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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떠나니 연락하는 후배 하나 없네" 섭섭한 당신에게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강명주의 비긴어게인(20)

어느덧 올 한해도 달력 1장만을 남기고 있다. 새해 새 아침 새 각오로 시작한 날이 바로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한해를 마감하는 달로 넘어가고 있다. 세월 한번 참 빠르다. 그 빠른 세월 속에서도 변함없이 찬바람과 함께 명퇴 바람이 불고 있다.

이번 연말에도 어김없이 금융권에서는 은행별 다소 시차는 있으나 희망퇴직신청을 공지했거나 할 예정이다. 지난해 역시 그 지난해처럼 연말이 다가오는 11월 혹은 12월에 명예퇴직을 실시했다. 금융권에 따르면 올해 또한 지난해와 비슷한 조건이라고 한다. 희망퇴직 요건은 보통 40대 이상이고 10년 이상 근무한 직원들을 대상으로 실시하고 있다.

어느덧 올 한해도 달력 1장만을 남기고 있다. 이번 연말에도 어김없이 금융권에서는 은행별 다소 시차는 있으나 희망퇴직신청을 공지했거나 할 예정이다. [일러스트 강경남]

어느덧 올 한해도 달력 1장만을 남기고 있다. 이번 연말에도 어김없이 금융권에서는 은행별 다소 시차는 있으나 희망퇴직신청을 공지했거나 할 예정이다. [일러스트 강경남]

“아무래도 걱정이 됩니다.” 명예퇴직을 신청한 어느 금융인의 걱정스러운 말이다. 왜 아니겠는가, 당연히 걱정될 것이다. 매년 정기적으로 연말이 되면 직장생활을 마무리하고 돌아서는 선배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곧 나도 그러하리라 마음을 먹었어도 막상 명예퇴직을 앞에 두면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앞서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러한 걱정이 아니었다. 미래를 위한 본인의 걱정보다는 남아있는 후배들을 위한 걱정이었다. 향후 더욱 어려워진다는 금융환경 속에서 살아남아야 할 후배들을 걱정하고 있었다. 게다가 경험 많은 선배들의 공백을 인원보충 없이 후배들이 그 일들을 해야 하는 상황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었다.

“많이 아쉽습니다.” 후배들에게 더 많은 것을 해주지 못함을 미안해하고 있었다. 나름대로 퇴직준비를 해왔기에 남아있는 기간 동안 후배들에게 본인이 알고 있는 많은 것을 가르쳐주어야 되겠다고 생각을 했었다. 기회가 될 때마다 과거 경험을 부서 직원들과 후배들에게도 나누었다. 그래도 막상 떠나려 하니 이것저것 더 많이 가르쳐 줄 걸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명예퇴직 신청을 부서원들에게 알리자 직원들이 일제히 서운해했다. 그동안 베풀어주신 지도 편달에 감사하다고 연신 고개를 숙인다. 송별회식자리에서도 모두들 한결같이 많은 것을 가르쳐주셔서 감사하다고 입을 모았다. 조그만 선물과 꽃다발도 선물해 주었다. 그동안 함께 했던 시간을 추억 삼아 깨알같이 글들을 적어 감사의 표시를 해주었다. 그들의 마음에 오히려 더 미안해졌다. ‘더 잘해줄걸…. ‘ 떠나면서 아쉬움이 많이 든다고 했다.

기업의 임원이란 임시직원의 약자이다. 늘 퇴직을 생각하고 다녀야 한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사직서를 책상 서랍에 준비해두고 다녔다. 언제든지 미련 없이 떠날 수 있도록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항상 두 가지 마음이 앞서 있었다. 하나는 이것이 마지막이니 ‘더 최선을 다해서 일하자’, 다른 하나는 ‘직원들에게 더 많이 베풀고 더 많은 경험을 나누어 주자’였다.

그동안 함께했던 시간을 추억 삼아 깨알같이 글들을 적어 감사의 표시를 해주었다. 그들의 마음에 오히려 더 미안해졌다. '더 잘해줄걸...' [일러스트 강경남]

그동안 함께했던 시간을 추억 삼아 깨알같이 글들을 적어 감사의 표시를 해주었다. 그들의 마음에 오히려 더 미안해졌다. '더 잘해줄걸...' [일러스트 강경남]

퇴직하기 전 2년 동안은 외부나 내부에서 주어지는 기회도 반갑지 않았다. 주위에서 계속 경력을 이어가라고 독려했지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저 이 일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일해왔다. 오히려 더 열심히 일했었다. 퇴직이 결정된 순간 나도 모르게 ‘이제 좀 쉬겠구나! 좀 살겠구나’ 하는 생각이 저절로 났었다. 지난 30년 넘게 쉬지 않고 달려온 몸과 마음이 나도 모르게 지쳐있었나 보다. 아마도 본능적으로 지금 쉬지 않으면 죽는다고 느꼈는지도 모른다.

