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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톡스 효과 단식, 지병 있는 사람은 부작용 위험 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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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4호 28면

황세희의 ‘러브에이징’

정치인들의 단식투쟁이 반복되면서 단식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관해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사실 인류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지금처럼 매일 하루 세 끼를 먹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다. 수렵 시대는 물론 농업혁명 후에도 다음 끼니를 구할 때까지 물과 초근목피로 연명하는 상황은 흔했다. 자연스레 우리 몸은 금식 기간이 생존과 건강에 보탬이 되도록, 공복 상태가 되면 영양분 흡수에 필요한 장기는 휴식을 취하고 노폐물은 충분한 시간을 두고 잘 배출하도록 노력한다. 흔히 말하는 클렌징 효과, 디톡스 효과다.

수련 목적 #노폐물 배출, 다이어트에도 좋아 #3일 넘기면 의료인의 관리 필요 #회복 요령 #죽부터 섭취 후 단계적 음식 공급 #갑자기 마음껏 먹으면 심장 마비

인체는 모든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려고 노력하면서 동시에 항상성을 유지하고 싶어한다. 끼니를 거르는 상황에 직면해도 배고픔이 익숙한 사람과 배불리 먹는 사람의 반응은 다르기 마련이다. 예컨대 늘 삼시 세끼를 먹던 건강한 성인은 한 끼만 굶어도 허기와 함께 식은땀이 나고 손이 떨리는 저혈당 증상을 호소할 수 있다. 물론 이때 혈당 검사를 하면 정상이다. 평상시보다 공복 상태가 길어지면 몸은 저혈당 증상이라는 경고음을 울려 긴장 모드를 조성한 뒤 각종 스트레스 호르몬을 분비해 혈당을 정상으로 유지한다.

중년에 젊어진 그녀의 비결, 단식

반면 오랫동안 하루 한 끼, 혹은 두 끼 식사가 생활화된 사람은 12시간 이상 공복 상태여도 다음 끼니를 먹을 때까지 별반 불편함을 못 느낀다. 오랜만에 만난 여성 A씨(55)가 대표적이다. 그는 학생 때부터 꽤 오랫동안 통통한 편이었지만 지금은 날씬하다. 인체는 25세 무렵부터 전반적인 노화가 진행되면서 체중이 조금씩 늘어난다. 특별한 병 없이 젊을 때보다 날씬해진 중년이라면 대단한 노력으로 꾸준히 식단 조절과 운동을 했다고 봐야 한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문제는 불혹의 나이를 넘어서면 전문가 조언을 받아 과학적인 방법으로 체중 감량에 성공해도 살 빼기 전보다 다소 초췌해지면서 나이 들어 보이기 쉽다는 점이다. 나이가 많아질수록 지방이 빠져나간 빈자리를 근육으로 채우기도 힘든 데다, 피부 탄력성도 떨어져 주름이 늘기 때문이다.

그런데 15년 만에 만난 그녀는 안색도 좋고 또래보다 젊어 보였다. 그녀가 다이어트 비법이라도 찾아냈던 걸까. 비결을 묻자 “시간 날 때마다 명상 수련을 했으며 운동은 항상 대중교통을 이용한 게 전부”라는 소박한 답변이 돌아왔다. 지금의 체중을 유지한 지는 10년도 넘었다고 한다. 못 미더워 “진짜 그게 전부냐”고 했더니 “가끔 단식(斷食)을 한다”며 의외의 말을 했다.

