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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 생활, 무엇이 더 중요한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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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임미진
임미진 기자 중앙일보 기자
임미진 폴인 팀장

임미진 폴인 팀장

과거를 돌아보면 누구나 현명해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미래를 상상하면 지금의 어떤 고민은 무게가 달라진다. 일하는 마음에 대한 콘퍼런스를 준비하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연사로 서는 인공지능 스타트업 보이저엑스의 남세동 대표를 미리 만난 자리에서였다.

보이저엑스는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한 다양한 서비스를 내놓고 있다. 음성인식을 통해 동영상에 자동으로 자막을 입혀주거나, 손글씨를 읽어내 컴퓨터 폰트로 바꿔주는 식이다. 영상 편집과 폰트 디자인 작업의 상당 부분이 기술로 대체되는 것이다. 남세동 대표에게 물었다. “인공지능은 인간의 일을 빼앗아가고 있나요.”

그는 말했다. “미래의 사람들이 2000년대 초반의 우리를 돌아보면 뭐라고 할까요. ‘그때는 사람들이 일주일에 5일이나 회사를 가서, 아침부터 밤까지 일했대’라고 말하지 않을까요. 기술은 인간의 일을 줄여주는 거라고 믿어요. 특히 하고 싶지 않은 단순한 작업을요.”

노트북을 열며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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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질문에 대한 우리의 대답 역시 시점에 따라 달라진다. 누군가 당신에게 “일이 중요하냐, 가정생활이 더 중요하냐”고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불과 8년 전인 2011년만 해도 “일이 중요하다”(54.5%)고 말하는 사람이 훨씬 많았다.

지금은 어떨까. 통계청이 25일 내놓은 ‘2019년 사회조사 결과’에선 “일과 가정생활을 비슷하게 우선시한다”는 답(44.2%)이 “일을 우선시한다”(42.1%)는 답보다 더 높게 나왔다. ‘일이 우선’이라는 답이 2위로 처진 건 이 조사가 시작된 이후 처음이라고 한다. 일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가 크게 변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미래를 상상해보자. 10년 뒤에 같은 질문을 받으면 당신은 뭐라고 대답할까. 이 질문이 10년 뒤에도 통계청 사회조사에 남아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미 많은 이들이 “일과 일 외의 생활을 어떻게 경계 짓느냐”는 질문을 하고 있다. 무엇보다 근무 형태가 빠르게 바뀌고 있다. 스타트업을 중심으로 출퇴근 시간이 유연해지고 재택·원격 근무가 는다. 곧 출퇴근의 개념이 없어지고, 일과 생활의 공간이 구분되지 않는 시대가 올 것이다.

일과 일 외의 생활을 구분 짓는 워라밸(Work-Life Balance)보다 일은 생활의 일부라는 워라인(Work-Life Integration)에 대해 논의하자는 이들이 늘어나는 이유다. 우리의 일은 계속 변하고 있다. 이 변화의 방향을 상상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변화의 방향을 먼저 읽으면, 남보다 더 빨리 변하고 더 지속 가능하게 일할 수 있다. 일에 대한 열린 논의가 더 필요한 이유다.

임미진 폴인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