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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빡세게' 자율규제, 기존업계와 상생···이 스타트업이 법 만든 비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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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준 온투협 준비위원장 인터뷰 

김성준 온라인투자연계금융협회 준비위 공동준비위원장 겸 렌딧 대표가 지난달 13일 서울 을지로 렌딧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 렌딧]

김성준 온라인투자연계금융협회 준비위 공동준비위원장 겸 렌딧 대표가 지난달 13일 서울 을지로 렌딧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 렌딧]

국회가 마비되면서 스타트업계 여기저기서 탄식이 들린다. 인공지능(AI) 기술 고도화에 필수적인 데이터 3법(개인정보보호법·신용정보법·정보통신망법)에서부터 새로운 이동 서비스를 법제화하는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개정안, 전동킥보드 서비스의 법적 근거를 만들어주는 도로교통법 개정안에 이르기까지 시급한 법안들도 함께 마비됐기 때문이다. 자칫하면 몇년간의 법제화 노력이 모두 물거품으로 돌아갈 위기에 처했다.

그런 면에서 정부가 지난달 26일 공포한 온라인투자연계금융업법은 이례적 성공사례다. 규제 틈바구니에서 스타트업이 새로운 산업을 키웠고, 이를 법제화하는 데까지 성공했기 때문이다. 이 법은 돈이 필요한 사람(대출자)과 돈을 빌려줄 사람(투자자)을 이어주는 피투피(P2P·Peer to Peer) 금융 기업에 새로운 법률적 지위를 부여하고 해당 기업의 의무, 관리방안 등을 담은 법이다. 2014년 말 관련 스타트업이 국내 처음 등장했는데 4년여 만에 제도권에 안착한 것이다.

중앙일보는 지난달 13일 김성준(34) 온라인투자연계금융협회 준비위 공동준비위원장을 서울 을지로 렌딧 사무실에서 만나 법제화 과정을 들었다. 김 위원장이 2015년 3월 창업한 렌딧은 개인신용대출 P2P 금융업 시장 점유율 1위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앞줄 오른쪽)과 민병두 국회 정무위원장(앞줄 왼쪽 네번째)이 지난 9월 서울 남대문로 대한상공회의소빌딩에서 열린 'P2P 금융제정법 취지에 맞는 소비자 보호와 산업 육성의 방향성 정책토론회'에서 참석자들과 함께 손을 맞잡고 있다. [뉴스1]

은성수 금융위원장(앞줄 오른쪽)과 민병두 국회 정무위원장(앞줄 왼쪽 네번째)이 지난 9월 서울 남대문로 대한상공회의소빌딩에서 열린 'P2P 금융제정법 취지에 맞는 소비자 보호와 산업 육성의 방향성 정책토론회'에서 참석자들과 함께 손을 맞잡고 있다. [뉴스1]

①스타트업 고사 전 발 빠른 유권해석

김 위원장은 P2P 금융이 새로운 산업이지만 기존 법 테두리 안에서 사업할 수 있게 정부부처에서 발 빠르게 움직인 점을 가장 중요한 비결로 꼽았다. 2014년 말 P2P 금융 스타트업 8퍼센트가 처음 서비스를 시작했는데 2015년 2월 금융감독원이 이를 불법 대출이라며 홈페이지를 폐쇄하도록 했다. 하지만 폐쇄 이후 금융위원회가 발 빠르게 유권해석을 내려줘 사업을 재개할 수 있었고 다른 스타트업도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다.

발빠른 유권 해석이 어떻게 가능했나 
“모회사는 전자상거래플랫폼으로 등록하고 대부업법상 대출이 가능한 자회사를 세워 운영하는 방식을 당시 중소기업청에서 중재했고, 이를 금융위원회가 허용하면서 현재 방식으로 사업이 가능해졌다. 행정부에서 '일단 해도 된다'고 하는 순간 스타트업들이 혁신할 수 있는 ‘판’이 본격적으로 형성됐다. 사실 새로운 산업의 태동은 시간과의 싸움이다. 스타트업의 생존 기간은 매우 짧기 때문이다. 스타트업이 숨넘어가기 전에 정부가 유권해석을 내려줘 생명을 연장할 수 있었다. 이후 점점 산업이 커졌고 금융위에서 2017년 ‘P2P대출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등 제도화의 길로 접어들었다.”
지난 9월 23일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P2P 금융 제정법 취지에 맞는 소비자 보호와 산업 육성의 방향성 정책토론회'에 앞서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은성수 금융위원장, 민병두 국회 정무위원장, 김종석 자유한국당 정무위 간사, 유동수 더불어민주당 정무위 간사, 김성준 렌딧 대표.[연합뉴스]

