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인도 ‘스트롱맨’ 모디 총리, 수출규제 나섰다가 '의문의 일패'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채인택의 글로벌 줌업’ 외 더 많은 상품도 함께 구독해보세요.

도 함께 구독하시겠어요?

지난 5월 인도 총선에서 보수 우파인 인도인민당(BJP)을 이끌고 압승을 거뒀던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불과 6개월이 지난 지금 국내 정치와 외교 모두에서 위기에 빠졌다. 사태는 주요 농산물인 양파의 흉작과 이에 따른 수출 규제에서 비롯했다.

[채인택의 글로벌 줌업] #인도, 여름철 폭우로 북부 지역 양파 흉작 #모디 총리, 정치 텃밭인 농촌 민심 요동쳐 #양파, 범인도권 요리 70~80% 필수 식재료 #모디, 양파값 치솟자 물량 확보차 수출 금지 #인도산 양파 의존하던 방글라데시에 직격탄 #친인도였던 민심 들끓으며 외교 역풍 맞아 #방글라, 중국이 일대일로로 접근 강화하자 #중-인 균형외교로 중국과 천적인 인도 압박 #중국과 경제·외교·군사 경쟁해온 모디 타격

지난 10월 29일 인도 잠무에서 짐꾼이 양파를 나르고 있다. 인도는 양파 흉작으로 가격이 폭등해 농민과 소비자의 불만이 커지고 있어 모헨드라 모디 총리에게 정치적인 부담을 주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 10월 29일 인도 잠무에서 짐꾼이 양파를 나르고 있다. 인도는 양파 흉작으로 가격이 폭등해 농민과 소비자의 불만이 커지고 있어 모헨드라 모디 총리에게 정치적인 부담을 주고 있다. [AP=연합뉴스]

기본 식재료 양파, 흉작으로 가격 폭등 

문제는 지난 여름 우기에 양파 주산지인 인도 북부 지방을 중심으로 폭우가 계속된 탓에 지난 9월부터 양파 생산량이 줄고 가격이 치솟은 데서 시작했다. AFP통신 등에 따르면 인도에서 7∼8월에는 ㎏당 20∼25루피(인도의 화폐 단위)였던 양파 소비자 가격이 9월 이후 최고 80루피까지 치솟았다. 인도 루피화의 기준 환율인 1루피당 16.39원을 바탕으로 하면 ㎏당 332~410원이던 양파 가격이 9월 이후 1311원으로 3~4배가 뛰었다. 농산물은 작황에 따라 가격이 오락가락하는 대표적인 상품이긴 하지만 이번 가격 폭등은 이례적이다.

인도식 닭다리 양념구이인 칼미카봅. 오이, 당근, 초귤과 함께 양파를 곁들여 먹는다..범인도권 음식문화에서 양파는 필수불가결한 음식재료다. [중앙포토]

인도식 닭다리 양념구이인 칼미카봅. 오이, 당근, 초귤과 함께 양파를 곁들여 먹는다..범인도권 음식문화에서 양파는 필수불가결한 음식재료다. [중앙포토]

범인도권 음식문화에서 양파는 필수

문제는 인도에서 양파라는 작물의 의미는 한국이나 서구와 사뭇 다르다는 사실이다. 양파는 인도는 물론 방글라데시·파키스탄·스리랑카·네팔 등 지리적으로 인도 아대륙에 위치한 남아시아의 범인도권 국가들의 음식 문화에서 필수적인 음식 재료다. 범인도권은 기본적으로 쌀과 렌틸콩 등을 양파·생강·강황 등 허브 양념으로 조리한 채소나 육류 요리에 버무려 먹는 음식 문화를 공유한다. 그런 범인도권 요리의 대략 70~80%에 양파가 들어갈 정도로 양파는 이 지역 음식 문화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렇게 중요한 양파 가격이 폭등하면서 모디의 정치적 입지가 흔들리고 있다. 농민은 양파 생산 부진으로, 소비자는 가격 폭등으로 동시에 시름에 잠겼다. 민심이 흉흉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양파 주산지인 인도 북부는 모디 총리의 표밭이기도 하다.

