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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과 진실 사이…노장 여배우가 쓴 사심 가득한 회고록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현예슬의 만만한 리뷰(73) 영화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 

제가 좋아하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이번에는 색다른 영화를 들고 찾아왔습니다. 까뜨린느 드뇌브, 줄리엣 비노쉬, 에단 호크… 영화 속 등장하는 이 세 배우의 이름만 들어도 명작의 기운이 스물스물 나는데요.

프랑스 유명 여배우 파비안느(까뜨린느 드뇌브 분. 좌)는 회고록 발간을 앞두고 있다. 이를 축하하기 위해 딸 뤼미르(줄리엣 비노쉬 분. 우)가 가족들과 함께 집으로 찾아왔다. [사진 ㈜티캐스트]

프랑스 유명 여배우 파비안느(까뜨린느 드뇌브 분. 좌)는 회고록 발간을 앞두고 있다. 이를 축하하기 위해 딸 뤼미르(줄리엣 비노쉬 분. 우)가 가족들과 함께 집으로 찾아왔다. [사진 ㈜티캐스트]

프랑스를 배경으로 하는 이 영화는 유명 여배우 파비안느(까뜨린느 드뇌브 분)가 자기 삶에 대한 회고록 발간을 앞둔 시점에서 시작됩니다. 책 출간을 축하하기 위해 딸 뤼미르(줄리엣 비노쉬 분)는 남편 행크(에단 호크 분), 딸 샤를로트(클레망틴 그르니에 분)와 함께 엄마의 집을 찾는데요.

오랜만에 만남의 기쁨도 잠시 엄마의 집에서 원고를 먼저 읽은 뤼미르는 급하게 엄마를 찾습니다. 정원을 거닐며 대본을 외우던 엄마에게 이렇게 말하죠. “이 책에는 진실이라고는 없네요”

히로카즈 뺀 히로카즈 영화

다양한 시도를 통해 점점 더 깊이 있는 영화를 만들어 내고 있는 히로카즈 감독이 이번엔 전형적인 일본풍의 가족 영화가 아니고 ‘프랑스다운’ 가족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사전 정보 없이 영화를 봤다면 아마 히로카즈 감독이 연출했을거라곤 생각하지 못했을 겁니다. 한마디로 말해 ‘히로카즈 뺀 히로카즈 영화’라고 할까요.

파비안느를 중심으로 진실과 거짓으로 버무려진 모녀 관계와 전 남편, 현 남자친구와의 관계. 이미 죽었지만 아직도 옆에 있는 것 같은 라이벌과의 관계. 또한 작품 속 여배우로서 살아가는 한 인간의 이야기까지. 한편의 영화에 다양한 관계의 군상이 담아져 있습니다.

딸 뤼미르 역을 맡은 프랑스 국민 여배우 줄리엣 비노쉬(좌)와 그의 남편 행크 역을 맡은 에단 호크(우). 그리고 귀엽고 당찬 딸 샤를로트 역을 맡은 클레망틴 그르니에(가운데).

딸 뤼미르 역을 맡은 프랑스 국민 여배우 줄리엣 비노쉬(좌)와 그의 남편 행크 역을 맡은 에단 호크(우). 그리고 귀엽고 당찬 딸 샤를로트 역을 맡은 클레망틴 그르니에(가운데).

한 평생 연기를 했기 때문에 내가 배우인지, 배우가 나인지 경계가 모호해진 파비안느에게 거짓은 무엇이고 진실은 무엇일까요. 배우이기 때문에 진실이라 생각했던것도 거짓이 될 수 있고 거짓도 진실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을지 추측해봅니다.