함께 일하는 직원들에게는 더 많은 혜택과 기회를 주기 위해 노력했었다. 매년 인사철과 성과급 보상 기간에는 더욱 신경을 곤두세웠었다. 특히 다른 나라들과 비교했을 때 한국에서 함께 일하는 직원들이 상대적으로 낮은 대우를 받는 경우에는 주저하지 않고 나섰다. 다른 부서와의 형평성을 따지면서 승진이 보류되거나 반려되었을 때 상황은 이해했지만 참 많이 속상했었다.

하지만 보상만큼은 영국 본사 그룹 임원들을 설득해가면서 기어이 소기의 성과를 내었다. 이를 위해 늦은 밤도 마다하고 그룹을 설득해가며 함께 도와준 인사부장도 한몫했었다. 될 때까지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많이 힘들었을 텐데 내색은커녕 주도적으로 정성을 다해 도와준 인사부장이 그저 고마웠다. 하지만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어 미안하고 또 미안했었다.

퇴임을 위해 후임자를 양성했었다. 외부에서 오지 않고 기존 함께한 상무가 할 수 있게 되어 그 누구보다 기뻤다. 마무리 작업까지 최선을 다했다. 드디어 마지막 날 깨끗하게 치워진 책상에 앉아 조용히 함께 일했던 동료들을 차례로 떠올렸다.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고마움보다 미안함이 앞선 동료들 한명 한명이었다. 쉽지 않은 상사였을 텐데 함께 최선을 다해준 그들이 고맙고 더 잘 해주지 못해서 미안했었다.

퇴직자들의 퇴직후 가장 아쉬워하는 부분이 바로 직원들과 좀 더 따뜻하게 지내지 못한 것이다. 올라갈 때 결코 보지 못한 것을 내려올 때 보이는 것을 이제야 깨닫는다. [일러스트 강경남]

퇴직자들의 퇴직후 가장 아쉬워하는 부분이 바로 직원들과 좀 더 따뜻하게 지내지 못한 것이다. 올라갈 때 결코 보지 못한 것을 내려올 때 보이는 것을 이제야 깨닫는다. [일러스트 강경남]

떠날 때는 말없이~ 송별회를 끝으로 나는 미련 없이 은행을 나왔다. 영원히 함께 할 거 같은 일에 대한 열정과 직원에 대한 애정을 뒤로하고 조용히 나오는 나의 모습에 다른 임원들과 사뭇 다른 행동에 놀랐다고 한다. 어느 직원의 이야기이다. “떠나시는 뒷모습이 참 보기 좋았습니다.”

어차피 떠날 거라면 미련을 두지 말자. 어찌 보면 더 잘해야 한다는 것도 미련인지도 모른다. 돌이켜 보니 그것도 지나친 나의 욕심이었다. 더 잘해야겠다는 마음과 더 잘 해주어야 되겠다는 마음이 오히려 함께 일하는 동료들에게는 더 부담되었을 것이다. 일에 대한 경험과 더 잘하라고 독려했던 그 많은 말들이 그들에게는 얼마나 듣기 싫은 잔소리였을까…

퇴직자들의 퇴직후 가장 아쉬워하는 부분이 바로 직원들과 좀 더 따뜻하게 지내지 못한 것을 아쉬워한다. 지나고 나서야 깨닫는다. 직장생활 하면서 나만 상처받았다고 느끼지만 실은 알게 모르게 남에게 상처를 많이 주었다는 것을. 달릴 때는 보지 못하고 멈추어야 보이게 된다는 것을. 뒤돌아보면 더욱 그러하다는 것을. 올라갈 때 결코 보지 못한 것을 내려올 때 보이는 것을 이제야 깨닫는다.

퇴직하기 전에 따뜻한 말 한마디로 마무리하자. 더 이상 다른 말이 필요 없다. 그리고 고맙다는 인사를 꼭 하자. 반대했던 그들에게 더욱 고맙게 인사하자. 내가 미워서라기보다 조직에서 일하다 보니 서로 입장이 달라 그러지 않았겠는가. 그들의 반대가 오히려 자극되어 성장의 기회가 되었을 것이다.

이제 떠나면 절대 기대를 하지 말자. 그만큼 내가 해주었으니 뭔가 해줄 거라는 기대를 절대 하지 말자. 지난 추석 연휴 지나고 모임에서 만난 어느 퇴직자가 서운함을 토로해왔다. 그렇게 열심히 직원들을 위해 일했건만 연락하는 직원 하나 없다고 서운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반문했다. “혹시 재임 기간에 먼저 그만둔 선배에게 안부 전화라도 제대로 한 적 있었나요?”

겨울 문턱, 한장밖에 남아있지 않는 달력 앞에 한 장씩이나 남아있는 올 한해를 잘 마무리해 보자. 초겨울 나뭇가지들을 보라. 그 여름철 울창했던 잎들을 과감하게도 다 떨쳐버렸다. 바로 그 빈자리에 한겨울 매서운 바람도 아랑곳 겨울 햇살에 조용히 다가올 새봄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 세월은 지나간 대로 모두 다 날려 보내고.

WAA인재개발원 대표원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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