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채로운 취미 활동 통해 다양한 사람 만나는 게 젊음의 비결
월간중앙·대한노인회중앙회 공동기획 同行(2) - 존경받는 시니어, 골드보이가 간다 #“30년 동안 자전거 타고 방방곡곡 누빈 덕분이죠 ^^”
전날에도 자전거를 탔다. 서울 양재동 집에서 경부고속도로 죽전휴게소까지 다녀왔다. 어림잡아 왕복 70㎞ 정도 달린 셈이다.
“좋아하는 코스가 여러 개 있어요. 팔당 쪽으로 가기도 하고, 남양주 쪽으로 가기도 하고, 행주대교 쪽으로 가기도 하지요. 대충 왕복 70~80㎞쯤 될 거예요. 여전히 쌩쌩합니다.”
월간중앙이 ‘원조 동안(童顔)’ 김세환(71)과 만났다. 인터뷰는 11월 4일 서울 양재동 김세환의 자택에서 진행됐다. 조영남·송창식·윤형주 등과 함께 한국 포크송 1세대를 구가했던 김세환은 “어제도 자전거 페달 좀 밟아 봤다”며 “다양한 취미 생활 그리고 긍정적인 마음가짐이 젊음의 비결 아닌가 싶다”며 웃었다.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보시다시피 아주 잘 지내고 있어요(웃음). 최근에는 어제(11월 3일) 방송된 KBS [열린 음악회]에 출연했고요. 우리 나이에 자주 나갈 만한 TV 프로그램이 많지 않은 건 사실이에요. 그렇지만 저 나름대로 열심히 활동하고 있어요. 얼마 전에도 대구에 가서 조영남·송창식 선배 그리고 피아니스트 임동창씨와 함께 공연했습니다. 또 운동을 좋아하니까 열심히 하고 있어요. 특히 자전거를 자주 타지요.”
‘김세환 하면’ 변치 않는 것 중 하나가 헤어스타일인 것 같아요.
“저는 꾸미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있는 그대로 사는 게 좋아요. 그래서 이 헤어스타일로 평생 살고 있어요. 사실 노래도 그래요. 저는 밝고 자연스러운 노래가 좋아요. 돌아보면 제 삶 자체에 큰 변화가 없었던 것 같아요. 노래하고 자전거 타고 친구들 만나고…. 동호인들과 죽전 쪽으로, 팔당 쪽으로, 행주대교 쪽으로 한 바퀴 도는 걸 진짜 좋아해요. 자전거에 오르면 절로 마음이 편해지고 즐거워지는 것 같아요.”
가수 데뷔 계기가 궁금합니다.
“1970년 TBC [대학생 재즈 페스티벌]이란 프로그램에 출전하게 됐어요. 당시만 해도 대학생들이 부를 만한 가요가 많지 않았을 때라 출연자들이 전부 팝송을 불렀어요. 20여 개 팀이 참가했는데 예선에서 제가 5등을 합 겁니다. 그래서 은근히 기대하면서 본선에 나갔는데 입상하지 못했어요. 솔직히 꽤 아쉽더라고요.”
그 이후 다른 가요제에 또 출전하게 됐나요?
“얼마 뒤 교내 축제 때 여러 과에서 저를 초대가수로 부르더라고요. [대학생 재즈 페스티벌]에 출전한 이후 경희대 학생들 사이에서 좀 유명해졌거든요(웃음). 저는 신방과였는데 국문과·정외과 등에서 노래 좀 불러 달라고 초대한 거죠. 그 당시 윤형주씨가 연세대를 그만둔 뒤에 경희대로 옮겨서 학교를 다닐 때인데, 축제에서 그 형을 만나게 된 겁니다. 형이 저한테 ‘이따가 MBC 라디오 이종환의 [별이 빛나는 밤에]에 출연하는데 너도 함께 가자’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같이 가게 됐죠. 그 프로그램에서 저도 노래할 기회를 얻어 비지스(Bee Gees)의 ‘Don’t Forget To Remember(돈 포겟 투 리멤버)’를 불렀는데 반응이 뜨거웠어요. 그걸 계기로 윤형주씨와 더블앨범을 냈는데 A면에는 윤형주의 ‘조개 껍질 묶어’, B면에는 제가 부른 ‘Don’t Forget To Remember’가 수록됐어요. 그게 데뷔라면 데뷔죠.”
