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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박한 예산처리 ‘데드라인’… 일자리ㆍ소부장ㆍ北 늘려야 하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2020년도 예산안 시정 연설을 하고 있다. [뉴스1]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2020년도 예산안 시정 연설을 하고 있다. [뉴스1]

내년도 513조원 규모 ‘슈퍼 예산’의 법정처리 시한(12월 2일)이 나흘 앞으로 다가왔다. 국회 심의 막바지에 접어들었지만 여야 간 팽팽한 힘겨루기로 시한 내 처리가 불투명하다. 법정 시한까지 심의를 마치지 못하면 국회선진화법에 따라 예산안을 본회의에 자동 상정해야 한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해 재정을 풀어야 한다”며 예산안 원안 사수를 주장한다. 재정 여력이 충분하다는 근거를 댄다. 반면 자유한국당ㆍ바른미래당 등 야당은 확장 재정을 내년 총선을 앞둔 ‘선심성 예산’으로 규정하고 대폭 삭감을 벼른다. 세수 부족이 예측되는 상황에서 과거 외환위기ㆍ금융위기 때보다 재정을 확장적으로 운용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근거를 댄다. 여야 간 의견이 첨예하게 갈리는 예산 쟁점을 들여다봤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일자리 예산 꼭 늘려야 돼?

‘일자리 정부’를 표방한 문재인 정부인 만큼 내년 일자리 예산(25조7697억원)은 역대 최대 규모다. 올해(21조2374억원)보다 21.3% 늘었다. 야당은 ‘일자리 안정자금’ 예산(2조1647억원)부터 전액 삭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자리 안정자금은 최저임금 인상의 직격탄을 맞은 소상공인을 돕기 위해 주는 돈이다. 야당은 지원금이 적재적소에 쓰이지 않고 줄줄 샌다는 점, ‘한시 지급’을 약속해 놓고 법적 근거 없이 운영한다는 점 등을 삭감 근거로 들었다. 여당은 “소상공인의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예산을 줄일 수 없다”며 맞서고 있다.

단기ㆍ노인ㆍ공공근로 일자리 등 고용 창출 효과를 장담하기 어려운 일자리 예산도 논란거리다. 야당은 “지난 3년간 본예산과 추가경정예산, 예비비를 무리하게 투입해 재정 일자리를 만들었지만, 성과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며 삭감을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실업자에게 수당을 주고 취업 지원 서비스를 제공하는 ‘국민 취업 지원 사업’ 예산 2800억원, 지역주도형 청년 일자리 사업 예산 879억원, 노인 일자리 사업인 ‘신중년 사회공헌 활동 지원 사업’ 예산 320억원을 각각 삭감해야 한다고 나섰다.

반면 여당은 “사회 양극화를 해소하고 노인 빈곤을 해결하기 위해 당초 계획대로 추진하겠다”며 “각종 경제지표가 악화하는 상황에서 과감한 재정 투입을 통해서라도 일자리 창출은 지속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깜깜이’ 소부장도 쟁점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지난 7월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 이후 급히 편성한 ‘소재ㆍ부품ㆍ장비(소부장) 지원 사업’ 예산은 제대로 계획도 짜지 않은 채 추진하는 ‘깜깜이’ 예산이란 야당의 지적에 부딪혔다. 지난해 8000억원에서 2조1000억원 규모로 두 배 이상 늘렸다. 이 중 1조3000억원이 연구개발(R&D) 예산이다. 그런데 R&D 예산은 새로운 내용보다 지원 규모를 늘리는 데 초점을 맞춰 ‘재탕’이 대부분이다.

야당은 “고질로 지적된 눈먼 돈 ‘나눠 먹기’가 재현될 가능성이 높다. 계획조차 준비하지 못한 상태에서 낭비만 가져올 수 있다”고 주장했다. ‘소재ㆍ부품ㆍ장비산업 지원 펀드’ 예산 1840억원, ‘소재ㆍ부품 패키지형 기술개발’ 예산 807억원 감액을 요구했다. 여당은 “당장 효과가 나타나지 않을 수 있어도 소부장 분야에서 극일(克日)하기 위해 꼭 필요한 예산”이라고 맞서고 있다.

핵심 100개 품목의 조기 국산화를 명분으로 앞세웠지만, 일본과 관련 있는 예산이란 이유를 들어 비공개로 추진하는 것도 논란거리다. 야당은 “전략 품목과 지원과제 선정을 비공개로 추진하는 건 향후 과제 선정의 공평성 문제와 정책실패를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집행도 못하는 ‘北 퍼주기’ 늘린다?

올해보다 10.3% 증액한 남북협력기금(1조2000억원)도 도마 위에 올랐다. 남북관계가 소강 국면인데 예산은 늘렸기 때문이다. 야당은 ‘남북 경제협력 기업 지원 사업’ 예산에 대해 “북한의 비핵화가 가시화하지 않은 상황에서 진행하는 남북협력 사업은 ‘대북 퍼주기’다. 집행도 못 하는 예산을 쌓아두는 건 맞지 않는다”며 4600억원 감액을 주장하고 있다. 이 밖에도 ‘민생 협력 지원 사업’ 예산 466억원, ‘남북협력기금’ 예산 142억원, ‘올림픽 공동 진출’ 예산 17억원 등 감액을 요구했다. 반면 여당은 “향후 남북 대화ㆍ평화 국면을 고려한 사전 작업이 중요하다”며 “남북관계는 언제든 풀릴 수 있으니 미리 준비해야 한다”고 맞섰다.

변수는 ‘패스트트랙’ 짬짜미

문희상 국회의장이 예산안 법정처리 시한 다음 달인 3일 본회의에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한 공직선거법 개정안,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안 및 검ㆍ경수사권 조정 법안을 상정하겠다고 밝힌 점도 예산안 처리의 막판 변수다. 여야가 예산안과 연계해 적당히 절충하는 선에서 처리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김형준 명지대 정치학과 교수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이번 예산안이 법정 기한을 넘길 경우 국회가 연말까지 극심한 파행을 겪을 가능성이 있다”며 “(국회가) 좀 더 꼼꼼하게 예산을 검증하고 감액ㆍ증액한 내용을 투명하게 공개해 국민에게 표로 심판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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