계기는 기아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공감하기 위해서였는데, 처음에는 매주 한 끼씩 굶다가 점차 익숙해져 지금은 두 끼 정도 걸러도 크게 힘들지 않다고 했다. 또 드물지만 명상수련회에도 참여해 4~5일씩 단식에 가까운 극도의 소식(小食)을 하면서 허기를 극복하고 정신이 맑아지는 체험도 한다고 했다. 개인차는 있지만 건강한 보통 사람이 식사량을 늘리기 위해서는 두 달 정도의 기간이 필요한 반면 줄어든 식사량에 익숙해질 때까지는 1년 이상이 걸린다. 다이어트 성공 여부를 목표 체중 도달보다 감량한 체중을 1년 이상 지속하는 데 두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두 끼 거르는 단계를 지나 단식 기간이 사흘을 넘기면 물과 소금, 약간의 야채나 주스 등을 섭취하더라도 의료인의 관리 감독이 필요하다. 또 전문가와 함께하더라도 4~5일 혹은 7~10일 정도 시행하는 단식은 정신 수련이 동반돼야 하며 효과도 연령·성별·체형·성품·건강 상태 등에 따라 개인차가 커서 장·단점을 일괄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 분명한 사실은 단기간이라도 성장기 어린이나 임산부, 노인, 당뇨병·심혈관질환·결핵·간염·통풍 등 지병이 있는 사람은 단식으로 초래되는 부작용과 합병증 위험이 크므로 시도해서는 안 된다.

수련을 위한 단식을 넘어 저항의 수단인 단식 투쟁은 사회적으로 소외된 약자가 억울하게 구금되는 식의 극한적 상황에서 마땅히 대항할 방법이 없을 때, 자신의 유일한 소유물인 몸을 아사(餓死)시키는 최후의 투쟁 방식이다. 가장 유명한 사례 중 하나는 1981년, 메이즈 감옥에 수감된 북아일랜드 공화주의자들이 당시 영국의 대처 수상에게 마지막 카드로 강행한 대규모 단식투쟁이다. 실제 투쟁을 주도하다 66일째 사망한 27세 보비 샌즈를 비롯한 10명의 청년이 단식 투쟁 이후 사망했다. 이 사건을 다룬 영화 ‘헝거(Hunger, 61회 칸영화제 황금카메라상 수상)’는 단식 투쟁의 처절하고 절박한 현장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우리 인체는 물과 소금으로 수분과 전해질만 보충하면 처음에는 포도당을 에너지로 쓰다가 3일 후부터는 지방을 소진한다. 그런데 이마저 고갈하면 기아 상태에 돌입하면서 근육과 각종 장기, 심지어 골수까지 에너지로 쓴다. 그 결과 간·신장·췌장 등 주요 장기의 기능과 골밀도 감소, 장 출혈, 심부전 등으로 몸 전체가 쇠약해지면서 죽음에 이르는 것이다.

단식 투쟁은 몸을 아사시키는 최후 방식

단식은 중단 후 회복기에도 의료진 지시 아래 미음에서 묽은 죽으로 이행하는 식의 단계적 음식 공급이 필요하다. 일단 기아 상태에 적응된 몸에 갑자기 평상식이 주어지면 대사 이상을 일으켜 심장 마비 등으로 사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기아에 처한 사람에게 측은지심을 발동해 음식을 마음껏 먹게 한 뒤, 혹은 단식 투쟁자에게 강제 급식을 한 뒤 사망한 사례는 드물지 않다.

단식 투쟁은 자신을 가장 비참한 상황에 빠뜨리면서 삶의 끝으로 향하는 처절한 과정이다. 성인 세 명 중 한 명이 비만 환자인 풍요로운 사회에서 기득권층이 정략적 이익을 위해 단식투쟁 구호를 외칠 때 사회적 공감을 얻기 힘든 까닭이다. 진정 대중의 사랑을 원하는 사회 지도층 인사라면 내놓기 싫고 아까워하는 특권부터 하나씩 내려놓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황세희 국립중앙의료원 건강증진예방센터장
서울대 의대 졸업 후 서울대병원에서 인턴·레지던트·전임의 과정을 수료했다. 서울대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미국 MIT대에서 연수했다. 1994년부터 16년간 중앙일보 의학전문기자로 활동하면서 ‘황세희 박사에게 물어보세요’ ‘황세희 의학전문기자의 몸&맘’ 등 인기 칼럼을 연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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