“형, 그 노래는 내가 더 잘 부를 수 있어”
윤형주(72)와의 인연은 송창식(72)으로 이어졌다. 두 사람은 이미 1968년 ‘트윈폴리오’라는 팀을 만들어 활동했고, 젊은이들 사이에서 포크송의 대명사로 자리 잡았다. 윤형주·송창식과 KBS의 음악 프로그램인 [노래는 친구]의 진행자로 활동하면서 김세환에게는 자연스럽게 가수의 길이 열렸다. 이후 김세환은 TBC에서 신인상(1972년)과 가수상(1974, 1975년)을 연이어 수상하며 전성기를 누리게 돼다.
어떻게 보면 어렵지 않게 가수가 됐다고 할 수 있겠는데요.
“맞아요. 저처럼 쉽게 가수가 된 경우는 흔치 않을 겁니다. 그건 오로지 ‘쎄시봉’ 형님들 덕분이에요. 지금도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않고 삽니다. 서울 무교동의 ‘쎄시봉’은 젊은이들이 많이 찾던 전문 음악감상실로 윤형주·송창식·이장희(72)·조영남(74) 선배 등이 활동하던 곳이었죠. 당시만 해도 주먹만 한 배터리를 단 트랜지스터가 전부였을 때인데, 쎄시봉에 가면 음질 좋은 스피커로 음악을 제대로 들을 수 있었어요. 그 형들은 그곳이 직장이었지만 저는 취미 삼아 놀러 갔던 곳이죠. 창식이 형은 거기에서 아예 먹고 자고 했다니까요(웃음). 저는 ‘쎄시봉’에서 직접 노래를 부르진 않았어요.”
그러면 김세환의 주 무대는 어떤 곳이었나요?
“저는 명동 OB’s Cabin(오비스캐빈)’에서 노래를 했어요. 양희은(67)씨도 거기서 노래했고요. 당시에는 젊은이들이 갈 만한 곳이라고 해봐야 명동이나 종로 정도밖에 없었을 때예요. 오래된 얘기입니다.”
명동 한복판에 자리한 OB’s Cabin은 통기타 가수들의 메카였다. 당시 젊은이들을 상징하는 단어가 청바지·통기타·생맥주인데 그 세 가지를 다 충족할 수 있는 곳이 바로 OB’s Cabin이었다. 그곳에서 매일 노래하던 가수로는 조영남·이장희·서유석·송창식·윤형주·김민기·양희은 등이 있다. 대기업 신입사원 월급이 1만8000원쯤이던 시절, ‘OB’s Cabin’의 하루 저녁 출연료가 500원이었다. 유명 가수가 고정 출연할 경우 월 20만원을 받을 수 있었다.
가장 아끼는 노래는 어떤 곡인가요?
“저의 대표적인 히트곡들이 어떻게 해서 제 노래가 된 줄 아세요? 어느 날 창식이 형이 혼자 기타를 치며 웅얼거리듯 ‘사랑하는 마음보다 더 좋은 건 없을 걸’을 부르고 있었는데, 노래를 듣던 제가 ‘형, 그 노래 나 줘. 그 노래는 내가 더 잘 부를 수 있어’ 그렇게 해서 ‘사랑하는 마음보다’(작사·작곡 송창식)가 제 노래가 된 겁니다. 마찬가지로 ‘길가에 앉아서’(작사·작곡 윤형주)’는 (윤)형주 형한테 달라고 해서 받은 곡이고요, ‘좋은 걸 어떡해’(작사·작곡 이장희)는 (이)장희 형한테 받은 곡이에요. 그 형들 아니었다면 오늘날 김세환이 있을 수 있겠어요? 그래서 단 9개월 차이인데도 형주 형을 깍듯이 형님으로 모시는 겁니다(웃음).”
가수 인생 반백 년이잖아요? 가장 큰 보람은 뭘까요?
“제가 신방과를 나왔잖아요. 그래서 졸업하면 신문사나 방송사에서 일하는 게 꿈이었어요. 학창시절에는 취미 삼아 노래를 불렀던 거고요. 근데 형들을 만난 게 계기가 돼서 가수의 길에 접어든 거예요.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이보다 더 좋은 직업은 없는 것 같아요. 다시 태어나도 저는 가수가 될래요.”
바꿔서 생각하면 싸울 일도 없어
어떤 면에서 가수가 좋은 직업인가요?
