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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 내내 다리 휘청였지만 마지막 음을 놓치 않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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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빈필 신년음악회에 섰던 지휘자 마리스 얀손스. [사진 연합뉴스]

2012년 빈필 신년음악회에 섰던 지휘자 마리스 얀손스. [사진 연합뉴스]

지난달 30일(러시아 현지시간) 타계한 지휘자 마리스 얀손스의 마지막 연주는 지난달 8일 뉴욕이었다. 카네기홀에서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BRSO)과 함께 R.슈트라우스 네개의 마지막 노래, 브람스 교향곡 4번, 그리고 앙코르로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 5번까지 연주했다. 이튿날 같은 무대에서의 공연은 취소해 바실리 페트렌코가 대신 지휘대에 섰다. 한 달이 채 안 돼 얀손스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자택에서 세상을 떠났다. 향년 76세. 오랫동안 문제가 됐던 심장병이 원인이었다.

바이올리니스트 이지혜가 전하는 마리스 얀손스의 마지막 무대

 얀손스의 마지막 무대에는 한국인 바이올리니스트가 함께했다. 2016년부터 BRSO의 제2바이올린 수석으로 연주하는 이지혜씨다. 이씨는 20세기의 전통을 잇는 마에스트로 얀손스와의 기억을 본지에 전해왔다. “3주 전 카네기홀에서 그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연주 내내 다리가 휘청거리고 팔도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했지만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더 간절하게 지휘를 하고 싶은 듯했다.” 이씨는 얀손스와의 마지막 음을 기억한다고 했다. “브람스 교향곡의 마지막 음을 절대 놓치 않았다. 그 마지막 모습을 평생 기억하게 될 것 같다.”

 3년간 함께한 지휘자에 대해 이씨는 “음악 앞에서 단 한 번도 자신을 높이지 않은 사람”이라고 기억했다. “오로지 음악을 위해 헌신하고 자신의 들끓는 마음을 모든 연주자, 청중과 나눌 수 있었던 음악가다. 그의 헌신, 겸손함, 열정은 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너무나 크고 값진 선물이었다. 그의 음악이 벌써 그립다.”

바이에른방송교향악단의 제2바이올린 수석인 이지혜(오른쪽)와 지휘자 마리스 얀손스. [이지혜 페이스북]

바이에른방송교향악단의 제2바이올린 수석인 이지혜(오른쪽)와 지휘자 마리스 얀손스. [이지혜 페이스북]

 얀손스는 라트비아의 음악가 집안 태생이다. 아버지 또한 지휘자로, 1985년 세상을 떠나던 날 무대에 섰다. 71년 카라얀 지휘 콩쿠르에서 발탁돼 세상에 처음 알려진 얀손스는 노르웨이 오슬로 필하모닉(1979~2000년)을 맡아 세계적 수준으로 발전시켰다. 얀손스의 지휘 아래 오슬로 필하모닉은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BBC프롬스, 카네기홀에 초청됐다. 2000년대 들어 얀손스는 BRSO와 네덜란드 로열콘세르트허바우(2004~2015)라는 일류 악단을 동시에 이끌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BRSO와는 2003년부터 타계 직전까지 함께 했다. 특유의 따뜻하면서 두터운 사운드로 오케스트라의 트레이드 마크를 만들어냈다.

세계의 음악인이 얀손스를 추모하고 있다.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메트 오페라 오케스트라의 상임 지휘자인 야닉 네제 세갱은 자신의 트위터에 “말을 할 수 없다. 전세계의 큰 손실이다”라고 썼다. 지휘자 안드리스 넬슨스는 “음악 세계가 큰 기둥을 잃었다”고 했으며 뉴욕필하모닉 상임지휘자를 지낸 앨런 길버트는 “음악인, 지휘자, 인간으로서 거대한 인물이었고 나의 진정한 영웅이었다”고 추모했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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