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ㆍ일 산업 당국이 다음달 수출규제 재검토를 위한 국장급 협의를 개최하기로 합의하면서 대화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산업자원통상부는 29일 “전날(28일) 서울에서 과장급 준비회의를 열었고, 다음달 4일 사전회의를 거쳐 12월 셋째주에 국장급 협의(수출통제협의회)를 열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한국 정부의 한일군사정보보협정(GSOMIAㆍ지소미아) 카드를 계기로 열린 수출규제 관련 대화는 서서히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수출규제 어렵사리 돌파구, 강제징용은 난항
정작 외교 당국은 극도로 신중한 입장이다. 한ㆍ일 관계 정상화를 위한 또다른 축인 강제징용 문제와 관련해서는 뚜렷한 해법이 보이지 않아서다.
29일 수출당국 간 대화를 계기로 열린 당ㆍ정ㆍ청 협의에서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양국의 견해 차가 적지 않은 만큼 넘어야 할 강은 아직도 많다”고 밝혔다. 이날 회의는 수출규제 관련 협의였지만, 강제징용 문제도 함께 풀어가야 할 외교부 입장에선 여러가지 고려를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내달 '수출규제 논의' 한·일 국장급 협의 합의 #강제징용도 풀어야 하는 외교부, 복잡한 속내
물론 외교부는 공식적으로는 “수출규제와 강제징용 문제의 링크(연결고리)를 끊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일본이 외교 루트로 강제징용 문제의 해결을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어서 본질적으로는 연결 돼 있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여기서 진전이 없으면 자칫 수출규제 대화도 원점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강경화 "'피해자 권리' 최소 요건 충족 돼야"
일본 정부가 움직일 여지를 보이고 있는 이른바 ‘문희상 안’은 국내적으로 피해자들의 반발에 부딪힌 상태다.
한·일 정부가 재단 운영과 화해·치유재단 기금 이전 등으로 틀을 마련하고, 한·일 기업과 국민들은 기부금을 조성한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피해자 단체들은 “일 정부 차원의 사실 인정과 사죄 표현이 어떤 방식으로든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화치재단의 잔금을 넣는 부분은 위안부 피해자들도 반대하고 있다.
강경화 장관이 28일 방송 인터뷰에서 “정부로서는 대법원 판결이 존중돼야 하고, 피해자들의 권리가 충족돼야 한다는 최소 요건이 갖춰져야 하는데 (문희상) 의장안이 그것을 충족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 것도 이런 기류를 반영한다. 정부 안에선 “문희상 안이 그나마 현실적이지만, 대법원 판결이 있는 상황에서 피해자들이 선뜻 동의하지 않는 안을 우리 정부가 제안하는 모양새는 어렵지 않겠느냐”는 말이 나오고 있다.
"수출규제처럼 강제징용도 대화 창구 띄워야"
당장 일본 쪽에서 강제징용 문제가 풀려가는 상황을 보면서 수출규제 협의를 연동하려 들 수도 있다. 수출규제 논의를 위한 국장급 회의에 ‘중간 다리’가 설정된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산자부 발표에 따르면 한·일은 정식 국장급 회의를 12월 셋째주(16~20일)로 잡아 놓고, 그 전에 사전준비를 위한 국장급 회의를 4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개최하기로 했다.
양기호 성공회대 교수는 강제징용 해법과 관련 “문희상 의장의 제안은 현재로서는 내용 면에서 피해자들의 동의를 얻을 수 없는 구조”라며 “수출규제 문제처럼 한·일 정부가 피해자들의 의견을 들어볼 수 있도록 대화의 거버넌스(의사소통 창구)를 먼저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