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은 장기전, 슈워제네거 같은 근육질이 공부에 딱

중앙선데이

입력 2019.12.07 00:02

업데이트 2021.08.19 14:27

지면보기

664호 26면

[김영민의 공부란 무엇인가] 공부와 체력 

일러스트=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일러스트=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헛소리를 일삼는 상대에게 자비심을 가질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아, 저 사람이 체력이 달려서 저러는구나, 라고 생각하면 된다. 체력이 달리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집중력이 떨어진다. 사고력이 저하된다. 말이 귀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글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결국, 헛소리를 하게 된다. 발표하다 말고, 느닷없이 에미야, 팔다리가 쑤신다! 라고 소리 지르게 된다. 다른 직종에서도 그렇겠지만 학자에게 헛소리는 치명적이다. 헛소리를 하지 않으려면 체력 관리를 해야 한다. 체력이 필요하기로는, 듣는 이도 마찬가지다. 체력이 달리면, 헛소리에 대한 저항력이 약해져서 상대에게 상냥하기 어렵다. 까칠한 사람으로 찍히면 사회생활이 어렵다.

저질 체력 땐 집중·사고력 저하
헛소리에 대한 저항력도 약해져
힘이 좋아야 창의·도전적 시도

정신력도 아껴 써야할 한정 자원
학인은 운동으로 스트레스 풀어야

매사에 체력은 기본이지만, 학문의 길에서 체력은 특별히 중요하다. 학문은 장기 레이스이기 때문이다. 열정을 오래 유지할 체력이 없으면, 소기의 성과를 낼 수 없다. 맹자는 말했다. “무엇인가를 행하는 것은 우물을 파는 것과 같다. 우물을 아홉 길을 파도 샘에 이르지 않으면, 그것은 쓸모없는 우물이 된다(有爲者辟若掘井, 掘井九軔而不及泉, 猶爲棄井也).” 연인을 오래 기다리면 뭐하나? 한 시간 있다가 지쳐 가버리면, 결국 못 만난 것이다, 바위를 오래 내려치면 뭐하나? 바위가 갈라지기 직전에 지쳐 그만두면, 결국 바위를 가르지 못한 것이다. 과정 자체를 즐길 수 있는 사람이라면 괜찮겠지만, 기어이 일정한 성과를 거두고자 하는 사람은 장기전에 필수적인 체력을 길러야 한다.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시도도 체력이 좋아야 할 수 있다.

유서 안 남기는 이유? 기운 없는 탓

체력이 이토록 중요한데도 불구하고, 두뇌의 중요성에 비해 체력의 중요성은 그간 충분히 강조되어 온 것 같지 않다. 일단 중·고교 교육에서부터 체력단련은 저평가되어왔다. 한국의 학교에서 일주일의 체육 시간이 몇 번이나 되는가? 그리고 그 시간은 정말 학생들의 체력향상에 도움을 주는가? 그나마도 고3이 되면 체육 시간을 없애거나 줄이지 않나? 명목은 체육 시간이지만, 그 시간에 소위 주요과목 예습과 복습을 하고 있지나 않나? 한국 학생들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가장 조금 자고, 가장 적게 운동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교육환경은 학생들에게 그릇된 신호를 줄 공산이 크다. 창백한 얼굴로 카페인 음료를 들이켜며 창가에 앉아 카뮈의 이방인을 읽는 학생이 하나 있다. 그러다가 눈이 피로해질라치면, 흥분한 포유류처럼 운동장을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힐끗 보면서 한마디 중얼거리는 거다. “짐승들….”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은 “공부는 몸이 부실한 얘들이 살아남기 위해 하는 거지”라고 중얼거리는 줄도 모르고 말이다. 대학에 들어간다고 해서 사정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해외의 대학 중에는 일정 정도 수영 실력이 되지 않으면 아예 졸업하지 못하는 곳도 있건만 술, 담배에 푹 절은 채로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밤새 게임을 하다가 졸업하는 학생들이 득실거리는 곳도 있다. 그 역시 아름다운 추억일 수는 있겠으나, 대학 시절 내내 짐승처럼 운동장을 누빈 이들과 체력적으로 큰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젊은 시절에는 체력단련의 중요성을 절감하지 못할 수 있다. 젊은 혈기로 말미암아, 카페인 음료에만 의존해 가며 책을 읽어도 그럭저럭 자기 앞가림을 해나갈 수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젊음은 유한하고, 육신은 퇴화하며, 체력은 한정된 자원이었음이 판명된다.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체력이 고갈되고 나면 결국 공부를 그만둘 수밖에 없다. 공부를 그만두어도, 사람들은 왜 그가 공부를 그만둔지조차 모른다. 너무 지친 나머지 왜 공부를 그만두는지 말할 기력조차 없기 때문이다. 누가 그랬던가, 사람들이 유서를 남기지 않는 이유는 단순히 기운이 없어서라고.