“우선 정년(停年)이 없어요. 또 내 특기와 취미를 병행하며 돈도 벌 수 있어요. 그리고 가는 곳마다 팬들이 좋아해 주고요. 그런데 저는 가수를 비롯한 연예인을 인공위성이라고 생각해요. 인공위성은 지구중력을 이기고 대기권 밖으로 나가기까지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하잖아요? 그 이후 비로소 지구 둘레를 안정적으로 돌지요. 마찬가지로 가수도 히트곡을 내기까지 엄청나게 많은 노력과 인내가 필요해요. ‘호랑나비’ 하면 김흥국이잖아요? ‘해뜰날’ 하면 송대관이잖아요? 김흥국이 ‘호랑나비’ 안 불렀으면 어떤 가수인지 누가 알겠어요? 가수로서 타이틀이 있어야 하는데 그걸 얻기까지 너무 힘들어요. 대기권을 벗어나 우주로 진입할 때까지 고난과 시련을 이겨내기 힘든 거죠.”
가수로서 아쉬운 점이나 후회스러운 점은 없나요?
“진짜 없어요. 팬들에게 사랑받고 지금 이 나이에도 방송에 나갈 수 있고…. 이 정도면 됐지, 뭘 더 바라나요? 정말 감사하며 삽니다. 아쉬운 것도 후회스러운 것도 없어요. 가수 되기 정말 잘했어요.”
후배 가수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요.
“인기와 인격 모두 중요해요. 인기는 운 좋으면 하루아침에 얻을 수 있지만, 인격은 그럴 수 없어요. 쌓아 나가야 하는 겁니다. 인기와 인격이 균형을 이뤄야 가수로서, 연예인으로서 튼튼해질 수 있고 롱런할 수 있어요. 그래서 저는 다양한 취미생활도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취미생활을 통해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그만큼 사람에 대한 이해의 폭도 넓어진다고 봐요. 어떤 사람들을 보면 자신이 출연하던 프로그램을 그만둘 때 불만을 터뜨리곤 하지요? 물론 아쉽겠죠. 저 역시 그랬어요. 하지만 바꿔서 생각해 보면 출연자에게 그만둘 권리가 있다면 저쪽(방송국)은 자를 권리가 있는 거예요. 일반 회사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입사도 있지만 퇴사도 있잖아요? 누구든 언젠가는 퇴사하잖아요? 어떻게 퇴사하느냐가 중요한 것 같아요.”
인생의 신조나 좌우명이 궁금하군요.
“바꿔서 생각하자, 역지사지(易地思之)입니다. 바꿔서 생각하면 우선 내 스스로가 편해져요. 그리고 싸울 일도 없어져요. 참기 전에 바꿔서 생각하면 편해지는 것 같아요. 아내한테 ‘시댁에 잘하라’고 하기 전에 내가 먼저 처가에 잘하면 되는 것 아닌가요?”
부부 관계를 비롯해서 주위 사람들과의 관계가 원만하겠군요.
“부부싸움? (크게 할 일이) 없었죠. 그래서 루트(route)가 중요한 것 같아요. 자녀는 부모를 보고 배우면서 자라잖아요? 그래서 부모가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해요. 좀 건방진 얘기 같지만 ‘쎄시봉’ 때도 형들 사이에서 말다툼이 벌어지면 제가 나서서 중재하곤 했어요. 양쪽 얘기를 다 들어 본 뒤에 ‘창식이 형, 이건 형이 사과해. 형주 형, 그건 형이 잘못했네’ 그런 식이었죠.”
아버지 자취 남기기 위해 사진 배워
자전거 마니아로도 유명합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오래전, 그러니까 1960년대 후반 대학생 때부터 스키 타는 걸 좋아했어요. 그러다 1986년인가? 미국에 갈 일이 있었는데 거기에서 산악자전거에 반하게 된 겁니다. 30여 년 동안 자전거 타고 전국 방방곡곡 구석구석을 누볐어요. ‘원조 동안이다’ ‘젊어 보인다’는 칭찬을 들을 수 있는 것도 다 자전거 덕분이라고 할 수 있어요. 자전거 페달을 밟으면 몸 안으로 맑은 산소가 들어오는 대신 머릿속 스트레스는 날려 버릴 수 있어요.”
자전거 경력 30년을 자랑하는 김세환에게는 ‘자전거 행복헌장 십계명’이 있다. ▷안장에 오르지 않은 자, 자전거를 논하지 말라 ▷네 이웃의 자전거를 탐하지 말라 ▷안전장비를 자전거 면허증으로 섬겨라 ▷네 자전거를 네 몸같이 사랑하라 ▷앞서가는 자전거를 시기하지 마라 ▷몸이 힘들지언정 길을 탓하지 마라 ▷오르막에 방심 말고 내리막에 자만 말라 ▷달리려거든 끝까지 달려라 ▷인생도 자전거도 나만의 길을 만들어라 ▷건강한 쾌락주의지가 돼 라이딩을 즐겨라.
