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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해 시인 "아내가 생기 있게 살아 있는 삶이 행복"

중앙일보

입력

57년째 활동하고 있는 김종해 시인이 열두 번째 시집을 펴냈다 . 최승식 기자

57년째 활동하고 있는 김종해 시인이 열두 번째 시집을 펴냈다 . 최승식 기자

"저녁이 와서 길은 빨리 저물어 가는데 / 그동안 이생에서 뛰놀았던 생의 환희 / 내 마음속에 내린 낙엽 한 장도 / 오늘밤 악기 위에 얹어서 노래하리라" ('늦저녁의 버스킹' 중에서)

1963년에 등단해 햇수로 57년째 활동하는 김종해(78) 시인이 열두 번째 시집 『늦저녁의 버스킹』(문학세계사)을 펴냈다. 삶과 죽음, 이별에 대한 소회와 평범한 일상을 담담하게 시로 풀었다. 전작 시집 『모두 허공이야』를 펴낸 지 3년 8개월 만이다. 최근 서울 순화동 중앙일보에서 만난 김종해 시인은 "아우(김종철 시인)가 2014년 죽고 난 뒤로는 시를 예전보다 더 많이 쓰게 됐다"며 "삶과 죽음, 슬픔과 외로움에 대해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된 거 같다"고 말했다.

열 두번째 시집 『늦저녁의 버스킹』 #"남은 바람은 시집 한 권만 더 내는 것"

그의 말대로 이번 시집에는 지난 삶을 돌이켜보며 떠오르는 상념이나 추억 등을 담은 시가 많다. 김종해 시인은 "지난 삶을 돌아보면 잘 살았고 고맙다고 생각한다"며 "나는 오늘 하루가 변고 없이 건강하게 지나간 것이 너무 행복하다. 나를 비롯한 나의 아내, 그리고 내 주변 사람들이 무사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축복 된 하루"라고 설명했다.

"멀리서 보면 고요하고 아름답구나 / 가까이서 보면 허방뿐 / 내가 살아왔던 행성 / 내가 떠나고 없는 세상 / 나는 한평생 / 사람으로서 무엇에 매달려 있었던가" ('사람으로서 살았던 때가 있었다' 중에서)

김종해 시인은 "동생이 죽고 난 뒤에 삶과 죽음에 대해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고 밝혔다. 최승식 기자

김종해 시인은 "동생이 죽고 난 뒤에 삶과 죽음에 대해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고 밝혔다. 최승식 기자

이번 시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시로는 표제시 '늦저녁의 버스킹'을 꼽았다. 김 시인은 "사람은 누구나 몸과 영혼을 갖고 있는데, 어떻게 보면 하나의 악기와도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며 "분노나 슬픔, 기쁨 같은 여러 감정의 울림에 따라 여러 소리가 나오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등단 이후 꾸준히 사람과 음악, 악기라는 이미지의 연관성에 집중해왔다. 그가 1966년 처음으로 펴낸 시집의 제목도 『인간의 악기』(서구출판사)였다.

시집에는 아내와 관련된 시들도 여러 편 눈에 띈다. 결혼식에 대한 추억을 담은 '축복이 잊히지 않는 이유'부터 아내와의 여행을 추억한 '호놀룰루는 아름답다', 노부부의 평범한 일상을 다룬 '광화문의 달' 등의 시에는 아내를 향한 애틋한 마음이 고스란히 담겼다. "고등학교 때 펜팔로 만난 인연과 장거리 연애를 하다가 결혼까지 성공했다"고 밝힌 김 시인은 "아내는 내 인생에서 유일한 여자"라고 했다. 다른 이성을 만나지 않은 것에 대한 아쉬움은 없느냐고 묻자 "전혀 억울하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아내가 죽어서 없는 삶보다 / 아내가 생기 있게 살아 있는 삶이 나는 행복하다 / 아직은 아프지 않고 / 이 세상에서 아내와 함께하는 삶이 / 나에게는 은혜롭다" ('아내를 사랑하라' 중에서)

앞으로 목표를 묻자 김 시인은 "시집 한 권을 더 내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유를 묻자 "내가 내년에 팔순인데 팔순 중반 정도 되면 의식이나 체력적으로 전처럼 시를 쓰기는 어려워질 거 같다"며 "그간 보통 3~4년에 한 권꼴로 시집을 내왔으니 앞으로 한 권 정도만 더 낼 수 있다면 만족할 것 같다"고 밝혔다.

평생 시를 써왔지만, 아직도 시에 대한 갈증이 있다는 김 시인은 "쉽게 이해되고 메시지가 사람들에게 확실히 전달되어 회자하는 시가 성공한 것"이라며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알 수 없는 난해한 시는 실패한 것이다. 시간이 허락된다면 사람들에게 울림을 줄 수 있는 시를 남기고 싶다"고 말했다.

정아람 기자 a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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