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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덴만의 영웅→구속기소…황기철 고난의 시작은 '노란리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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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기철 전 해군참모총장이 18일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변선구 기자

황기철 전 해군참모총장이 18일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변선구 기자

아덴만 여명작전의 영웅인 황기철 전 해군 참모총장은 총장 재직 중이던 2015년 4월 통영함 납품 비리 혐의로 갑자기 구속기소 돼 전역했다. 아덴만 여명작전을 퍼펙트게임으로 성공시켰던 장수가 하루아침에 벼랑 끝으로 추락한 것이다. 그는 지난해 9월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아덴만 여명작전 퍼펙트로 성공해 #방산비리 혐의로 구속됐다가 무죄 #군에 대한 국민 신뢰 추락 아쉬워

아덴만 여명작전은 2011년 1월 아덴만 인근에서 소말리아 해적에게 피납된 삼호주얼리호에서 우리 선원을 전원 구출한 작전이다. 피납된 선원과 해군 특수부대의 희생 없이 해적을 사살 또는 생포한 완벽작전이었다. 1976년 우간다 엔테베공항에서 이스라엘 특공대가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 등에 납치된 여객기에서 피랍자를 구출한 엔테베작전보다 성공적이었다. 황 전 총장을 지난 18일 중앙일보 서소문 본사에서 만났다.

아덴만 여명작전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는데.

당시 해군 작전사령관(해군 중장)을 맡고 있었다. 세계적으로 유사 사건을 보면 외국에서도 작전에 어려움이 있었다. 그래서 발생 가능한 모든 상황을 연구하고 준비했다. 마침 부산항에서 출항하려던 선박이 있었는데 삼호주얼리호와 구조가 비슷했다. 거기서 집중적으로 훈련했다. 작전을 구상하면서 무엇보다도 부하 지휘관을 신뢰했다.

2011년 아덴만 여명작전 중 선교를 장악하는 해군 특전단 대원 [사진 해군 제공]

2011년 아덴만 여명작전 중 선교를 장악하는 해군 특전단 대원 [사진 해군 제공]

성공을 예감했나.

진해 해군 특전단을 방문했는데 대원들의 눈빛을 보고 믿음을 갖게 됐다. 강한 훈련을 통해 얻은 자신감이다. 그래서 해적이 먼저 공격하기 전까지는 사살하지 말라고 했다. 섣불리 자극하면 해적이 납치된 선원에게 피해를 줄 수 있었다. 해군 특전단 요원은 강도 높은 훈련을 거친 전투 프로다. 설사 해적이 먼저 총을 겨눠도 우리가 더 빠르고 정확하게 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작전 결과도 그랬다. 사살된 해적 사체를 보니 투입된 특전단의 총이 해적의 급소를 정확하게 명중했더라. 부검의가 놀랄 정도였다.

어느 정도 피해를 예상했나.

처음엔 우리측 피해가 2∼3명 정도 난다고 봤다. 상부에서는 그 부분을 걱정했다. 그러나 국민을 구하는 건 군인의 임무이기 때문에 그런 희생은 불가피하다고 판단했다. 또 다른 걱정은 총알이 좁은 선실 내부 벽에 부딪혀 튀면서 부수적인 피해가 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제2연평해전 때 북한 공격에 침몰한 참수리 357정 안을 보면 북한군이 쏜 총알이 함정의 격실 내부에서 돌아다녔던 게 확인됐다. 아덴만 여명작전에서도 이런 피해가 날 수 있었다. 실제로 우리 특전단 요원이 해적에 쏜 총알 일부가 선실 내에서 튕겨 석해균 선장이 맞았다.

아덴만 여명작전을 본 북한군이 두려워했다고.

해적을 제압하면서 우리 전투력을 북한군에게 보여준 계기가 됐다. 그때는 북한 함정이 서해 북방한계선(NLL) 아래로 내려와 자주 긴장을 조성했다. 그런데 아덴만 작전 이후 조용해졌다. 평온할 정도였다. 북한 해군의 움직임이 없었다. 우리 능력을 확인한 북한군이 쉽게 도발하지 못한 거다. 2010년 천안함 피격사건 이후 떨어졌던 군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높아졌다.

2014년 11월 3500t급 구조함인 통영함이 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 조선소에 방진포(페인트·먼지 등이 묻지 않도록 덮는 가리개)를 뒤집어쓴 채 정박돼 있다. 1500억여원을 들인 통영함은 2012년 9월 진수식을 마쳤으나 성능 미달로 방위사업청에서 바로 인수하지 않았다. [중앙포토]

2014년 11월 3500t급 구조함인 통영함이 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 조선소에 방진포(페인트·먼지 등이 묻지 않도록 덮는 가리개)를 뒤집어쓴 채 정박돼 있다. 1500억여원을 들인 통영함은 2012년 9월 진수식을 마쳤으나 성능 미달로 방위사업청에서 바로 인수하지 않았다. [중앙포토]

아무래도 방산비리 부분에 이목이 쏠린다.

방산비리를 이유로 검찰 수사가 시작됐는데 의도적으로 망신 주기가 심했다. 갑자기 구속되면서 새벽 3시에 옷을 갈아입었다. 앉으면 바지가 무릎까지 올라오는 작은 옷을 줬다. 구치소에서 (잡범과 함께) 6명이 입실하는 방에 배정됐다. 독방도 있는데 일부러 그랬던 것 같다.