방글라데시의 셰이크 하시나 총리(왼쪽)가 지난 10월 5일 인도 수도 뉴델리를 방문해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와 만나고 있다. 방글라데시는 친인도 정책을 펼쳐 왓으나 중국의 적극적인 구애와 모디 총리의 양파 수출 금지 조치로 양국 사이에서 균형 외교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EPA=연합뉴스]

방글라데시의 셰이크 하시나 총리(왼쪽)가 지난 10월 5일 인도 수도 뉴델리를 방문해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와 만나고 있다. 방글라데시는 친인도 정책을 펼쳐 왓으나 중국의 적극적인 구애와 모디 총리의 양파 수출 금지 조치로 양국 사이에서 균형 외교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EPA=연합뉴스]

인도 양파 수출규제로 방글라데시도 대란 

양파 가격이 폭등하자 모디 총리의 인도 정부는 물량 확보를 위해 9월 29일 양파 수출을 금지했다. 인도는 2018년 220만t의 양파를 수출했는데 이는 모든 아시아 국가가 수입하는 양파 물량의 절반을 넘는다. 모디의 양파 수출 규제 조치는 결과적으로 양파 대란을 남아시아 전역으로 확산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특히 인도와 동쪽 국경을 맞닿은 방글라데시는 상당한 타격을 받았다. 인도의 수출 규제 이전까지 ㎏당 30타카(방글라데시의 화폐 단위)이던 양파 가격은 10월 초 130타카로 무려 4.5배로 뛰었다. 11월 17일 기준으로 260타카까지 치솟았다. 9배가 오른 셈이다. 1타카에 13.88원인 기준 환율을 적용하면 1㎏에 416원이던 양파 가격이 10월 초 1800원을 거쳐 11월 17일 3600원까지 폭등한 셈이다.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의 채소 도매 시장에서 지난 11월 19일 상인이 양파를 정리하고 있다. 방글라데시 정부는 양파 가격이 폭등하자 상인 2700명을 가격 조작 혐의로 처벌하고 수입선을 다변화하는 등 가격 안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의 채소 도매 시장에서 지난 11월 19일 상인이 양파를 정리하고 있다. 방글라데시 정부는 양파 가격이 폭등하자 상인 2700명을 가격 조작 혐의로 처벌하고 수입선을 다변화하는 등 가격 안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친인도였던 방글라데시 여론 악화 

방글라데시 정부는 이웃 미얀마에서 양파를 긴급 수입했으나 도착한 양파가 상하는 바람에 물량 확보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집트와 터키에서 양파를 수입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보조금을 지급하는 등 양파 물량을 확보해 가격을 낮추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자칫 물가 폭등으로 이어져 비난의 화살이 정부에 몰릴 것을 우려한 조치다. 그런데도 시장에는 양파 품귀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달 중순 방문했던 방글라데시에선 일부 식당이 양파가 많이 들어가는 요리를 제공하지 않는 상황을 목격할 수 있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방글라데시 국민의 대 정부 여론은 물론 대 인도 여론도 악화할 수밖에 없다.

지난 11월 30일 인도 콜카타에서 짐꾼이 채소 통을 옮기고 있다. 인도는 지난 3분기 경제성장률이 지난 6년 새 최저인 4.5%로 떨어졌다. 양파 흉작과 가격 폭등까지 겹쳐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정치적인 위기에 처했다. [AP=연합뉴스]

지난 11월 30일 인도 콜카타에서 짐꾼이 채소 통을 옮기고 있다. 인도는 지난 3분기 경제성장률이 지난 6년 새 최저인 4.5%로 떨어졌다. 양파 흉작과 가격 폭등까지 겹쳐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정치적인 위기에 처했다. [AP=연합뉴스]

독립 당시 인도 지원받아 '친인도'  

