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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서소문 포럼

자기파괴적 연동형 비례대표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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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고정애 기자 중앙일보
고정애 정치팀장

고정애 정치팀장

‘개혁’, 좋은 말이다. 너무 좋아, 그림자를 못 보게 할 때가 적지 않다. 노정객이 “정치를 그렇게 하면 안 된다”라고 힐난했다던 선거제 개혁도 그런 예다. 더불어민주당이 군소정당들과 본회의서 처리하려고 한다. 대체로 지역구 250석, 비례대표 50석에 연동형 비례대표를 도입하는 쪽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도 있다.

“50%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그 자기파괴적 위험 때문에 개정안에 담긴 형태로는 절대 도입해서는 안 된다.”

정준표 영남대 교수의 단언이다. 올여름에 이어 최근 정당학회에서도 비슷한 발표를 했다. ‘개정안’이란 건 지역구 225석-비례대표 75석에 50% 연동형 비례대표제다. 그와 통화했다.

자기파괴적 위험이라니.
“지금처럼 지역구와 비례대표에 각각 1표씩 던지는 1인 2표 제도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하면 나중에 불공정하다는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 정치가 엄청난 불신을 가져올 거다. 그런데 지금은 특정 정당에 유불리만 얘기한다.”
독일 선거제를 모델로 했다고 주장한다.
“독일에선 득표를 더 했는데도 의석을 적게 받는 일이 벌어져 2012년 위헌 판정이 났다. 우리가 받아들였다 할 독일 모델이 없어진 거다. 선거제를 바꿨는데 엄청나게 의석이 늘었다. 2017년엔 100여석(정수 598석인데 최종 709석)이었다. 독일인들이 봐도 황당한 거다. 지금은 선거제를 개혁해야 한다고 말한다.” 
연동형 비례대표제서 벌어질 수 있는 일. 그래픽=신재민 기자

연동형 비례대표제서 벌어질 수 있는 일. 그래픽=신재민 기자

그는 ‘개정안’의 여러 문제점을 지적했는데, 그나마 이해하기 용이한 건 다음과 같다. 20대 총선 데이터를 원용했다. 우선 민주당에 주목하자. 비례대표 득표율만 보면 79석이어야 하는데 지역구에선 97석을 얻었다. 이로 인해 비례대표 75석을 1차(50% 연동)로 배분하는 과정에서 민주당은 한 석도 얻지 못한다. 국민의당의 경우엔 83석이어야 하는데 22석이어서 1차 보정으로만 31석을 받는다. 민주당 전략가라면 어떤 고민을 하게 될까. 비례대표 선거에선 우당(友黨)을 찍어달라고 호소하게 되지 않을까. 정 교수는 새누리당을 예로, 자당(自黨) 대신 무소속이나 위성정당 후보로 뛰게 하는 경우도 가정했다. 109석이던 게 135석까지 늘어난다<그래픽 참조>. 상상일 뿐이라고? 이탈리아·알바니아 등 유럽에서 벌어졌거나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먼 나라의 얘기라고? “살아 돌아오라”는 말이 쩌렁쩌렁했던 18대 총선을 떠올려보라. 지금 방식을 적용하면 군소정당의 의석이 크게 늘면서 한나라당은 134석(실제 153석)이 되지만 친박연대의 덕을 본다(14석→28석).

또 다른 생각거리는 특정 인물 중심 정당의 부침이다. 안철수의 국민의당을 떠올려보라. 25석이 아닌 61석일 수 있었다. 정당학회장인 가상준 단국대 교수는 학회장 분위기에 대해 “비례대표를 늘리는 게 맞는데, 연동제보단 기존 방식으로 하는 게 낫겠다는 공감대가 있었다”고 전했다.

여의도는 딴 세상이다. 민주당은 당장의 국정운영을 위해 군소정당들의 도움이 절실하고, 군소정당들은 선거제 개혁을 내세워 자신들의 몫을 늘리는 데 관심 있을 뿐이다. 지역구 감소에 따른 의원들 반발을 줄이고 군소정당이 원내교섭단체(20석)까지 되지 않을 정도의 산법(算法)만 고심할 뿐이다. 이런 다당제가 원하는 바인가.

고정애 정치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