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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권력의 윤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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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김승현 기자 중앙일보 사회 디렉터
김승현 논설위원

김승현 논설위원

윤회(輪廻)는 중생이 번뇌와 업에 의해 생사의 세계를 끊임없이 도는 것을 말하는 불교 용어다. 이 세상에 태어나 죽은 자가 다른 세상에 태어나고, 과일의 씨가 나무로 자라 열매를 맺고 거기서 나온 씨가 다시 나무로 성장하는 것이다. 구르는 수레바퀴처럼 시작도 끝도 없다. 신묘한 개념이지만, 불교문화권인 우리에겐 친숙한 측면도 있다. 인당수에 몸을 던진 효녀 심청이 연꽃 속에서 환생한 이야기, ‘눈 흘기면 가자미 된다’는 속담 등에 녹아 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한용운의 ‘님의 침묵’)라는 시구의 먹먹함이 깊은 것도 그래서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번 주말에 읽었다는 책 3권 중 ‘슬픈 쥐의 윤회’라는 제목의 단편 소설집도 있다기에 문득 윤회를 생각했다. ‘키우던 병아리가 죽어서 쥐를 잡았더니 새끼들이 줄줄이 있었다’는 일화 등을 통해 작가(도올 김용옥)는 “윤회의 핵심은 선과 악이 윤회한다는 것…선이 악이 되고, 악이 선이 되는 아이러니가 우리 주변에서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고 했다.

책을 고른 문 대통령의 메시지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최근의 뉴스는 공교롭게 윤회를 연상시킨다. 청와대의 선거 개입 의혹과 관련해 검찰 조사를 받던 전 특별감찰반원(검찰 수사관)이 숨졌다는 소식에 2017년 11월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 방해 혐의로 조사받다가 목숨을 끊은 변모 전 검사가 떠오른다. 선거법 국회 통과를 막으려고 필리버스터를 한다는 자유한국당은 3년 9개월 전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재림이다. 테러방지법 통과를 막겠다며 52년 만에 필리버스터를 소환했던 민주당은 이번엔 반대편에 서 있다. 시작과 끝이 헷갈리는 ‘권력의 윤회’ 안에서 선악은 모호해지고 비운(悲運)만 쌓여 간다.

김승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