오래전 없어졌던 ‘쎄시봉’이 몇 해 전 라디오와 TV를 통해 부활했었죠?
“10년 전쯤의 일인데요, 조영남씨와 최유라씨가 MBC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다 우연히 ‘쎄시봉’ 시절 이야기가 나왔어요. 두 사람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끝에 최유라씨가 ‘그러면 그 동생들도 함께 출연하면 어떻겠냐’고 제의했죠. 그렇게 해서 제헌절 특집으로 조영남·최유라씨가 진행하던 라디오 프로그램에 ‘쎄시봉’ 멤버들이 출동하게 된 겁니다. 그리고 그 추억이 잊혀갈 무렵 MBC TV에서 잇단 출연 제의가 와서 또다시 출연하게 됐지요.”
가수 이외에 다른 영역의 연예인 중 친한 사람은 누구인가요?
“이래봬도 제가 이 얼굴로 영화에도 네 편에나 출연했어요(웃음). 그러다 보니 연극·영화 쪽 사람들과도 두루 친해요. 더구나 아버지도 배우였잖아요. 그래도 이 자리에서 구체적으로 이름을 거론하긴 좀 그래요. 이름이 실리지 않은 사람은 서운하지 않겠어요?”
김세환의 선친은 평생을 연극배우로 살아온 김동원(1916~2006)이다. 많은 팬에게 [셰익스피어]의 햄릿으로 기억되는 김동원은 청년 시절 연극에 뜻을 품고 일본 유학까지 다녀왔다. 그는 한국 연극사에 큰 족적을 남긴 배우로 평가된다. 인터뷰 도중 김세환은 “나는 언제쯤 아버지의 반에나 미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웃었다.
땀은 배신하지 않는다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세요?
“자전거가 제 주치의예요. 자전거를 타고 밖에 나가 보면 내 몸의 컨디션을 금세 읽을 수 있어요. 감기 기운이 있는지 피곤한지 알 수 있지요. 그러니 제가 자전거를 안 탈 수 있겠어요?”
산악자전거 이외에 다른 취미도 있나요?
“취미는 많을수록 좋은 것 같아요. 그래야 인격도 쌓고 친구도 많아져요. 물론 아는 것도 많아지고요. 사람은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느끼게 되니까요. 저는 사실 사진도 좋아해요. 어떤 백화점에서 주최한 가족 사진 촬영대회에서 대상을 받은 적도 있어요. 스키는 1968년부터 탔어요. 1986년에 스키를 타러 미국에 갔다가 산악자전거에 매력을 느끼게 됐어요.”
김세환은 자신이 찍어서 출품한 사진이 담긴 액자를 보여줬다. ‘Reflection(반사)’이란 제목의 사진이다. 내용은 이렇다. ‘남자아이와 여자아이가 나란히 서 있다. 아이들이 다리만 보일 뿐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아이들의 발 마래 물웅덩이가 있고, 그 웅덩이에 아이들의 다리가 반사돼 있다.’ 김세환은 “나에게 사진 찍기는 Reflection이자 거울이고 추억”이라고 했다.
사진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가수는 음반이 남고, 영화배우는 영화가 남고, 탤런트는 드라마가 남아요. 하지만 연극배우는 남는 게 없어요. 형 두 분과 함께 아버지의 발자취를 카메라에 남기기 위해 사진을 배우기 시작했어요. 예전에는 전문가 수준의 사진을 현상하려면 필름을 미국으로 보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지만, 그래도 무대 위 아버지의 모습을 담기 위해 열심히 셔터를 눌렀습니다.”
김세환의 호기심은 사진에서 멈추지 않는다. 그는 요즘도 새벽 5시면 일어나서 2시간쯤 인터넷 서핑을 한다. 단순히 국내 뉴스를 보기 위한 검색이 아니다. 각종 블로그 등에 들어가서 각종 취미 활동을 탐색한다. 김세환은 “취미가 다양하다는 건 그만큼 아는 게 많다는 얘기와도 같다”며 “이런 활동을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상식이 는다”고 말했다.
동안의 비결이 있나요?
