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11월 14일 여의도 5인 회동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지난 11월 14일, 다양한 정파의 ‘5인’이 비공개로 만났다. 5인은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최운열 민주당 의원, 김동철ㆍ오신환ㆍ 유의동 바른미래당 의원.
세 명의 바른미래당 의원 중 2명(오신환ㆍ유의동)은 유승민 의원과 함께 신당 창당(변화와 혁신ㆍ이하 변혁)을 추진하고 있다. 반면 원내대표를 지낸 4선의 호남 중진 김동철 의원은 변혁에 가담하지 않고 있고, 당권파(손학규 대표 측)도 아니다. 바른미래당 의원 세 명이 최운열 의원에게 “김종인 대표를 만나고 싶다”고 부탁해 성사된 자리다. 최운열 의원은 김종인 전 대표가 3년 전 비례대표로 영입한 경제통 의원.
이날 회동의 주제는 중도통합론이었다. 특히 김 의원이 ‘중도통합신당론’을 역설했다고 한다. 김 의원은 오 의원 등을 향해 “지금은 전부 힘을 합쳐야지 보수통합을 할 때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도세력이 대통합해야 한다. 헤쳐모여를 통해 완전히 새로운 판을 짜자. 그 역할을 할 사람은 김종인 대표밖에 없다. 역할을 해주셔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김 전 대표도 “역할이 주어진다면 기꺼이 해보겠다”고 답했다고 김동철 의원이 전했다.
최운열·유의동 포함 비공개 만나 #김종인 “역할 주어진다면 기꺼이” #안철수계 “참여할 생각 없다”
중도빅텐트, 왜 중요한가
‘중도통합’ 은 ‘보수 통합’의 대항마 성격이다. 여기서 중도세력이란 ①바른미래당 당권파(손학규계) ②바른미래당 호남그룹(김동철ㆍ박주선ㆍ주승용ㆍ김관영 등) ③변혁 내 유승민계 ④변혁 내 안철수계(비례대표 6명과 권은희) ⑤대안신당 그룹(박지원ㆍ유성엽ㆍ정대철 등) 등이다. 여기에 ⑥김종인 전 대표 및 그 인맥 ⑦+α 세력(민주당과 한국당의 비주류 의원, 정치신인 등)이 통합대상이다.
조만간 민주당과 한국당에서 공천 물갈이가 시작될 경우 각 당의 비주류 의원 영입도 가능할 것이라고 중도통합론자들은 본다. 자칫 일곱 빛깔 무지개 연합이 될 수도 있지만, 민주당과 한국당이 아닌 세력이 여러 갈래로 각자도생하지 말고 ‘중도빅텐트’를 쳐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 중도통합신당론의 요체다.
정치권 인사들은 한국의 정치지형을 대략 40(진보) vs 40(보수) vs 20(중도)으로 분류한다. 실제 역대 대선이나 총선을 보면 민주당과 한국당이 40% 정도는 기본으로 득표하고, 중도 20%를 향해 거대 양당 중 어느 당이 확장해 나가느냐의 게임이었다.
하지만 제3세력이 20%를 공략해 중도정당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2016년 총선에서 안철수 전 의원이 만든 국민의당이 그랬다.
중도통합신당론은 바로 20%의 중도세력을 겨냥한 움직임이다. 그림대로만 된다면 국민의당처럼 총선 변수가 될 수도 있다. 특히 수도권이나 민주당의 압승이 예상되는 호남권 선거에 영향일 미칠 수 있다.
왜 김종인인가
일단 손학규 전 대표나 유승민 의원이 간판이 되긴 어렵다. 두 사람의 대립으로 인해 바른미래당이 쪼개질 상황이기 때문이다.
바른미래당 호남계 중진들이나 대안신당그룹의 박지원 의원 또한 ‘중도 통합’이란 그림을 완성하기에는 흡입력이 약하다. 그러나 김종인 전 대표는 기존의 정파 간 대립구도에서 비켜나 있었다는 점, 박근혜-문재인 정부를 싸잡아서 공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도통합의 구심 역할이 가능하다는 게 김동철 의원 등의 생각이다. 김 전 대표는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경제민주화 철학을 제공해 박근혜 대통령 당선에 기여했으나 당선 후 경제민주화 공약을 이행하지 않자 2016년 문재인 대통령의 영입 제안을 받아들였다. 민주당 대표로 총선을 지휘해 원내 1당을 만들었으나 총선 뒤 문 대통령과 관계가 틀어졌다.
양당의 비박-비문계 의원들과도 교류가 있기 때문에 공천 국면에서 일부 비주류 의원들을 끌어들일 수도 있다고 본다.
당사자들은 뭐라고 하나
①김종인 반응은= 김 전 대표의 서울 광화문 사무실을 찾아가 신당에 관한 생각을 들어봤다. 5인 회동 얘기를 꺼냈더니 김 전 대표는 ”민주당도 한국당도 답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답답해하는 사람이 많다"며 "새로운 세력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얘기한 적은 있다"고 했다. 하지만 "상황이 복잡해서 12월은 되어야 말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은 구체적으로 얘기할 단계가 아니다"라고 했다. 언론에는 말을 아끼고 있지만 수면 아래에서 그의 움직임은 활발하다. 김종인 전 대표는 김광두 서강대 석좌교수, 장성민 전 의원 등과 수시로 만나 신당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고 한다. 김광두 교수 역시 박근혜 정부 탄생에 기여한 뒤 문재인 대선 캠프에 참여했다는 점에서 김종인 전 대표와 공통점이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을 맡았다가 최근 자진해서 사퇴했다.
