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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이여! 허위의 옷을 찢고 이카로스의 날개를 달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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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4호 면

격월간 문예 전문지 '신문예'. 올해 마지막 호인 11/12월호 앞표지에 통산 100권째임을 뜻하는 'vol. 100'이라는 문자·숫자가 인쇄돼 있다. 세계적으로 시인 숫자가 많고, 문예지 숫자에 있어서도 뒤지지 않는다는 '문학 융성국'이지만 문학 잡지 100호 발행은 쉬운 일은 아니다. 신문예는 1980년 연간지로 출발했다. 2003년 현 발행인인 시인·문학평론가 지은경(69)씨가 잡지를 인수하면서 격월간 체제로 바꿔 오늘에 이르렀다. 그러니까 올해 100권째 발행은 순전히 지씨와 옆에서 지씨를 돕는 하옥이 시인의 공로다.
 외형은 화려할지 몰라도 문예지 발행은 과거와 달리 남는 장사가 아니다. 원고료, 지대 등 비용 부담 때문에 낼수록 손해다. 지씨는 어떻게, 무슨 생각으로 잡지를 꾸려온 걸까.
 6일 오후 지씨를 전화 인터뷰했다. 지씨는 누구보다 활기찬 성격이었다.

지은경 시인.

지은경 시인.

 -그동안 어려움이 많았을 것 같다.
 "문학을 사랑하지 않으면 하지 못할 일이다. 한 호에 수백 만원씩, 1년에 수천 만원 들어간다. 봉사하는 마음으로 잡지를 꾸려왔다."
 -비용 충당은 어떻게. 정부 지원은 받나.
 "단행본 출판사 '책나라'를 운영한다. 여기서 나오는 수익금으로 잡지를 낸다. 정부 지원금은 여러 차례 신청했으나 받지 못했다. 받는 곳은 계속해서 받지만 우리 같은 잡지는 통 지원을 해주지 않는다."
 덕성여대 철학과를 졸업한 지은경씨는 외국인 강사를 고용해 영어학원을 운영하다가 1986년 한국시단의 원로 김남조 시인이 관여하는 보리수시낭송회 활동에 참여하며 시와 인연을 맺었다. 1995년 정식 등단('문예사조'), 명지대 박사 학위 취득에 이어 지난해 평론집 『의식의 흐름과 그 모순의 해법』을 출간하며 활동영역을 넓혀 왔다. 회원 수 1500명에 이르는 한국현대시인협회 부이사장을 연임했고 곧 주인공이 결정되는 차기 이사장 물망에 오르내린다.
 지씨는 "21세기는 다양성을 수용하는 시대"라며 모더니즘이나 전통 서정 같은 특정 유파에 갇히지 않는 열린 미학을 추구하는 게 자신의 시론(詩論)이라고 소개했다. 전화 인터뷰 후 보내온 e메일에서 지금까지 자신의 이력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저는 결코 문학적인 재능이 뛰어나다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제가 살아온 시대는 남권주의 문화속에서 여성이 사회활동하기가 힘들었습니다. 지금 문단도 남성우월주의 문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문학을 선택한 것은 글로서, 억압과 불평등에 대한 자기의 뜻을 펼 수 있는 곳이 문학이었습니다. 시는 보잘 것 없는 저를 한없이 품어주고 위로해 주고 사랑해 주었습니다."
 보편에 등돌리지 않으면서도 페미니즘 지향이 드러나는 발언이다. 지씨의 페미니즘 지향은 대표작이라며 소개한 작품들 가운데 다음 작품에서 보다 선명해진다. '이카로스의 노래' 전문이다.
 "이 땅은/ 이 세상은/ 나를 여자라 부르며/ 수십 년 동안 괄호 안에 묶었다// 아직도 나는/ 수레바퀴에 매인/ 명령에 순종해야 하는/ 목걸이가 채워진 애완견이다// 조건이/ 사회적 조건이/ 발목에 규정을 채우며/ 나를 비상사태로 몰았다// 여자들이여!/ 허위의 옷을 찢고/ 이카로스의 날개를 달아라/ 날다가 추락할지라도".
 지씨는 문학이나, 현대시인협회 같은 단체 운영이나, 여성이라서 더욱 섬세하게 잘 할 수 있다고 믿는 듯했다.

격월간 문예지 신문예 100호 발행한 시인 지은경씨

신준봉 전문기자/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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