방글라데시는 양파 수요의 20%만 국내에서 공급하고 나머지는 인도에서 수입해왔다. 방글라데시는 농업 국가라 그동안 국내에서 더 많은 양파를 생산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인도에서 항상 낮은 가격으로 수입을 제안해 물가 조절을 위해 그동안 인도산을 수입해왔다. 방글라데시 일각에선 인도가 자국 수출을 늘리기 위해 의도적으로 덤핑에 가까운 가격을 제시해 방글라데시의 양파 농업을 의도적으로 축소하려 압박한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2009년부터 집권 중인 방글라데시의 셰이크 하시나 총리와 여당인 ‘방글라데시 아와미 연맹’은 친인도적 성향으로 이런 비난을 무시해왔다. 방글라데시 인구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벵골인의 자결을 강조하는 벵골 민족주의 정당인 이와미 연맹은 셰이크 하시나 총리의 아버지인 셰이크 무지부르 라만(1920~1975년) 초대 대통령 시절부터 친인도 성향이 강했다. 1972년 동파키스탄으로 불리던 방글라데시는 서파키스탄(현재의 파키스탄)과 분리해 독립할 당시 인도의 군사적 지원을 받았기 때문이다. 라만은 당시 독립운동에 앞장서 ‘건국의 아버지’로 불린다.

방글라데시 일간지인 인디펜던트의 1면에 양파 가격 급등 기사가 실려 있다. 1kg에 250다카까지 올랐다는 뉴스다. [채인택 촬영]

방글라데시 일간지인 인디펜던트의 1면에 양파 가격 급등 기사가 실려 있다. 1kg에 250다카까지 올랐다는 뉴스다. [채인택 촬영]

방글라데시 놓고 인도-중국 경쟁 

그럼에도 인도의 양파 수출 규제로 양파 대란이 벌어지자 방글라데시의 인도에 대한 여론이 악화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자칫 인도의 대 방글라데시 외교 전략에 차질을 빚을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인도와 중국이 벌이는 세력 경쟁이 가장 뜨거운 나라의 하나가 방글라데시다. 방글라데시는 인도가 국경을 접한 파키스탄·네팔·부탄·미얀마·중국 가운데 부탄과 더불어 둘밖에 없는 친인도 성향의 국가다. 파키스탄은 인도의 숙적이며, 대표적인 친중 성향의 국가다. 네팔도 갈수록 친중 성향을 보인다. 미얀마도 시진핑(習近平) 주석의 일대일로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고속철도 등 중국의 건설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부탄은 인도에 국방을 위임하고 있으며, 중국의 침략을 두려워한다. 방글라데시는 친인도 성향이지만, 한편으로는 중국의 일대일로에 참여하면서 인도와 중국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려는 움직임도 보인다. 집권당과 정부의 지나친 인도 의존에 반발하는 국민도 적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모디 총리의 양파 수출 금지로 방글라데시에서 양파 파동이 벌어지자 균형 외교를 외치는 목소리가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

방글라데시 치대 항구인 차토그람(과거 치타공)의 모습. 강에 있는 항구의 하상으로 중국이 터널을 파고 있다. [채인책 기자]

방글라데시 치대 항구인 차토그람(과거 치타공)의 모습. 강에 있는 항구의 하상으로 중국이 터널을 파고 있다. [채인책 기자]

중국, 항만 등 건설 공사로 진출 박차

이미 중국은 현재 방글라데시의 주요 항구인 차토그람(과거 치타공으로 알려짐)의 남부를 흐르는 카르마풀 강 아래를 지나는 하중 터널을 건설하고 있다. 차토그람은 카르마풀 강의 북쪽에 항만과 화물 터미널을 가동하고 있다. 하중 터널을 건설하면 항구를 강의 남쪽에도 건설해 화물 처리 능력을 배가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중국이 미얀마에서 건설을 추진하고 있는 고속철도를 방글라데시까지 연장해 동남부의 콕스바자르까지 연결한 뒤 이를 다시 160㎞쯤 떨어진 치타공 항구까지 연결할 수 있다. 그럴 경우 중국의 상품을 미얀마 내륙을 거쳐 치타공 항구가 위치한 안다만 해까지 직송할 수 있다. 페르시아 만의 석유를 비롯한 중국의 전략적 수입품도 해적의 습격 위험이 높은 믈라카 해협을 지나지 않고 치타공 항에서 중국으로 고속철도를 이용해 운반할 수 있다. 방글라데시는 지정학적 장점을 극대화하고 물류 혁명을 주도할 수 있다.
방글라데시는 중국과 이런 경제 협력을 하면서 인도의 입김을 줄이고 균형을 찾는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 양파 수출 금지로 인도에 대한 방글라데시 국민 여론이 악화한 상황을 이용해 방글라데시의 집권세력이 인도와 중국 사이에서 전략적 균형점을 중국 쪽으로 옮길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셈이다.

