1%도 되지 않는다. 회원국인 아이슬란드는 군대 없이 해안경비대만 운영한다.
이번 정상회의에서도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나토 회원국들의 국방 지출이 증가세에 있다고 강조했다. 스톨텐베르그 사무총장은 정상회의를 앞두고 25억 달러의 나토 운영비 분담금도 조정해 미국 몫을 줄여 트럼프를 무마하려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트럼프는 이번 정상회의에서도 국방지출 증액을 대놓고 압박했다. 이에 나토의 유럽 회원국들은 2024년까지 국방비 지출을 국내총생산(GDP)의 2% 수준으로 늘리기로 했지만, 트럼프는 4%가 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미국을 포함한 나토 회원국 중에서 국방비를 GDP 4% 수준으로 지출하는 나라는 어디에도 없다.
사실 나토는 실질적으로 미국이 주도해왔다. 나토 통계에 따르면 나토 회원국 29개국의 2018년 국방비 1조134억 달러 가운데 미국이 7060억 달러로 가장 많다. 미국이 나토 전체 군사비의 69.67%를 차지하며 나머지 회원국을 모두 합쳐도 전체 국방비 지출의 30%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영국이 615억 달러, 프랑스 520억 달러, 독일 510억 달러, 이탈리아 257억 달러, 스페인 138억 달러, 그리스 50억 달러를 각각 지출했다.

1949년 4월 4일 해리 트루먼 당시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 집무실에서 관계자들의 바라보는 가운데 미국의 나토 가입 문서에 서명하고 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거대한 군사 동맹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사진 위키피디아]

1949년 4월 4일 해리 트루먼 당시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 집무실에서 관계자들의 바라보는 가운데 미국의 나토 가입 문서에 서명하고 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거대한 군사 동맹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사진 위키피디아]

냉전 시절 미국이 서방세계 결속 위해 창설

트럼프는 이를 바탕으로 미국이 너무 많은 돈을 부담한다고 볼멘소리를 하지만 사실 여기에 나토의 정체성이 자리 잡고 있다. 이는 나토의 근원을 따져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1949년 4월 4일 체결된 북대서양조약으로 창설된 나토는 냉전 시기(1946~1991년) 서방 군사동맹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다. 북대서양조약은 미국이 주도해 영국·프랑스·네덜란드·이탈리아·벨기에·룩셈부르크·노르웨이·덴마크·아이슬란드·포르투갈 등 서유럽 국가와 북미의 캐나다가 미국 워싱턴에서 체결한 집단안전보장 조약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그리스에서 친서방인 정부군과 공산당의 군사조직인 민주 군이 1946~49년 치열한 내전을 벌이면서 냉전이 격화하자 서방세계의 결속을 위해 체결된 조약이다. 조약 제5조는 “회원국에 대한 무력행사를 회원국 전체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해 개별적·집단적 자위권을 발동하고 상호 원조를 한다”고 규정했다. 그 유명한 집단 안보 규정이다. 미국과 함께 소련에 대응한다면 미국이 방위를 책임지겠다는 이야기다.

"국방비 더 써라" 트럼프 냉대로 균열 

서유럽권을 미국의 영향력 아래 묶어 소련에 대응한다는 미국의 필요성에 의해 시작된 것이 나토 동맹이라는 이야기다. 여기에 나토의 본질이 담겼다. 서유럽 국가들의 소련에 대한 두려움이 이들의 나토 참여 결정을 끌어냈다. 냉전 붕괴 뒤 중유럽과 동유럽 국가는 물론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등 옛 소련권 발트국가까지 나토에 가입한 이유다.
북대서양조약기구를 창설한 해리 트루먼 대통령을 시작으로 역대 미국 대통령은 나토정상회의에서 이 집단안보 규정을 확인하는 연설을 하는 것이 관례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거부해왔다. 냉전 균열 이후 가치 동맹, 테러와의 전쟁 등 다양한 명분을 개발하며 존재해온 나토는 이렇게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지난 12월 4일 영국 런던의 나토 정상회의의 실무 점심 도중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발언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 12월 4일 영국 런던의 나토 정상회의의 실무 점심 도중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발언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마크론 “나토 뇌사”에 에르도안·트럼프 발끈