간신히 버텨내어 학자 비스무레한 존재가 되었다고 치자. 그래도 방심하면 안 된다. 한국에서 학자연하는 사람 중에는 술을 많이, 자주, 그리고 늦게까지 퍼마시는 이들이 제법 많기 때문이다. 플라톤의 대화편에서는 술을 마시면서도, 인류사에 길이 남을 심오한 철학적 대화가 오가건만, 이곳은 고대 희랍이 아니다. 대개 남들 험담이나 신세 한탄이나 객쩍은 농담으로 시간을 허송한다. 어쩌다 한 번이면 모를까, 밤늦게까지 술 마시며 시답지 않은 소리나 하는 걸 습관으로 삼아서야, 학자의 꼴을 유지하기 어렵다. 일단 체력과 두뇌의 활력이 유지되지 않는다. 체력이 달리면 정신력으로 버티면 되지 않느냐고? 정신력도 한정 자원이다. 맛없는 디저트를 정신력으로 참고 먹어야 할 때를 대비해서, 정신력을 아껴 써야 한다.

체력을 강화 혹은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 일단, 건강하게 태어나는 것이 좋다. 마치 술이 원래 센 사람이 숙취에 대해 모르는 것처럼. 체력이 좋게끔 태어난 사람은, 체력이 달린다는 느낌 자체를 모르는 것 같다. 피곤하다는 게 뭐야? 공복감 같은 건가? 가려움증 같은 건가? 이에 반해, 체력이 부족한 사람은 팔과 다리를 몸통에 붙이고 있기 위해서만도 안간힘을 써야 한다. 자칫 긴장을 풀었다가는 언제고 팔다리가 몸통에서 떨어져 바닥 위를 구를지 모른다. 저질 체력 보유자는 잠을 자는 동안에도 자신이 지쳐있다는 것을 느낀다.

역도 여왕 장미란의 유학길 응원

역도선수 장미란.

역도선수 장미란.

건강하게 태어났다고 해서 너무 자만해서는 안 된다. 건강하게 태어나봤자, 결국은 인간의 몸이다. 꼬리도 지느러미도 없다. 호랑이나 상어에 비해 너무 하찮다. 건강을 과신했다가, 일찍 세상을 떠난 이들이 허다하다. 건강하게 태어나는 것은 물론 축복이지만, 그건 자신이 선택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 문제이다. 이미 태어났는데 저질 체력인 걸 어쩌란 말인가? 그다음에 할 수 있는 것을 할 도리밖에 없다. 잘 먹어야 한다. 몽골 격언 중에 “고기는 인간에게 주고, 풀은 짐승에게 주어라”라는 말이 있다. 채식주의자가 아니라면, 고기든 생선이든 양질의 단백질을 챙겨 먹는 것이 좋다.

특히 어렸을 때 잘 먹는 것이 중요하다. 어렸을 때 잘 먹으려면 아무래도 부유한 집이나 복지국가에 태어나는 게 좋은데, 이 역시 자신이 선택할 수 없는 일이다. 할 수 없다. 최후의 방법을 쓰는 수밖에. 최대한 버텼다가 학술회의가 끝난 뒤 열리는 회식에 참여하라. 그곳에서는 대개 양질의 음식이 무료로 제공된다.

이처럼 집요한 노력을 통해 양질의 단백질을 섭취하는 데 성공했다고 치자. 그다음에는 운동을 해야 한다. 공부의 결과는 오래 걸려서 나타나는데 비해, 운동의 결과는 상대적으로 빨리 나타난다. 늘어나는 근육을 보면서, 지식도 그처럼 늘어나기를 기대해보는 거다. 운동은 정신적 스트레스를 푸는 데도 유용하다. 학인이라면, 음주가 아닌 운동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운동을 격렬히 하다 보면 잡념이 사라지니, 머리를 잠시나마 쉬게 할 수 있다. 그뿐이랴. 운동은 사고능력과 관련된 백질 부위 수축을 막아 두뇌를 건강하게 만들기까지 한다.

운동할 처지가 되지 않는다고? 운동할 기운 자체가 없다고? 그러면 일단 쉬어야 한다. 이때는, 윈스턴 처칠의 조언을 경청하는 것이 좋다. 누군가 인생의 성공 비결을 묻자, 처칠은 이렇게 대답했다. “에너지 절약이 관건이다. 앉을 수 있는데도 서 있어서는 안 된다. 누울 수 있는데도, 앉아 있어서는 안 된다.”  공부에 있어 이처럼 체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나는 아널드 슈워제네거나 실베스타 스탤론 같은 근육 덩어리를 볼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저들이야말로 학문에 적합한 인재인데! 그 몸을 가지고 왜 영화배우를 했어! 대학원에 갔어야지! 체력이 좋으니, 그냥 오로지 공부에만 집중하면 될 텐데! 올림픽 역도 금메달리스트 장미란 선수가 유학을 간다는 소식을 접하고서야 이 안타까움은 사그라들었다. 장미란 선수, 팬이에요. 오로지 공부에 집중하여 좋은 결과 있기 바랍니다. 무거운 거 들 일 있으면, 절 시키세요.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하버드대에서 동아시아 사상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브린모어대학 교수를 지냈다. 영문저서로 『A History of Chinese Political Thought』가 있으며, 에세이집으로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이 있다. 동아시아 정치사상사, 비교정치사상사 관련 연구를 해오고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Innovation La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