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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골 당대표 전력 ‘추다르크’…유연성 부족 지적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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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추미애 법무부 장관 후보자는 대구에서 태어나 대구 경북여고와 한양대 법대를 졸업하고 1982년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95년 김대중 당시 새정치국민회의 총재의 권유로 정치에 입문할 때는 대구 세탁소집 딸에서 판사로 성공한 이력이 주목받기도 했다.

DJ 권유로 정치 입문해 친문 전향

추 의원을 수식하는 말은 본인 이름과 잔다르크를 딴 ‘추다르크’다. 1997년 대선 때 고향인 대구에서 김대중 후보를 위한 ‘잔다르크 유세단’을 이끌며 “지역감정 악령으로부터 대구를 구하는 잔다르크가 되겠다”고 한 데서 비롯된 별명이다. 2009년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으로 있을 때는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의원 출입을 막고 한나라당 의원만으로 복수노조법 수정안을 통과시키는 강단을 보이기도 했다. 추 의원의 소신을 보여준 사례라는 평가와 정치적 유연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동시에 받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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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스펙트럼은 비노와 친문 사이에 있다.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를 지지하며 당선에 기여했지만 2003년 말 열린우리당 분당 때 민주당에 남고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때 찬성표를 던지면서 친노와 갈라섰다. 훗날 추 의원은 “가장 큰 실수이자 과오”라고 후회하며 사죄 의미로 3보 1배를 했다. 지금도 그때 후유증으로 무릎 관절이 좋지 않다고 한다.

2015년 문재인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에 의해 지명직 최고위원이 되고 나서부터는 쭉 친문의 길을 걸어왔다. 2016년 8월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에 당선된 것도 친문의 조직적 지원이 있었고, 2년의 대표 임기를 꽉 채우는 동안 2017년 대선 승리, 2018년 지방선거 압승 등 전과(戰果)를 내기도 했다. 민주당 핵심 당직자는 “지난해 당 대표 퇴임을 한 달여 앞두고 문 대통령과 독대하면서 ‘고생 많았다’는 격려와 함께 향후 정치적 행보에 대한 얘기도 나눈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김형구 기자 kim.hyoungg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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