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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적자 세대의 저출산 저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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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하현옥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하현옥 금융팀장

하현옥 금융팀장

영국 보수당 상원의원 데이비드 윌레츠는 2010년 그의 저서 『핀치』에서 베이비붐 세대(1945~65년 출생)와 젊은 세대 사이의 갈등을 예견했다. 베이비부머는 주택가격 상승과 빚 부담을 줄여주는 인플레이션으로 부를 쌓을 수 있었고, 평생직장과 연금 혜택을 누리고 있다. 반면 젊은 세대는 학자금 대출과 고용 불안에 시달리며 주택 마련에 어려움을 겪고 연금을 불리는 일은 꿈도 꾸지 못한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다. 윌레츠는 “베이비부머는 정부에 낸 돈보다 20% 정도 더 받아간다”며 이른바 ‘세대 간 회계’의 불공정성을 지적했다. 세대 간 회계는 세대별로 세금과 보험료 등 정부에 지출하는 금액과 정부에서 받는 각종 혜택(연금과 각종 사회보험, 공공 지출에 따른 기타 혜택)의 손익을 따진 것이다. 일반적으로 노인 세대는 흑자, 아동·청소년 세대는 적자다. 문제는 사회지도층이자 인구 구조에서 압도적 유권자층을 형성한 베이비부머가 기득권을 놓지 않으며 젊은 세대의 부담이 커지는 데 있다.

한국의 상황도 다를 바 없다. 건강보험 보장성을 강화하는 ‘문재인 케어’로 건강보험 누적 준비금 고갈 시기는 2024년으로 3년이나 빨라졌다. 연금 고갈 시점을 늦추기 위한 국민연금 개편안은 지난달 27~28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 소위에도 올라가지 못했다. 국회예산정책처 추산에 따르면 708조원에 이르는 기금 고갈 시점은 2054년이다. 기금이 고갈되면 소득의 9%인 보험료율은 25%까지 올라갈 수 있다.

행여 눈앞의 표심을 건드릴까, 곳간이 비어가도 미래 세대의 어깨에 더 많은 짐을 지워도 ‘나 몰라’라다. 세대 간 회계에서 미래 세대의 적자는 무한 증가 일로다. 3분기 처참한 출산율(0.88명)은 어쩌면 그 무자비함에 대한 집단적 저항일지도 모르겠다.

하현옥 금융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