ㅜㄴ이 지난해 4월 중국을 찾은 모디 인도 총리는 후베이성 우한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 회담했다. 사진은 시 주석이 후베이성 박물관을 모디 총리에게 소개하는 모습이다. [로이터=연합뉴스]

ㅜㄴ이 지난해 4월 중국을 찾은 모디 인도 총리는 후베이성 우한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 회담했다. 사진은 시 주석이 후베이성 박물관을 모디 총리에게 소개하는 모습이다. [로이터=연합뉴스]

모디, 중국에 맞서며 힌두민족주의 부추겨         

이런 상황이 모디 총리에겐 전혀 달갑지 않다. 모디 총리는 중국에 군사적으로 맞서고 경제적으로는 추월 대상으로 삼는 전략으로 국민의 인기를 모아왔다. 과거 국경 분쟁을 겪은 중국에 맞서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인도 국민의 힌두 민족주의에 불을 질렀다. 2017년 6~8월 중국이 전략적 요충지인 북부 국경지대에 도로를 건설하면서 갈등이 불거지자 모디가 강력히 대응하면서 상황이 일단락됐다. 모디 총리는 이렇게 중국을 견제하면서 유권자들에게 '스트롱맨'으로 비쳤다.

무엇보다 모디는 2014~2019년 집권 1기 기간에 경제 성장률에서 중국보다 앞서면서 국민의 신임을 얻었다. 국제통화기금(IMF) 통계 기준으로 2014/15년 7.2%, 2015/16년 7.6%, 2016/17년 7.1%로 7%대를 유지했다. 2017/18년 6.7%로 일시 떨어졌지만 2018/19년 7.5%(추정치)로 활기를 회복하고 2019/20년에도 7.5%를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 경제성장률이 2014년 7.3%, 2015년 6.9%, 2016년 6.7%, 2017년 6.9%, 2018년 6.5%(추정치), 2019년 6.2%(전망치)로 6%대를 벗어나지 못한 것과 비교된다.

인도의 실업률은 2018년 기준 3.53%에 불과하다. 하루 1.9달러인 빈곤선 이하로 살아가는 주민의 비율도 2016년 전체 인구의 12.4%에서 2018년 12월 기준으로 3.7%로 줄었다. 모디 정부는 정책적으로 제조업 발전을 이끌어 빈민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정책을 추진한 결과다. 하지만 양파 흉작으로 그동안 경제 성과로 얻은 점수를 순식간에 잃을 위기에 처했다.

방글라데시 일간지 뉴에이지의 1면에 썩은 양파를 항구에 폐기한 사진을 실었다. [채인택 촬영]

방글라데시 일간지 뉴에이지의 1면에 썩은 양파를 항구에 폐기한 사진을 실었다. [채인택 촬영]

방글라데시 친중 성격 강화하면 모디 타격 

모디는  2018년 4월 비공식 정상회담을 시작으로 중국과의 관계 개선에 나섰지만, 간단히 물러서지는 않았다. 모디는 미국과 관계를 강화해 자국 인근 인도양에서 미국·일본 군함과 연합 훈련도 벌이면서 중국을 전방위로 압박하고 있다. 미국이 주도하는 인도·태평양 전략에 동참하면서 북쪽 국경을 위협하는 중국을 포위하고 압박하는 데 앞장선다. 이를 통해 인도의 전략적 가치를 국제사회에서 극대화하려고 시도해왔다. 그런 모디 총리에게 안방인 방글라데시가 친중 성격을 강화하는 일은 악몽일 수밖에 없다. 모디에 가해질 정치적 타격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AP=연합뉴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AP=연합뉴스]

결과적으로 모디 총리는 양파 흉작이라는 복병을 만나 국내외 모두에서 위기에 처했다. 농촌 인구가 많은 인도에서 농민의 마음을 잡는 것은 선거 승리와 권력 유지의 핵심이다. 이웃 방글라데시 국민의 마음을 달래는 일도 외교적으로 중요하다. 모디 총리는 어떻게 위기에서 탈출할지 관심이 몰리는 이유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