억울했겠다.

해군총장인 나를 잡기 위해 수사가 진행된 것 같다. 그때 (유사한 혐의로) 구속된 사람들은 당시 정부에서는 재판을 받지 말자고 말했다. 하지만 이미 프레임이 짜인 것 같았다. 그런 와중이어서 군복을 제대로 벗지 못했다. 정상적인 전역 절차를 밟지 못했다는 얘기다. 그래서 군에서 전역하면서 퇴역 아닌 예비역이 되겠다고 적었다. (전역 후 예비역을 원하면 전시에 다시 동원될 수 있다) 언젠가 다시 제대로 전역하고 싶다는 생각도 있다.

무죄로 판결받았지만, 여전히 신뢰를 회복하지 못했다.

내가 조사를 받으면서 개인의 명예가 날아간 건 그렇다 해도 군이 비리 집단으로 비쳐 안타까웠다. 나의 방산비리 혐의는 무죄로 소명됐다. 그러나 군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땅에 떨어졌다. 왜 그런 방산비리 수사가 이뤄졌는지 따져봐야 한다. 군을 비리 집단으로 만들어 매장하는 나라는 없다.

황 전 해군참모총장이 해군에서 41년 간 복무하던 경험과 비리 혐의로 수사받고 무죄를 받기까지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변선구 기자

황 전 해군참모총장이 해군에서 41년 간 복무하던 경험과 비리 혐의로 수사받고 무죄를 받기까지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변선구 기자

방산비리 수사가 세월호 사건 때문에 시작됐는데.

세월호 사건 직후 독도함에 올라 23일 동안 머물며 현장을 지휘했다. 국방부 차원에서 군사지원본부장을 맡아 해경을 지원한 것이다. 나를 보좌하는 비서실장과 같은 격실에서 쪽잠을 자면서 보냈다. 잠수사들이 바다에 들어가는 시간이 수시로 바뀌니까 편히 잠을 잘 수 없었다. 잠수사가 조류가 세고 찬 바닷속에 들어갈 때 내가 잘 수는 없지 않은가.

당시 통영함 출동을 두고도 논란이 있었다.

새로운 함정이 건조되면 해군이 인수해 6개월 정도 훈련(시운전)을 거친 뒤 실전에 투입한다. 세월호 사건 당시 통영함은 조선소에서 제작 중이었고, 해군이 인수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세월호 사건이 터지자 잠수사 20명이 구조를 시작했다. 현장에는 이들에게 필요한 체임버(잠수 후 회복하는 장치)가 충분했다. 추가로 배치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체임버 장치가 있는 통영함을 사건 현장에 보내지 않기로 했다. 당시 정권이 개입해 출동을 막은 것은 아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재임 당시 전남 진도해상 '세월호' 여객선 사고 현장을 방문, 민관군 합동 수습작업 중인 바지선에 승선해 당시 해군 참모총장이던 황 전 총장으로부터 보고를 받고 있다. 황 전 총장은 박 전 대통령을 만날때로 군복에 노란 리본을 달았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재임 당시 전남 진도해상 '세월호' 여객선 사고 현장을 방문, 민관군 합동 수습작업 중인 바지선에 승선해 당시 해군 참모총장이던 황 전 총장으로부터 보고를 받고 있다. 황 전 총장은 박 전 대통령을 만날때로 군복에 노란 리본을 달았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노란 리본을 달아 정권의 눈 밖에 났고 그래서 수사를 받았다는데.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군인으로서 국민의 희생에 애도를 표하기 위해서였다. 통영함은 2013년 12월(세월호 사건 4개월 전) 해군의 인수를 앞두고 있었다. 그러나 당시 방위사업청 함정사업부장이던 나는 인수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요구된 성능에 미치지 못해 인수할 수 없는 상태여서다. 그런데 장비 선정 과정에 내가 부정하게 개입해 돈을 받았다는 의심을 받았다.

정치적 사건으로 고생하고도 정치에 나선 이유는 뭔가.

한국 사회는 안전에 있어 치명적인 취약점이 분명 존재하고 있다. 나는 목격자이자 군인으로서 그에 대한 부채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나는 방산비리 혐의로) 떠밀리다시피 강제 전역했다. 미처 마무리하지 못한 의무감도 있다. 정치란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지역사회와 국민을 위해 봉사하고 고향을 자부심과 활력이 넘치는 곳으로 만들고 싶다.

최근 책을 냈다.

군인의 기록이자 시민의 항변이다. 그간의 경험을 엮은 ‘바다에서 새벽을 보다’라는 제목의 에세이다. 역사는 발전한다는 믿음으로 썼다. 더 안전하고 공정한 사회 그리고 튼튼한 안보는 그냥 지켜지는 게 아니다. 세월호 같은 사건도 일어나지 말아야 하고, 발생한다면 효과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아직도 해양 구조체계가 보완되지 않았다. 체계적인 연구 발전이 필요하다. 안보는 복잡하고 위중하다. 북한 비핵화와 주변국 환경도 살펴봐야 한다. 이런 내용을 담았다.

인터뷰=김민석 군사안보연구소장, 정리=박용한 군사안보연구소 연구위원, 사진=변선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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