지난 9월 23일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P2P 금융 제정법 취지에 맞는 소비자 보호와 산업 육성의 방향성 정책토론회'에 앞서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은성수 금융위원장, 민병두 국회 정무위원장, 김종석 자유한국당 정무위 간사, 유동수 더불어민주당 정무위 간사, 김성준 렌딧 대표.[연합뉴스]

②강도 높은 자율규제

렌딧, 8퍼센트, 팝펀딩, 모우다, 펀다 등 신용대출을 주로 하는 P2P 금융 스타트업들은 지난해 9월 자율규제안을 발표했다. 통상 저축은행, 카드사 등은 관련 법상 위험자산 비율이 20~30%인데 이를 고려해 P2P 금융사는 30%로 한도를 정했다. 또 외부감사 대상 기업이 아니지만, 의무적으로 외부 감사를 받도록 하는 등의 내용도 포함됐다.

왜 자율규제가 중요한가. 
“2017년을 전후해 업계에서 사고가 많이 터졌다. 예컨대 이쪽 대출을 가져다 저쪽 대출을 메우는 ‘돌려막기식’ 투자 상품을 만든 곳이 나와 투자자 피해가 생겼다. 이로 인해 업계 전체에 대한 신뢰가 떨어졌다. 신생 산업이고 돈을 다루는 특수산업이기 때문에 업체 스스로 소비자 보호 문제에서만큼은 투명하게 행한다고 생각했다. 관련 스타트업이 모여 인터넷기업협회 산하 마켓플레이스 금융협의회라는 단체를 만들었고 '빡쎈' 자율규제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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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기존 산업과 갈등 최소화

타다 사태로 알 수 있듯이 혁신 산업은 필연적으로 기존 산업과 갈등 상황에 놓이기 마련이다. P2P 금융 스타트업은 이 같은 구조적 문제를 고려해 서비스 초기부터 ‘중금리’(평균 12%)를 강조했다. 4% 안팎인 제1 금융권의 대출 금리와 20% 안팎인 제2 금융권의 대출금리 사이 공백 지대에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려 했단 얘기다. 기존 시장을 잠식하지 않는다는 시그널을 충분히 줬고, 갈등은 크게 불거지지 않았다.

어떻게 갈등을 피해갔나.
“처음부터 비어 있는 걸 채운다는 방향으로 나갔다. 4%와 20% 사이는 굉장히 넓은데 여건상 기존 금융권에서 이 부분을 채우기가 어려웠다. 우리는 기술을 활용해 개인의 신용을 보다 정교하게 평가해 중간 영역의 대출 수요자와 보다 높은 수익을 얻고 싶은 투자자를 이어주는 방향으로 전략을 설정했다. 행정부와 입법부에서도 기존 업계 반발이 크지 않은 데다가, 사회적으로 필요한 서비스라는 점에 공감해 적극적으로 나서줬다. 민병두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시작으로 5개의 법안이 발의됐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왼쪽 두번째)과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오른쪽 두번째)이 지난달 5일 오후 서울 종로구의 한 치킨집에서 규제 개혁 성과를 축하하기 위해 열린 치맥(치킨과 맥주) 파티에서 청년 스타트업 대표 및 참석자들과 건배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이효진 8퍼센트 대표, 박 회장, 김성준 렌딧 대표, 김기웅 심플프로젝트컴퍼니 대표, 차승현 어메이징브루잉컴퍼니 이사, 황인승 클링크컴퍼니 대표, 김민웅 더스킨팩토리 대표, 박 장관, 김재연 정육각 대표. [연합뉴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왼쪽 두번째)과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오른쪽 두번째)이 지난달 5일 오후 서울 종로구의 한 치킨집에서 규제 개혁 성과를 축하하기 위해 열린 치맥(치킨과 맥주) 파티에서 청년 스타트업 대표 및 참석자들과 건배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이효진 8퍼센트 대표, 박 회장, 김성준 렌딧 대표, 김기웅 심플프로젝트컴퍼니 대표, 차승현 어메이징브루잉컴퍼니 이사, 황인승 클링크컴퍼니 대표, 김민웅 더스킨팩토리 대표, 박 장관, 김재연 정육각 대표. [연합뉴스]

④산업계 도움

올해 4월 렌딧 사무실 대표전화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대한상공회의소였는데 “P2P 금융 관련 법안 입법을 돕고 싶다”는 얘기를 했다. 이후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은 법 통과를 위해 5차례 국회를 방문해 의원들을 적극적으로 설득했다. 인터넷기업협회 등은 수시로 성명서를 내 법 통과를 촉구했다. 덕분에 국회에서 잠들어 있던 법안 논의는 급물살을 탔고 본회의 통과로 이어졌다. 김 위원장은 “대한상의, 인터넷기업협회,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등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협회·단체가 다 나서서 우리를 도와줬다”고 말했다.

박민제 기자 letm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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