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민호의 레저터치
#1 : 2003년 3월
“다리는 왜 안 놨어요?”
강우현 당시 남이섬 대표를 처음 만났을 때 던졌던 질문이다. 가평 선착장에서 약 1㎞ 거리. 배를 타도 5분이면 들어가는 남이섬에 다리가 없는 건 소위 업계 상식에 어긋나는 일이었다(아직도 관광 업계에는 개발만이 살 길이라는 업자가 수두룩하지만). 뜻밖의 질문이었는지 그의 눈빛이 잠깐 반짝였다.
“사람들이 에베레스트를 왜 가는 것 같나? 죽도록 고생해서 올라가봐야 눈 덮인 산 아닌가? 그래도 가는 건 에베레스트가 특별하다고 믿어서 아닌가? 사람들이 오게 하려면 특별해야 하네. 특별하지 못하면 특별한 척이라도 해야 하네. 배 시간 맞춰 선착장 도착해서, 줄 서서 표 끊고, 줄 서서 배 타고, 다시 줄 서서 내리고. 그러면서 하나씩 환상이 쌓이는 거네. 내가 특별한 곳에 가고 있다는 환상. 다리로 연결되면 남이섬은 죽네. 아무 때나 들락거릴 수 있으면 남이섬은 뻔해지네. 기자 양반은 황금알 낳는 거위 얘기도 모르시나?”
#2 : 2010년 10월
남이섬에 짚와이어가 설치됐다. 가평 선착장의 80m 높이 타워에서 줄을 타고 남이섬까지 950m를 내려오는 놀이기구다. 당시로선 동양 최대 거리라고 했다. 이 레저 시설을 위해 남이섬·경기도·가평군이 합쳐 35억 원을 투자했다. 나로선 뜬금없어 보였다. 남이섬과 대형 놀이기구는 어울리는 짝이 아니어서였다. 수익성도 미심쩍었다. 1시간에 40명 이상 탑승할 수 없으며 바람이 세게 불어도 멈춰 선다고 했다.
“놀이기구로 보이나?”
강우현 당시 대표가 되물었다. 그리고 스케치 한 장을 보여줬다. 줄에 매달린 사람들이 하늘을 날아 섬으로 들어가는 그림이었다. 그림을 보고서야 속내를 눈치챘다.
“남이섬에 입장하려면 배를 타거나 적어도 하늘은 날아야지.”
짚와이어는 남이섬을 입장하는 두 번째 방법이었다. 다만 그 방법이 조금 더 특이할, 아니 특별할 따름이었다. 그림 아래에 ‘20010811’이라는 숫자가 적혀 있었다. 강우현 대표는 2001년 1월 남이섬에 들어갔다. 애초부터 그는 하늘을 날아 섬으로 가는 장면을 상상했다.
#3 : 2019년 12월
남이섬 짚와이어 10년이 되는 해. 누적 이용객 60만 명을 돌파했다. 수익률은 7.7%라고 했다. 민관특수목적사업의 수입으로는 이례적이다. 수익은 남이섬과 경기도, 가평군이 나눠 갖는다.
잔치를 벌여야 할 판이나 남이섬은 울상이다. 올 3월 공개된 국토교통부의 제2경춘국도 사업 계획 때문이다. 계획에 따르면 북한강에 다리를 세우는데 하필이면 가평 선착장과 남이섬 사이를 가로지른다. 당연히 짚와이어는 철거된다. 선박 안전 같은 문제도 불거진다. 전명준 현 남이섬 대표에 따르면 여러 차례 따졌으나 국토부는 꿈쩍도 안 했다. 남이섬을 비롯한 가평문화관광협회는 매주 월요일 항의 집회를 열고 있다. 벌써 27차례나 진행됐다.
나라님이 길을 내시는데 남이섬 따위는 고려 대상이 아닐지 모르겠다. 다만 알아두시기 바란다. 남이섬 짚와이어는 흔한 놀이기구가 아니다. 남이섬이 국가대표 한류 관광지가 된 건, 다리 대신 짚와이어를 들인 상상력에서 비롯되었다.
이 대목에서 한숨이 나오는 건, 문체부·관광공사 같은 관광 당국의 태도다. 도로 건설은 국토부 영역이어서 할 수 있는 게 없단다. 그럼 국토부에 항의라도 하시라. 국토부 공무원이 무심코 그은 설계도의 줄 하나가 소중한 한류 콘텐트를 망친다고 따져보기라도 하시라. 관광 당국에 부탁한다. 뭐 지을 생각은 그만하시고, 있는 것이라도 지켜주시라. 지난해 기준 방한 외국인(약 1600만 명)의 약 7%가 남이섬을 방문했다(약 120만 명).
레저팀장 ploveso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