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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배운 건강식 요리법, 아낌없이 공유합니다"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이상원의 소소리더십(53)

“지금의 저라면 아버지를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요?”
천연 식재료를 고르고, 재료의 성질을 살릴 수 있는 가공법과 조리법을 고집하는 이유를 묻자 눈물을 글썽거리며 대답하는 '웃으러(go to smile)' 쿠킹클래스의 송수현 셰프(40). “맛있는 음식 먹으며 웃으러 오라”는 뜻으로 지었다고 한다. 병으로 고생하다가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죄송한 마음을 담아서 몸에 좋은 음식 만드는 법을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는 그녀의 꿈을 향한 변신 스토리를 들어봤다.

맛있는 음식 먹으며 ‘웃으러’ 오라는 쿠킹클래스를 운영중인 송수현 셰프. [사진 송수현]

맛있는 음식 먹으며 ‘웃으러’ 오라는 쿠킹클래스를 운영중인 송수현 셰프. [사진 송수현]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죄송한 마음과 요리가 어떤 관계가 있나?
제가 이십대 초반일 때 대장암 선고를 받은 아버지를 1년 넘게 간병했어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힘들었지만 완전히 실패한 간병이었어요. 왜 암에 걸렸고 어떤 음식이 몸에 좋은지 전혀 알지도 못하면서 마음만으로 돌봤던 것 같아요. 몸이 힘들다는 핑계로 인스턴트 음식도 많이 드렸어요. 결국 아버지는 고통 속에 돌아가셨고 그 후 저는 죄책감과 트라우마로 한참동안 시달렸어요.
죄송한 마음이 요리를 시작한 계기인가?
처음에는 아니었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남긴 약간의 돈으로 먹고 살 방법을 찾아야 했기에 식당을 오픈했죠. 학교 다니면서 음식점에서 아르바이트를 많이 했는데 적성에 맞더라고요. 어릴 때부터 창업에 관심이 많았고, 나중에 기회가 되면 식당을 열고 싶었는데 결국은 먹고 살기 위해 시작을 하게 된 거죠. 오전 10시부터 새벽 3시까지 부지런히 움직인 덕분이었는지 꽤 잘됐어요.
식당을 운영하다가 요리수업을 하게 된 사연은?
처음 식당 문을 연 것이 홍대 근처였어요. 두 번째가 연남동이었고요. 둘 다 소위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인해 옮겨야 했지요. 고생해서 잘 될 만 하니까 보증금과 월세를 올려달라고 하거나 리모델링 해야 하니까 나가라고 하더라고요. 세 번째 가게를 거쳐서 2015년에 망원동에 안주가 맛있는 바 ‘웃으러’를 오픈했어요. 가게 휴일에 요리방법과 함께 창업 및 운영 노하우를 알려주는 쿠킹클래스를 열었는데 장사보다 인기가 많았어요. 그래서 아예 장사를 접고 쿠킹클래스와 식당창업컨설팅을 하고 있죠. 중간 중간에 ‘웃으러’ 도시락, ‘웃으러’ 커리 등을 팔기도 했지만 본업은 ‘웃으러’ 쿠킹클래스입니다. 또 언제가는 수업하며 연구한 메뉴를 팔기도 하겠죠.
2008년 문을 연 식당 ‘웃으러’ 전경. 이때부터 ‘웃으러’ 식당, 클래스, 컨설팅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고. [사진 송수현]

2008년 문을 연 식당 ‘웃으러’ 전경. 이때부터 ‘웃으러’ 식당, 클래스, 컨설팅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고. [사진 송수현]

쿠킹클래스와 창업컨설팅을 함께 하는 것도 특이한데.
취미로 요리를 배우는 사람도 있지만 간혹 식당을 열고 싶어 배우러 오는 사람도 있어요. 배우다 보니 식당을 해 볼까 하는 사람도 있고요. 창업을 결심하고 나면 외롭고 힘들고 잘못하면 큰 피해를 입기도 하잖아요. 처음에 모르는 것 투성이로 고생했던 저를 떠올리며 베푸는 마음으로 하고 있죠. 돈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라 컨설팅비용은 시중가의 10분의 1 정도만 받아요. 컨설팅을 하다가 좋은 아이템이 떠오르면 직접 창업을 하기도 합니다. 최근 을지로에 중국식 가정요리 펍 ‘장만옥(張曼屋)’을 오픈한 것도 비슷한 경우죠. 맛있으면서도 양과 가격이 부담 없는 선술집 같은 분위기의 중식당을 요즘 ‘힙한’ 을지로 골목에 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최근 을지로에 문을 연 중국식 가정식 펍 ‘장만옥’. [사진 송수현]

