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권석천의 시시각각

문재인 정부의 마지노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4면

권석천
권석천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권석천 논설위원

권석천 논설위원

가슴이 덜컥했다. ‘[속보] 전 靑 민정비서관실 출신 검찰수사관 숨진 채 발견.’ 휴일(1일) 오후의 긴급 뉴스였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4년 12월 숨진 최모 경위가 떠올랐다. 최 경위는 ‘정윤회 문건 유출’ 혐의로 수사를 받던 중이었다. 왜 또다시 실무자가 희생돼야 하는가.

부정과 싸워야 할 청와대가 #“피아 구분”으로 움직인 것인가 #‘결과의 정의’는 지켜져야 한다

숨진 수사관 A씨는 ‘청와대 하명수사’ 의혹과 관련해 그날 검찰에서 조사받을 예정이었다. 청와대 민정 특감반에 파견 근무를 했던 A씨는 김기현 전 울산시장(이하 경칭 생략)에 대한 경찰 수사가 진행되던 중 울산경찰청을 방문했다. 그는 백원우 전 민정비서관이 운영한 감찰 조직에서 활동했다고 한다.

백원우는 김기현 수사의 단초가 됐던 ‘첩보문건’을 박형철 반부패비서관에게 전달한 인물이다. 그는 “통상적인 제보를 단순 이첩한 것뿐”이라고 말한다. 우편 접수든, 인편 접수든 문건을 청와대로 보낸 이들의 저의는 분명하다. ‘청와대를 활용하자.’ 같은 내용이라도 청와대를 거쳐 내려가면 철저히 수사하라는 메시지가 되기 때문이다.

의문은 세 가지다. ①문건은 어디에서,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②백원우는 문건을 누구로부터 전달받았는가. ③청와대 내부자가 문건을 가공한 사실이 있는가. A씨의 죽음으로 김기현 수사의 배후에 무엇이 있느냐는 의구심은 커질 수밖에 없다. 청와대는 “법과 원칙에 따라 업무를 수행했다”(고민정 대변인)는 해명을 넘어 당시 과정과 관련 자료를 있는 그대로 공개해야 한다.

우리 앞에 놓인 의혹은 이것만이 아니다. 2017년 12월 유재수 당시 금융위 금융정책국장의 금품수수 의혹에 대한 특감반 감찰은 왜 중단됐을까. 천경득 총무비서관실 선임행정관이 이인걸 특감반장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피아(彼我) 구분을 해야 한다.”

상대편과 우리 편을 구분하라. 상대편은 악이고, 우리 편은 선이다. 상대편이 저지른 금품수수는 분노해야 할 ‘사건’이고, 우리 편의 금품수수는 어쩔 수 없었던 ‘사고’다. 임기 초반, 청와대의 경각심이 이런 진영논리에 뚫린 것일까. 어떤 설명으로도 흔들릴 수 없는 사실은/ 박근혜 정부에 대한 적폐 청산이 진행되던 2017년/ 청와대에서/ 공직자의 금품수수 문제에 대해/ 공식 ‘비위 통보’나 징계 요구 없이/ 사표 수리로 감찰 절차를 중단시켰다는 것이다.

청와대에서 특별감찰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민정수석은 어떤 자리인가. 정부 부처들의 감찰 기능이 내부 압력과 외부 청탁으로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니까 청와대에서 특별감찰을 하는 것이다. 민정수석의 역할은 외풍을 막아내는 것이다. 조국 당시 민정수석 측에선 “비서관 회의에서 결정된 사안”이라고 하지만, 결정권은 어디까지나 수석에게 있다. 만약 민정수석실이 외부 압력으로 감찰을 중단한 게 사실이라면 부정부패에 가장 격렬하게 맞서야 할 국가기관이 조직논리에 포획된 것 아닌가.

“검찰이 묵혀둔 사건을 냉장고에서 물건을 꺼내듯 자기 입맛 따라 수사하고 기소한다.”(김남국 변호사, 11월30일 촛불문화제) 100% 동의한다. 하지만 검찰의 잘못이 청와대의 잘못을 정당화해주지 못한다. 이것은 개개인의 직권남용이나 피의사실 공표에 멈추는 문제가 아니다. 정권의 도덕성이 걸린 문제다.

어제 문 대통령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국회 파행을 강하게 질타했다. “민생보다 정쟁을 앞세우고 국민보다 당리당략을….” 청와대 의혹에 대한 언급은 한마디도 공개되지 않았다. 대통령이 침묵할 문제가 아니다. 청와대 책임자들에게 철저한 진상 규명을 지시해야 한다. 그래야 올바로 대응할 수 있다.

문 대통령은 취임식에서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다짐했다. ‘기회의 평등’과 ‘과정의 공정’은 어렵더라도 ‘결과의 정의’는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정의는 피아를 구분하지 않는다. 그것이 이 정부가 이를 악물고라도 마지막까지 지켜야 할 마지노선이다.

권석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