“땀은 배신하지 않는다고 하잖아요? 열심히 운동하고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지려 노력하며 살아요. 그런 것들이 젊음을 유지하는 비결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인생 후반전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뭘까요?
“요즘 자전거를 타면서 느끼는 게 많아요. 옛날에는 자전거로 산에 오를 때 악착같이 상대에게 뒤지지 않으려 했는데 요즘엔 달라요. 저 친구가 강해진 게 아니라 사실은 내가 약해진 거거든요. 우면산에는 제가 개발한 자전거 코스가 있어요. 30여 년 전부터 수백 번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올라갈 때마다 한 번도 쉽게 느껴졌던 적은 없었어요. 산에 오르면서 나이에 맞게 해야 한다는 걸 배웠습니다. 특히 요즘에는 오버페이스하지 말자는 생각을 하면서 산에 오릅니다. 나이 들면서 얻은 교훈이라면 ‘오버페이스하지 말자’라고나 할까요?”
가족관계는 어떻게 되나요?
“아내와 1남 1녀, 다들 무탈합니다. 무탈하니까 둘 다 아직까지 출가하지 않고 저랑 같이 살고 있겠죠(웃음)? 저는 아이들한테 결혼하라고 재촉하지도 않아요. ‘네 마음대로 하라’고 합니다. 편하게 사는 거죠.”
김세환이 부인 이현숙씨를 처음 만났을 때, 이씨는 이화여대 재학 중인 학생이었다. 김세환은 친구 결혼식에 갔다가 이현숙씨를 만나 첫눈에 반했다. 두 사람이 결혼을 생각할 무렵 이현숙씨는 “우리 아버지가 군인이세요. 좀 엄한 분이라 허락받기 어려울 텐데”라고 걱정했다. 그러자 김세환은 “내가 죄지었어요? 아버지가 훌륭한 분이라면 나같이 훌륭한 사윗감 놓치지 않으실 걸”이라며 웃었다. 김세환의 배짱에 감복한 장인어른은 두 사람의 결혼을 승낙했다.
새 앨범 내고 트로트에 도전장
자녀들에게 굉장히 민주적인 아버지겠어요.
“저는 친구들과 술 마실 때도 그래요. 첫 잔은 다 함께 마시되 이후로는 각자 편하게 마시자고 합니다. 사람이 다 다른데 어떻게 같음을 강요할 수 있어요? 자동차도 4기통, 6기통 다 다르듯이 말이에요. 동호인들과 자전거 탈 때도 ‘죽음의 조’와 ‘보험 조’ 둘로 나눠요. ‘죽음의 조’는 빨리, ‘보험 조’는 천천히 자기 페이스대로 가는 거죠. 대신 앞서가는 사람들이 기다려 주고, 나중에 정상에서 함께 만나는 겁니다. 내가 존경받고 싶다면 그 전에 상대방을 먼저 존경해야 합니다.”
새 앨범을 내셨죠?
“근 20년 만인 올해 3월 새 앨범을 냈어요. 새 앨범을 내면서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었어요. 젊어서부터 팝 쪽에 가까운 음악이나 통기타 음악을 많이 했는데 새로운 경험을 해보고 싶었던 거죠. 돌이켜 보면 음악도 마찬가지예요. 내 팬들도 같이 늙어 가잖아요? 그러면 팬들은 대부분 60세가 넘었는데 저도 거기에 맞춰야 하지 않겠어요? 어려운 코드로 기타 치며 노래할 게 아니라 트로트에 도전해 보기로 마음먹었어요.”
김세환의 새 앨범은 모두 8곡으로 구성됐다. 타이틀곡 ‘사랑이 무엇이냐’(심양구·정기수 작사, 정기수 작곡)를 비롯해 그의 대표곡이라 할 ‘사랑하는 마음’ ‘길가에 앉아서’ ‘비’ ‘옛 친구’ 등도 수록돼 있다. 김세환은 “트로트라고 해서 마냥 꺾어서 부른 건 아니고, 트로트 팝이라고 할 수 있다”며 “예전 히트곡들은 요즘 감각으로 새롭게 불러 봤다”고 했다.
팬들에게 인사말을 전해 주신다면.
“팬들 덕분에 오늘 이 인터뷰도 할 수 있는 것 아닐까요? 젊어서부터 김세환을 좋아해 주신 팬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이 지면을 통해 기원합니다.”
글 최경호 월간중앙 기자 squeeze@joongang.co.kr / 사진 김경빈 선임기자 kgboy@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