최근 을지로에 문을 연 중국식 가정식 펍 ‘장만옥’. [사진 송수현]

식당을 오래 한다고 쿠킹클래스를 열 수 있는 건 아니지 않나?
첫 식당 장사가 잘 되고 요리가 적성에 맞는다는 것을 발견하고 나니까 요리를 체계적으로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름난 쿠킹클래스에 등록을 해서 8년을 배웠죠. 4년 코스인데 두 번 반복해서 배운 거에요. 그리고 독학과 경험으로 발전시켜 가면서 지금까지 왔습니다.
본인 요리와 쿠킹클래스의 특징을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좋은 식재료를 골라, 그 성질을 살릴 수 있게 가공을 하고, 몸에 좋은 조리법으로 만드는 것이죠. 신동진쌀로 밥을 짓고, 토판염이나 5년간 간수를 뺀 천일염을 사용해 간을 합니다. 인공조미료는 조금도 사용하지 않죠. 사람이 먹는 음식은 정성을 들이고 시간을 써서 좋은 마음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잖아요? 누가 알아주길 바라는 것도, 시간이 남아서 그러는 것도 아니에요. 타협할 수 없는 원칙의 문제이기 때문이죠.
송 셰프가 좋은 식재료 고르는 법, 가공법, 조리법 등을 기록해 놓은 식재료 연구집. [사진 송수현]

송 셰프가 좋은 식재료 고르는 법, 가공법, 조리법 등을 기록해 놓은 식재료 연구집. [사진 송수현]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죄송한 마음이 영향을 미친 것인가?
오히려 거꾸로에요. 몸에 좋은 요리를 하다 보니까 아버지 간병할 때 아무 음식이나 입에 넣어드린 것이 후회되었어요. 어느 날 ‘지금의 나라면 아버지를 살릴 수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이 나서 마음이 아픈 적도 있어요. 그런 마음을 쿠킹클래스에서 나누려고 노력하는 것도 분명히 있죠. 창업컨설팅 할 때도 장사가 잘 되어 성공할 수 있는 메뉴라면 아무 메뉴나 고르지는 않아요.
‘몸에 좋은 음식’을 중심으로 하고 싶은 활동을 다양하게 하고 있는데 식당, 수업, 컨설팅 외에 소개할 만한 활동이 또 있나?
SNS 지인들을 대상으로 신청을 받아 재료비만 받고 1주일치 반찬을 보내주기도 해요. 좋은 음식 나누고 싶은 마음에 올려 놓고는 누가 신청을 할까 마음도 쓰였는데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신청해 드시고 칭찬을 많이 해 줘 기뻤어요. 힘닿는 대로 때때로 이벤트처럼 해 볼 생각이에요. 몸은 고되고 귀찮기도 하지만 맛있게 드시고 행복해하는 지인들 떠올리면 보람도 크거든요. 몸에 좋기도 하고 맛도 있는 음식 한다는 소문이 나서 박보검, 공유, 송혜교 등 유명배우들 광고촬영 할 때 도시락이나 케이터링 제공하기도 했는데 재미있었어요.
송 셰프가 가끔 지인들 대상으로 여는 ‘건강한 음식 배달이벤트’. 기대 이상으로 인기가 높다고. [사진 송수현]

송 셰프가 가끔 지인들 대상으로 여는 ‘건강한 음식 배달이벤트’. 기대 이상으로 인기가 높다고. [사진 송수현]

송 셰프의 쿠킹클래스에서 인기가 높아 판매도 하고 유명배우들 광고촬영 현장에 제공하기도 하는 ‘웃으러’ 도시락. [사진 송수현]

송 셰프의 쿠킹클래스에서 인기가 높아 판매도 하고 유명배우들 광고촬영 현장에 제공하기도 하는 ‘웃으러’ 도시락. [사진 송수현]

앞으로의 꿈이나 계획은?
일단 힘닿는 데까지 ‘영혼이 있는 음식을 가르치고 파는’ 사람이 되고 싶고요. 병 들거나 늙어서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추억이 깃든 음식’을 먹으며 죽음을 준비할 수 있는 일종의 ‘well dying center’를 해 보고 싶어요. 누구나 ‘추억의 음식’이 있잖아요. 사연을 받아서 맞춤으로 요리해 제공해 주는 거죠. ‘웃으러 왔다가 웃으러 가는’ 인생에 가장 잘 어울리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중앙일보 사업개발팀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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