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건축사에게 빌딩은 괘종시계, 주택은 손목시계, 그 뜻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더,오래] 손웅익의 작은집 이야기(31)

“평당 설계비는 얼만가요?”라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당황하게 된다. 그건 옷 한 벌 맞추는데 얼마이냐고 묻는 것과 비슷한 질문이다. 설계비는 건물의 종류에 따라 다르고 규모에 따라 다르다. 설계가 복잡하면 단위면적으로 환산한 설계비는 더 비싸지고 설계가 좀 쉬운 건물은 단가가 좀 내려간다. 탁상시계보다 손목시계가 더 비싼 이치와 같다. 손목시계가 작고 정밀하고 디자인도 세밀하므로 괘종시계나 탁상시계보다 비쌀 수밖에 없다. 그런데 주택설계비는 비싸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건축사 업무 범위와 보수 기준은 건물의 설계와 공사의 난이도에 따라 ‘단순, 보통, 복잡’으로 건축물 종류를 구분해 놓았다. 가장 단순한 건물은 가설건축물, 창고시설, 자동차 관련 시설, 동물 및 식물 관련 시설 등이다. 보통으로 되어 있는 건축물은 단독주택, 공동주택, 제1종 근린생활시설, 제2종 근린생활시설, 업무시설, 숙박시설 등이 해당한다. 복잡한 건축물은 문화집회시설, 의료시설, 운동시설 등이다.

건축사 업무 범위와 보수 기준은 건물의 설계와 공사 난이도에 따라 ‘단순, 보통, 복잡’으로 건축물 종류를 구분한다. 여기에 종류마다 제출하는 설계도서 양에 따라 ‘기본, 중급, 상급’으로 분류한다. [사진 pxhere]

건축사 업무 범위와 보수 기준은 건물의 설계와 공사 난이도에 따라 ‘단순, 보통, 복잡’으로 건축물 종류를 구분한다. 여기에 종류마다 제출하는 설계도서 양에 따라 ‘기본, 중급, 상급’으로 분류한다. [사진 pxhere]

이렇게 설계를 ‘단순, 보통, 복잡’한 정도로 따져 분류하고 여기에 종류마다 제출하는 설계도서의 양에 따라 ‘기본, 중급, 상급’으로 분류해 두었다. 즉, 건축물의 용도에 따라 설계의 복잡한 정도가 세 가지로 분류하고 그 분류마다 어느 수준까지 도면을 만드느냐에 따라 또 세 가지로 세분해 놓은 것이다. 이렇게 분류한 9가지 경우마다 공사비의 규모에 따라 설계비의 요율을 정해 두었다. 공사비 총액을 5000만 원부터 5000억 원까지 17단계로 나누고 단계마다 설계비의 요율을 정해두었다. 공사비에 따른 설계비 요율은 총 공사비가 적으면 설계비 요율이 높고 공사비가 많아질수록 요율은 적어지게 돼 있다.

설계비 산정의 예를 들어보자. 업무시설의 경우는 설계의 ‘단순, 보통, 복잡’에서 ‘보통’으로 분류되어 있다. 면적이 10,000㎡이고 공사비가 150억 원이라고 가정하자. 설계도서의 양을 ‘중급’으로 하면 설계 요율은 공사비의 4.1%로 되어있다. 즉 공사비 150억 원 정도 업무시설의 설계비는 6억1000만 원이 되는 셈이다. 평당 설계비로 환산하면 20만3000원 정도 된다. 단독주택의 경우도 설계의 복잡 정도가 ‘보통’으로 되어있다. 주택 면적을 165㎡, 공사비를 3억 원 정도로 가정하고 설계도서의 양이 ‘중급’이면 설계비 요율은 공사비의 6.13%가 된다. 즉, 주택 설계비는 1800만 원, 평당 설계비로 환산하면 36만 원이 된다.

건축사 업무 범위와 보수 산정표에 분류된 건축물의 용도 중 가장 잘못 분류된 것이 단독주택이다. 우선 주택은 설계수준이 보통이 아니라 ‘매우 복잡’에 속한다. 업무시설과 같이 불특정 다수를 위한 일반해법이 아니라 매번 특정인을 위해 새롭게 접근해야 하는 특수해법이다. 업무시설의 경우는 주차장과 건물 전체의 동선, 화장실 등이 모여 있는 곳만 잘 해결하면 공간적으로 특별히 어려운 것이 없다. 규모가 크다 해도 기준층 평면은 동일하므로 도면 작업도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러나 주택은 손목시계처럼 아주 작은 공간이 서로 유기적인 관계를 형성하면서 잘 구성되어야 한다. 매번 새로운 성격과 취향을 가진 건축주와 가족들의 여러 가지 요구사항을 놓고 퍼즐 맞추듯 공간을 디자인해야 한다. 설계비 6억1000만 원의 업무시설과 설계비 1800만 원의 주택 설계에 투자하는 에너지는 비슷하다. 설계하는데 소요되는 시간도 별 차이가 없다.

매년 더 좋은 건축자재가 개발되고 더 좋은 공법이 등장한다. 모두 더 좋은 자재와 더 멋진 집에 관심을 가진다. 그러나 설계비에 따라 집의 결과물이 달라진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사진 pxhere]

매년 더 좋은 건축자재가 개발되고 더 좋은 공법이 등장한다. 모두 더 좋은 자재와 더 멋진 집에 관심을 가진다. 그러나 설계비에 따라 집의 결과물이 달라진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사진 pxhere]

아주 작은 공간에 대한 쓰임새까지 세심하게 디자인해야 하므로 도면의 양도 많아진다. 게다가 건축설계 외에 구조설계, 기계설계, 전기설계 등은 협력업체에 의뢰해야 한다. 조경설계업체와 협업하기도 한다. 이렇게 협업하는 업체와 설계비를 나누어야 한다. 이렇게 따져보니 주택은 요율에 정해진 설계비로는 제대로 설계하기가 곤란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이유로 주택설계를 하지 않는 사무소도 많다. 아니면 신경을 보통만 쓰고 공사에 필요한 최소한의 도면만으로 설계를 마칠 수밖에 없다. 주거문화가 답보상태인 이유의 하나다.

해마다 대규모 건축, 인테리어 전시회가 여기저기 열린다. 건축 전시회마다 관람 인원이 넘쳐난다. 매년 더 좋은 건축자재가 개발되고 더 좋은 공법이 등장한다. 특히 주택과 관련된 전시관이 인기가 높다. 모두 더 좋은 자재와 더 멋진 집에 관심을 가진다. 그들은 평당 공사비에 따라 집의 결과물이 달라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설계비에 따라 집의 결과물이 달라진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프리랜서 건축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