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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석 유산슬, 김영철의 뽕DM…개그맨이 트로트로 간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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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트 가수 '유산슬'로 활동하는 유재석. MBC '놀면 뭐하니'에서 방송된 '사랑의 재개발' 뮤직 비디오 촬영 현장 모습이다. [방송 캡처]

트로트 가수 '유산슬'로 활동하는 유재석. MBC '놀면 뭐하니'에서 방송된 '사랑의 재개발' 뮤직 비디오 촬영 현장 모습이다. [방송 캡처]

개그맨과 트로트의 만남. 최근 연예계에서 두드러진 현상이다. 신인가수 ‘유산슬’로 인기 돌풍을 일으킨 유재석을 비롯해 5인조 그룹 ‘마흔파이브’를 결성하고 활동에 들어간 허경환ㆍ김원효ㆍ박성광ㆍ박영진ㆍ김지호, ‘따르릉’ ‘안되나용’에 이어 신곡 ‘신호등’을 발표한 김영철 등 트로트 가수로 정체성을 확장시킨 개그맨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들은 신곡 홍보를 위해 TV 토크쇼와 라디오 프로그램뿐 아니라 ‘뮤직뱅크’(KBS2),  ‘쇼 음악중심’(MBC), ‘더 쇼’(SBS MTV), ‘쇼 챔피언’(MBC플러스) 등 음악 프로그램까지 섭렵하며 정식 가수의 세계에 도전장을 내미는 모양새다.

‘트로트 개가수(개그맨+가수)’ 바람의 상징적인 존재는 MBC 김태호 PD의 복귀작 ‘놀면 뭐하니?’에서 ‘뽕포유 프로젝트’로 만들어낸 유산슬이다. 시작은  ‘유재석 혼자 하는 무한도전’식 설정으로 다소 장난스러웠지만 반응은 폭발적이다. 유산슬 팬클럽도 결성됐고, ‘합정역 5번 출구’는 멜론 음원차트 100위권 진입(지난달 16일, 97위)까지 이뤄냈다. 방송사의 울타리를 넘어 KBS1 ‘아침마당’, TBS FM ‘배칠수ㆍ박희진의 9595쇼’에도 출연하는 등 트로트 가수로서 맹활약하고 있다.

음악 프로그램 ‘더 쇼’(SBS MTV)에 출연해 신곡 '신호등'을 부르는 개그맨 김영철.  [방송 캡처]

음악 프로그램 ‘더 쇼’(SBS MTV)에 출연해 신곡 '신호등'을 부르는 개그맨 김영철. [방송 캡처]

김영철은 2017년 홍진영이 프로듀싱한 ‘따르릉’으로 일찌감치 트로트에 발을 담가 ‘뽕DM(트로트+일렉트로닉 댄스 음악)’의 장을 연 바 있다. 지난달 21일 발표한 ‘신호등’은 S.E.S 바다가 작사ㆍ작곡ㆍ디렉팅을 맡아 화제가 됐다. 소속사인 미스틱스토리의 고두리 홍보팀장은 “‘신호등’은 멜론과 벅스 등 음원 차트에서 트로트 분야 순위 4위까지 올라갔다”며 “(김영철은) 개그맨으로 출발했지만 가창력도 좋고 가수에 대한 욕심이 있다. 특히 자신의 흥을 내뿜을 수 있는 트로트 쪽으로 열정이 많다. 노래 공연을 요청하는 행사 섭외도 많이 들어온다”고 밝혔다.

세미 트로트 ‘스물마흔살’로 데뷔한 ‘마흔파이브’의 다섯 멤버는 KBS 22기 공채 개그맨 동기들로, 모두 1981년생이다. ‘술 한잔 기울이며 돌아간 우리 스무살’로 시작해 ‘마흔대로 살지말고 마음대로 사는거야’로 이어지는 데뷔곡의 가사는 이들이 직접 썼고, 가수 홍진영이 보컬 지도와 프로듀싱을 맡았다. 또 박현빈 ‘샤방샤방’, 홍진영 ‘눈물비’ 등에 참여했던 프로듀싱팀 플레이사운드의 작곡가 알고보니혼수상태(김경범)와 김지환 등도 힘을 보태 완성도를 높였다.

음악 프로그램 '뮤직뱅크'(KBS2)출연해 데뷔곡 '스물마흔살'을 부르는 '마흔파이브'. 왼쪽부터 김지호ㆍ박성광ㆍ김원효ㆍ허경환ㆍ박영진으로, 모두 KBS 공채 22기 개그맨이다.

음악 프로그램 '뮤직뱅크'(KBS2)출연해 데뷔곡 '스물마흔살'을 부르는 '마흔파이브'. 왼쪽부터 김지호ㆍ박성광ㆍ김원효ㆍ허경환ㆍ박영진으로, 모두 KBS 공채 22기 개그맨이다.

개그맨들의 트로트 도전엔 최근 젊은 세대 사이에서 불고 있는 트로트 붐의 영향이 크다. 이영미 대중문화평론가는 “과거 신파적 미감을 내세우며 슬픈 노래로 자리매김했던 트로트가 흥겨운 노래로 바뀌면서 개그맨들의 새로운 무대로 부상했다”고 말했다. 유산슬의 신곡 ‘사랑의 재개발’을 예로 들며 “‘싹 다 갈아 엎어주세요 나비 하나 날지 않던 나의 가슴에 재개발해주세요’ 같은 노골적인 가사로 유치한 욕망을 자극해 쾌감을 불러일으키는 트로트를 소화하기에 평소 스스로 망가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못난 모습을 드러내 남을 웃겨온 코미디언이 최적화돼 있는 셈”이라고 분석했다.

TV 코미디 프로그램의 쇠락도 개그맨들이 ‘트로트 외도’에 나서는 배경이 된다. 한때 KBS 예능의 간판으로 꼽혔던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 ‘개그콘서트’는 7일부터 토요일(오후 9시15분)로 방송시간을 옮긴다. 2001년부터 19년째 일요일 밤 시간대를 지켜오며 ‘주말 마무리’를 알렸던 개그콘서트가 최근 5% 안팎의 시청률로 고전하다 관찰형 육아예능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자리를 양보한 것이다. 이에 대해 박성광은 지난달  ‘마흔파이브’의 첫 앨범 발매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요일을 오래 지켰던 프로인데 밀렸다는 게 우리에겐 충격”이라고 털어놨다. 개그콘서트에서 ‘바~로 이 맛 아입니까’  ‘∼ 하고 있는데’ 등의 유행어를 만들어내며 스타덤에 올랐던 허경환도 “TV 공개 코미디는 많이 힘들 것 같다. 삶은 자극적인데 뱉을 수 있는 건 한정적이다. 자칫 ‘비하’나 ‘왜곡’이 돼버릴 수 있다. 특히 KBS는 공중파여서 제약이 너무너무 심하다”고 말했다.

이들은 “개콘이 안 돼서 음악을 하는 것은 아니다”(박성광)라고 했지만,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개그맨들이 자신의 고유 영역 자체가 줄어들고 있는데다 그 무대에 서봐야 별다른 주목을 못 받다보니 노래나 유튜브 등 새로운 분야를 모색하는 것 같다”고 짚었다. 이어 “방송의 위기, 코미디의 위기가 구조적으로 진행되는 상황이어서 이런 현상은 더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지영 기자 jy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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