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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날치기 장례’ 논란, 썰렁한 탈북 모자 분향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6면

이태윤 사회2팀 기자

이태윤 사회2팀 기자

지난 26일 통일부 산하 탈북민 지원기관인 남북하나재단(하나재단)이 탈북민 한성옥씨 모자(母子)를 위해 마련한 분향소 분위기는 쓸쓸했다. 오전 10시부터 조문객을 받았지만 2시간이 지나도록 일반인 조문객이 단 한명도 오지 않았다. 오후 2시까지 탈북 모자를 추모한 일반인은 10명이 채 되지 않았다. 한씨 모자 장례에 ‘상주’를 자처했던 탈북민 모자 사인규명 및 재발방지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 관계자 모습은 한명도 보이지 않았다. 분향소에는 탈북 모자의 이름이 쓰여있는 화환 2개와 김연철 통일부 장관·박준희 관악구청장·남북하나재단 등에서 보낸 화환 몇 개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취재하기 위해 온 기자와 구청 관계자 몇몇만 보였다.

한씨 모자는 지난 7월 31일 관악구 봉천동의 한 임대아파트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발견 당시 한씨 집 냉장고에 먹을거리라고는 ‘고춧가루’뿐이었다고 한다. 수도요금을 오랜 기간 내지 못해 식수도 끊긴 상태였다. 경찰은 “타살과 자살 정황 둘 다 없다”며 “굶어서 숨졌을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굶주림을 피해 죽을 고비를 넘어 우리나라를 찾았을 모자의 비극에 많은 국민이 충격을 받았다. 특히 3만 3000명(입국 기준) 탈북민들의 안타까움은 더했다. 탈북단체들은 비대위를 만들고 지난 8월 서울 광화문에 추모 분향소를 바로 설치했다.

하나재단이 수도권 6곳의 하나센터에 분향소를 설치한 건 그로부터 3개월이 지난 뒤였다. 비대위는 “시신이 안치된 곳에 장례식장도 마련하지 않고 분향소만 설치한 뒤 장례 절차를 강행하는 행위는 ‘날치기 장례’다”고 즉각 반발했다. 비대위원장을 맡은 탈북민 허광일씨는 “국민 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요식행위로 보일 뿐 애도의 의미가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비대위 참여 단체 중 하나인 북한인민해방전선의 최정훈 대표는 “관악구청, 통일부, 여당 관계자들은 서울 종로에 이미 비상대책위원회가 설치한 분향소에는 단 한 번도 방문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분노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9일 MBC ‘국민이 묻는다-2019 국민과의 대화’에 출연해 “탈북민은 헌법에 의하면 우리 국민이다. 차별 없이 받아들이고 정부 지자체에도 보다 많은 지원을 하도록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근 북한 선원 추방 사건까지 이어지며 탈북민 사이에서는 “믿을 수 없다”는 불안과 분노가 번지고 있다고 한다. 한 탈북민은 “제주도로 건너온 난민들도 법무부에서 기준 잡고 판단하는 데 몇 달이 걸리는데 탈북민은 며칠 만에 (북한으로) 보내버린다”며 “우리도 헌법상 국민이라더니 외국인보다도 못한 처우를 받는 것 같다”고 했다.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굶은 채로 숨졌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수 있지만, 탈북자는 활동력이 없으면 아무도 거들떠 봐주지 않는다”는 탈북민도 있었다.

비대위는 ▶정부의 사과 ▶통일부·대책위 협의기구 설치 ▶전국적인 탈북민 협력망 구축 등을 요구하고 있다. 정부가 이에 대한 답을 내놓는 게 우선이다. 허 위원장은 “정부가 모든 장례절차 비대위와 합의해서 치르기로 했는데 이를 어기고 일방적으로 진행하는 건 비상식적이다”고 했다.

경찰이 추정한 한씨 모자의 사망 시점은 지난 5월쯤이다. 6개월 만에 정부가 내놓은 대답에 탈북민의 감정만 상했다. 한씨 모자는 아직도 위로받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태윤 사회2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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