②유승민계 오신환은 '부정적 관망'= 오 원내대표도 접촉했다. 오 원내대표는 통화에서 5인회동 사실을 시인하며 “김종인 전 대표가 ‘제3지대가 열리고 있다. 중간지대에서 새로운 세력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중도통합신당을 같이 할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그건 아니다. 김 전 대표와는 예전부터 아는 사이라 그냥 만났을 뿐”이라고 부인했다.
김동철 의원의 설명은 오 원내대표와 온도 차가 있었다. 김 의원이 원내대표를 할 때 수석부대표가 오 원내대표였다. 김 의원은 5인회동 후 오 원내대표와 변혁의 핵심인 정병국 의원을 각각 따로 만났다고 한다. 김 의원은 두 의원에게 “일단 헤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보수통합 대신 나중에 중도빅텐트 안에서 다시 모이자"고 호소했다고 한다. 김 의원은 “오 원내대표도 결국에는 중도통합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깊이 공감했기에 향후 논의에 참여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③안철수계 비례들은 시큰둥= 안철수계 비례대표 의원들은 미지근하다. 청년비례대표 김수민 의원은 ‘중도통합신당’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알고 있고, 같이 하자고 여러 번 권유를 받았지만, 같이 안 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익명을 원한 또 다른 비례대표 A 의원도 ”우리가 파악하기론 안철수 전 대표는 총선까지 움직이지 않는다. 누가 안철수와 연합하느냐를 보여주기 위해, ‘안철수 레거시’가 필요해서 지금 우리를 원하는 건데, 그쪽은 주도세력이 올드보이 이미지라 우리가 생각하는 새 정치와는 거리가 있다“고 했다.
이들은 지금 유승민계와 손잡고 변혁이 추진하는 신당 창당작업에 참여하고 있다. 다만 한국당과의 보수통합에도 반대한다. 그냥 변혁 신당으로 총선을 치르겠다는 입장이다. A 의원은 ”한국당과 1대1 구도로 통합하면 같이 할 수 없다. “며 ” 유승민 의원이 1대1 통합은 절대 없다고 했으니 약속을 지킬 거라고 믿는다“고 했다.
④박주선 등 호남계는 찬성= 김동철 의원은 김종인 전 대표의 반응을 박주선ㆍ주승용 의원에게도 전했다. 박 의원은 통화에서 ”김 의원에게 김종인 씨를 데려와서 함께 하겠다는 것까지는 설명을 들었다. 바른미래당은 실패했고 중도를 지향하는 제3정당은 필요하니 잘 추진해보라“고 했다. 호남의 한 의원은 “‘무능한 민주당, 부패한 한국당 모두 싫다’며 무당층이 급증한 것이 현재의 민심인 만큼 힘만 결집하면 19대 총선 때 국민의당보다 성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관영 의원도 중도통합신당에 찬성입장이라고 한다. 신당이 만들어지면 상대적으로 젊은 김 의원(50세)이나 오신환(48세) 원내대표 등이 당의 얼굴 역할을 해야 한다는 얘기도 있다.
김동철 의원은 "(대안신당 그룹의)박지원, 유성엽, 황주홍 의원과는 생각이 같다"고 말했다.
중도통합신당의 변수는
이르면 12월께 유승민계가 바른미래당을 탈당해 신당 창당을 가시화하면 중도통합신당론도 수면 아래에 있을 수는 없다.
김종인 전 대표를 중심으로 1단계는 ‘바른미래당 호남계+ 대안신당 그룹 +안철수계 비례대표+ α’가 헤쳐모이고, 2단계로 유승민계 변혁 신당과 통합을 추진한다는 계획이지만 ‘중도빅텐트’까지는 갈 길이 멀다.
최소 안철수계 의원들은 1단계에서 합류시켜야 하는데, 당사자들의 반응을 보면 당장은 호남의원 중심의 ‘중도 소통합’ 단계에 머물고 있다.
다만 안철수계 의원들의 거취는 보수통합(황교안+유승민) 문제와 맞물려 있어 아직은 속단하기 어렵다. 보수통합 논의가 물살을 탈 경우, 일부 안철수계 비례대표나 호남 출신 권은희 의원 등은 중도통합신당 쪽으로 기울 수도 있다.
빅텐트론을 현실화하려면 정치력, 노련함과 경륜이 필요한 건 사실이지만 신당 중심세력이 올드한 이미지라는 점도 극복해야 할 과제다. 이 때문에 김동철 의원 등이 김종인 전 대표를 접촉한 것과 별도로 대안신당파 정대철 전 민주당 대표는 독자로 간판급 인사영입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성낙인 전 서울대 총장 등을 접촉한 데 이어 최근에는 박영수 전 특별검사까지 접촉해 정계 입문을 제의한 상태다. 박영수 전 특검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손학규 대표의 거취도 변수다. 손 대표가 이선 후퇴를 거부할 경우엔 제 세력이 모이기 어렵다. 김동철 의원은 “손 대표는 중도통합을 위해 당연히 길을 터줄 것”이라며 “만약 손 대표가 후퇴하지 않을 경우 당을 함께 할 수는 없지 않겠느냐"고 했다.
과연 중도통합신당이 발족할 수 있을지, 발족하더라도 3년 전 국민의당 돌풍을 재연해낼지는 아직 미지수지만, 어쨌든 총선 가도에 '중도빅텐트론'이라는 새로운 흐름이 물밑에서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유성운ㆍ성지원 기자 pirat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