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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선수권 노골드 충격, 6개월 만에 이겨낸 한국 양궁

중앙일보

입력

2019 아시아 양궁선수권에서 9개의 금메달을 따내며 종합우승을 차지한 양궁대표팀. [사진 대한양궁협회]

2019 아시아 양궁선수권에서 9개의 금메달을 따내며 종합우승을 차지한 양궁대표팀. [사진 대한양궁협회]

'세계선수권 노골드' 충격을 깨끗이 이겨냈다. '효자 종목' 양궁이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아시아양궁선수권에서 역대 최고 성적을 거뒀다.

아시아선수권 10종목 중 9종목 석권 #올림픽 정식 종목인 리커브는 5개 싹쓸이 #6월 세계선수권 개인단체 노골드 부진 씻어

한국 양궁 대표팀은 27일 태국 방콕에서 끝난 2019 아시아선수권에서 금메달 9개, 은메달 2개, 동메달 2개를 따냈다. 기계식 활인 컴파운드 혼성전을 제외한 9개 종목을 모두 휩쓸어 종합우승을 차지했다. 2011년 혼성전이 신설된 이후 거둔 역대 최고 성적이다. 특히 올림픽 정식 종목인 리커브는 5종목을 모두 휩쓸었다.

여자 컴파운드 개인전 금메달을 따낸 설다영(가운데)과 은메달을 획득한 소채원(왼쪽). [사진 대한양궁협회]

여자 컴파운드 개인전 금메달을 따낸 설다영(가운데)과 은메달을 획득한 소채원(왼쪽). [사진 대한양궁협회]

양궁은 아시아가 강세다. 세계랭킹 남·녀 20위 안에 남자는 8명(한국 포함 3명), 여자는 10명(3명)이 아시아 선수다. 아시아선수권의 수준도 낮지 않다. 특히 올림픽을 앞둔 상황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건 긍정적인 신호다. 이도현 대한양궁협회 기획실장은 "이번 대회에선 올림픽 쿼터를 이미 확보한 국가의 정상급 랭커들이 빠졌다. 하지만 올림픽 준비 과정에서 선수들이 자신감을 얻은 걸 큰 수확으로 평가하고 있다"고 했다.

사실 다섯 달 전만 해도 한국 양궁엔 '빨간 불'이 켜졌다. 지난 6월 네덜란드 스헤르토겐보스에서 열린 세계선수권에서 혼성전 금메달 1개(강채영-이우석)에 그쳤기 때문이다. 특히 남·여 개인전과 단체전에서는 '노골드'에 그쳤다. 네 종목 모두 우승하지 못한 건 1987년 호주 애들레이드 대회 이후 32년 만이었다. 특히 남자 대표팀은 개인전 노메달, 단체전 동메달로 부진했다. 2020 도쿄올림픽을 1년 앞두고 열린 세계선수권이기에 충격은 컸다. 이도현 실장은 "세계선수권 부진을 협회와 대표팀에선 심각한 문제로 봤다. 올림픽을 앞두고 조직 정비 및 대표팀 지원 준비에 들어갔다"고 전했다.

한국 양궁은 90년대 이후 오랫동안 세계정상을 지켰다. 3년 전 2016 리우올림픽에서는 최초로 4개의 금메달을 싹쓸이하는 쾌거를 이뤘다. 한국이 종합 순위 9위(금메달 9개, 은 3, 동 9)를 따낸 데는 양궁의 지분이 컸다. 하지만 세계양궁과 한국의 격차는 꾸준히 줄어들고 있다. 한국 지도자들이 대거 해외에서 활동하면서 한국 양궁의 강점을 경쟁국들이 배웠기 때문이다. 2010년부터 도입된 세트제(개인전 기준) 방식도 한국 입장에선 손해다. 72발을 쏴 총점으로 매기는 예선에선 한국 선수들이 상위권을 휩쓴다. 하지만 긴장감이 높고, 9~15발로 승부가 날 수 있는 세트제에선 이변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리커브 남자 단체전에서 우승한 뒤 시상대 맨 위에 오른 오진혁-이우석-김우진. [사진 대한양궁협회]

리커브 남자 단체전에서 우승한 뒤 시상대 맨 위에 오른 오진혁-이우석-김우진. [사진 대한양궁협회]

그런데도 한국 양궁이 꾸준히 경쟁력을 유지한 건 공정한 대표팀 선발 덕분이다. 양궁은 재야선발전을 통해 남녀 각각 12명을 걸러낸다. 이후 전년도 국가대표 8명이 합류하고, 상위 8위 안에 들어야 태극마크를 달 수 있다. 국가대표가 돼도 국제대회에 나가려면 평가전 3~4위 안에 들어야 한다. 제아무리 올림픽 금메달을 딴 선수도 7~8개월 동안 수천 발의 화살을 쏴 경쟁자를 물리쳐야 한다. 채점도 세트별, 총점별, 슛오프(세트제 동점시 한 발로 승부를 가리는 것) 등 다양한 방식으로 하기 때문에 '정말 강한 선수'만 살아남을 수 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대한양궁협회는 늘 새로운 훈련 방식과 선발전 방식을 도입하고 있다. 지난 6월 세계선수권 부진 이후엔 평가전 난도를 더 높였다. 기존 국가대표에게 주던 혜택까지 없애고 재야선발전 없이 모든 선수가 동등하게 시작하게 된 것이다.

리커브 여자 단체전 금메달을 따낸 이은경-강채영-최미선(왼쪽부터). [사진 대한양궁협회]

리커브 여자 단체전 금메달을 따낸 이은경-강채영-최미선(왼쪽부터). [사진 대한양궁협회]

내년 올림픽에서 한국 선수단의 성적은 리우 대회보다 떨어질 전망이다. 엘리트 스포츠에 대한 지원과 관심이 줄어든 가운데 전체적인 국제 경쟁력도 하락하고 있다. 금메달 30개를 목표로 하는 개최국 일본과 대조적이다. 그런 상황에서 체육계는 양궁에서의 선전을 기대하고 있다. 혼성전이 처음으로 채택돼 총 금메달 숫자도 하나 더 늘었다.

양궁은 초·중·고·대학은 물론 실업선수까지 합쳐도 등록 선수가 2000명이 안 된다. 하지만 꾸준하고 건전한 경쟁을 통해 기대주들을 꾸준히 배출하고 있다. 지난해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이자 여자 세계랭킹 1위 강채영(23·현대모비스)은 이번 대회 개인·단체·혼성전까지 3관왕에 올랐다. 여자 단체전 금메달을 합작한 강채영, 이은경(22), 최미선(24·순천시청)의 평균연령은 만 23세다. 아시안게임에서 아쉽게 준우승에 그쳤던 '예비역 병장' 이우석(22·코오롱엑스텐보이즈)은 2관왕(남자 개인·단체)에 올랐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오진혁(38·현대제철), 김우진(27·청주시청) 등 베테랑들도 여전한 기량을 발휘하고 있다. 내년 도쿄에서도 금빛 화살을 기대하는 이유다.

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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