유럽의 나토 회원국과 트럼프는 국방지출 외에도 여러 분야에서 갈등을 빚었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미군의 시리아 동북부 철수 결정과 그 뒤 이어진 또 다른 나토 회원국 터키의 해당 지역 쿠르드족에 대한 군사 공격이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최근 영국 이코노미스트와 인터뷰에서 이런 일련의 사태와 함께 미국과 나토의 유럽 동맹국 사이의 갈등과 미국의 리더십 부재, 터키의 예측 불가능성을 지적하면서 “나토가 뇌사 상태”라고 대놓고 비난했다. 그러자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과 트럼프는 그의 발언을 즉각 비난했다. 이런 일련의 사태는 나토 내부의 균열을 촉진했다.
나토 정상회의에서 만난 트럼프와 마크롱은 ‘나토 뇌사’ 발언은 물론 나토의 장래 역할, 터키의 위상, 극단주의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 쿠르드족 문제 등을 둘러싸고도 대립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마크론 대통령과 회견한 뒤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함께 좋은 일을 많이 했다”고 말했지만, 마크롱은 나토는 뇌사상태라고 했던 발언에 대해 “철회하지 않겠다”며 물러나지 않았다. 이번 정상회의에서 균열이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났던 순간이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가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마르크 뤼테 네덜란드 총리, 영국의 앤 공주(왼쪽부터) 등과 함께 지난 12월 3일 영국 런던의 버킹엄 궁에서 열린 나토정상회담 환영행사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행동에 관한 농담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가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마르크 뤼테 네덜란드 총리, 영국의 앤 공주(왼쪽부터) 등과 함께 지난 12월 3일 영국 런던의 버킹엄 궁에서 열린 나토정상회담 환영행사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행동에 관한 농담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트럼프, 집단 따돌림당하자 “두 얼굴”

희극도 있었다. 3일 버킹엄 궁에서 열렸던 나노 70주년 정상회의 환영 행사장에서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가 마크롱 대통령,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등과 대화를 나누는 도중 트럼프 대통령이 기자회견으로 40분간 늦었다는 내용 등으로 그를 놀리는 듯한 발언을 하는 동영상이 4일 공개되면서 분위기는 더욱 나빠졌다. 트럼프는 트뤼도 총리를 가리켜 “위선적인 사람(two faced)”이라고 비난하고 정상회의 뒤 예정됐던 기자회견을 트위터를 통해 갑자기 취소하고 워싱턴으로 돌아갔다. 백악관에서 무역을 이용해 압박하겠다는 발언은 그 직후에 나왔다.
정상회의에선 마크론과 에르도안의 갈등도 계속돼 마크론은 정상회의를 마친 뒤 쿠르드 민병대를 테러 단체로 볼 것이냐의 문제를 두고 터키와 견해차를 좁히지 못했다고 말했다. 시리아의 극단주의 테러 단체인 이슬람국가(IS)를 시리아에서 몰아내는 과정에서 서방 동맹국들에 협조해온 쿠르드 민병대를 나토의 회원국인 터키가 공격한 이후 서방국가들과 터키는 극심한 갈등을 빚어왔다. 이번 정상회의는 그 갈등이 쉽게 해결될 수 없음을 재확인한 행사였다.

지난 12월 4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담에서 회원국 정상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 12월 4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담에서 회원국 정상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안보동맹 넘어 가치동맹으로 발전

사실 이번 정상회의는 냉전으로 시작된 나토 체제의 정체성을 진지하게 고민해보는 중요한 행사였다. 대서양 동맹은 미국이 1948년 유럽 동맹국들의 전후 재건·원조 프로그램인 마셜 플랜(유럽부흥계획)과 함께 서방 세계의 결속을 다진 핵심적인 냉전 정책이었다. 미국은 1948년 4월 3일 해리 트루먼 대통령의 서명으로 발효한 해외원조법을 바탕으로 4년 동안 서유럽에 130억 달러(2016년 가격으로 1300억 달러에 해당)를 지원했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확립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이 대상이었다. 미국은 경제는 마셜 플랜, 정치와 국방은 나토 체제를 앞세워 서방세계의 맹주로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냉전 이후 나토는 단순한 안보 동맹에 그치지 않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서구의 가치를 공유하는 ‘가치 동맹’으로 발전했다는 평가도 받았다. 하지만 이번 정상회의는 나토가 가치동맹으로 발전한 것이 아니라 불화를 뒤에 숨긴 채 갈등의 불씨만 키워왔음을 보여준다. 그동안 물밑에선 새로운 글로벌 시대에 나토라는 집단 안보체제가 얼마나 가치가 있을지에 대한 지적이 계속됐다. 트럼프의 거친 대응은 나토 존재에 대한 의문을 가시적으로 보여준다.

 나토 로고. [나토 홈페이지]

나토 로고. [나토 홈페이지]

나토의 미래에 의문 던져

나토는 이번 정상회의에서 중국과 대결을 선언했지만 당장의 내부 균열부터 해결해야 할 처지가 됐다. 나토는 이런 균열을 딛고 계속 존재할 수 있을까? 의문은 계속된다. 내년에 대통령 선거를 치러야 할 트럼프는 국제관계를 이렇게 허물어 놓고도 미국 대통령으로 재선될 수 있을까? 재선된 트럼프는 세계를 어떻게 뒤흔들까? 주한미군 분담금 협상은 어떻게 될까? 21세기에도 미국은 글로벌 동맹체제를 유지할까? 하나같이 무겁고 어두운 질문이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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