특히 오랜 시간동안 뤼미르와의 사이에서 쌓여있던 감정의 벽을 허물고 화해하는 장면은 조금 감동적이었는데요. 그는 이 와중에도 지금 느낀 이 감정을 영화 속 엄마와 딸이 등장하는 장면에서 쓰지 못했다며 아쉬워했습니다. 덕분에 감동은 깨졌지만 뤼미르도 저도 그가 천상 배우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를 보며 언젠가 TV에서 한 여배우가 한 말이 떠올랐습니다. 남자친구와 헤어져 울고 있는데 어느새 내가 거울을 보고 있더라는 말이었죠. 어떻게 눈물이 흐르는지, 내 표정이 어떤지, 어느 쪽으로 흐르는게 화면에서 예쁜지 등을 따지고 있는게 서글펐다고 합니다. 배우라는 직업이 뭔지…

말 대신 손편지로 소통한 히로카즈

한평생 배우로 살아온 파비안느(까뜨린느 드뇌브 분)를 보며 대단한 듯하면서도 한편으론 외로워 보이기도 했다. 배우라는 직업이 갖는 숙명이 아닐까.

한평생 배우로 살아온 파비안느(까뜨린느 드뇌브 분)를 보며 대단한 듯하면서도 한편으론 외로워 보이기도 했다. 배우라는 직업이 갖는 숙명이 아닐까.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첫 해외 올 로케이션 작품입니다. 모국어인 일본어로 연출하지 않은 첫번째 작품이기도 한데요. 감독과 배우, 촬영 스태프들이 다국적이었기 때문에 현장에서는 3개 국어(일본어, 영어, 프랑스어)가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연출하는 데 있어 의사소통이 중요한데, 이렇게 되면 말이 잘 통하지 않았을까 생각했는데요. 감독은 이에 대해 “내가 일본어로밖에 소통하지 못하기 때문에 촬영 초반에는 커뮤니케이션을 잘 극복할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그런데 뛰어난 통역사를 만났고, 그는 거의 6개월간 현장에 함께 있어 주었다. 거기서 도움 받은게 컸다”고 전했습니다.

또한 배우들과는 손 편지로 소통했는데 “토요일에 쓴 편지를 일요일에 번역해 월요일 아침에 전달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외국에서의 촬영이다보니 손편지 분량을 의식적으로 늘려 의사소통 했다"고 합니다. 글 솜씨도 뛰어난 감독이 손 편지에는 어떤 내용을 담았을지 궁금해집니다.

이번 영화는 고레에다 히로카즈(가운데) 감독의 첫 해외 올로케이션 촬영이었다. 모국어밖에 할 줄 모르는 감독은 통역사와 손편지로 현장에서 의사소통 했다고 한다.

이번 영화는 고레에다 히로카즈(가운데) 감독의 첫 해외 올로케이션 촬영이었다. 모국어밖에 할 줄 모르는 감독은 통역사와 손편지로 현장에서 의사소통 했다고 한다.

이 영화가 개봉하기 직전 ‘어느 가족'으로 2018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그는 상이 이번 영화를 만드는데 부담스럽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이 영화는 ‘어느 가족' 이전에 기획했다. 상 받은 이후 기획했더라면 약간 부담스러웠을테지만 평소 부담감을 잘 느끼지 못한다. 상 받은 이후 에단 호크 섭외를 위해 뉴욕으로 갔는데 제일 먼저 에단 호크가 수상을 축하한다며 인사를 했다. 덧붙여 이런 시점에서 출연 제안을 받으면 거절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 순간에 ‘상 받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에단 호크 캐스팅 비화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히로카즈 팬이라면 꼭 봐야할, 아니 등장하는 세 배우의 팬이라면 꼭 봐야할, 안 봐야할 이유가 없는 영화입니다. 세계로 진출한 아시아계 영화 감독의 첫 발을 함께 하시기 바랍니다. 개봉은 12월 5일.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

영화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 포스터.

영화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 포스터.

감독&각본: 고레에다 히로카즈
출연: 까뜨린느 드뇌브, 줄리엣 비노쉬, 에단 호크
촬영: 에릭 고티에
음악: 알렉세이 아이기
장르: 드라마
상영시간: 107분
등급: 12세 관람가
개봉일: 2019년 12월 5일

중앙일보 콘텐트유통팀 대리 hyeon.yese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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