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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새 보호’에 뿔난 흑산도 주민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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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최경호 기자 중앙일보 광주총국장
최경호 광주총국장

최경호 광주총국장

28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환경부 앞. 전남 신안군 흑산도 주민 500여 명이 “정부는 흑산공항 공약을 즉시 이행하라”고 외쳤다. 이들은 ‘흑산주민 뿔났다’ ‘국립공원 해제’ 같은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를 흔들며 공항 건설을 촉구했다.

다도해국립공원에 속한 흑산도 주민들이 정부를 상대로 항의시위에 나섰다. 주민들이 촉구해 온 흑산공항이 수년째 답보 상태여서다. 주민들은 “교통·의료 등 생존권 차원에서라도 공항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환경부는 국립공원 환경보존과 철새 보호를 이유로 반대 입장을 보여왔다.

주민들이 공항 건설을 요구하는 것은 1년 중 3분의 1 정도가 여객선 운항이 중단되는 곳이어서다. 이곳은 매년 기상악화 때문에 평균 50일가량 여객선이 다니지 않는다. 또 60일 정도는 안개나 풍랑으로 여객선 운항횟수가 제한된다. 응급환자가 발생하더라도 위험한 사선(임차선박)이나 닥터헬기를 이용하지 않고서는 병원을 찾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 전남 목포항에서 92㎞가량 떨어진 섬에는 주민 2300여 명이 살고 있다.

전남도 안팎에선 정부의 미온적 태도가 주민들의 반발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0년째 추진된 사업이 2016년부터 답보상태에 빠져서다. 환경부는 당시 조류 충돌 등을 이유로 보류결정을 내린 데 이어 지난해 10월에는 심의 중단방침을 밝혔다. 공항 건설 여부를 결정할 심의 자체가 중단된 것이다.

공항에 대한 주민들 의지는 최근 문 대통령의 ‘국민과의 대화’ 때도 엿볼 수 있다. 당시 주민 대표가 문 대통령에게 직접 전달한 건의서에는 “대통령께서 대선 시절 흑산공항 대책을 마련해주셨는데, 환경부 등이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고 있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흑산공항은 2013년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B/C 4.38)한 데 이어 문 대통령의 대선 공약에 포함됐다. 이후 주민들은 “공항이 건설되는 곳은 철새가 다니지도 않는 데다 사업성도 높게 나왔는데 건설을 주저하는 이유가 뭐냐”고 끊임없이 물어왔다. 이제 정부가 답할 차례다.

최경호 광주총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