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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조영태의 퍼스펙티브

내년 베이비부머·X세대·밀레니얼 모두 바뀐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8면

인구로 보는 한국 사회 

지난 8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사거리에서 출근길을 재촉하는 사람들. 내년에 커다란 인구 변동이 시작되며 인구 변화에 맞춰 국가 정책 등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뉴시스]

지난 8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사거리에서 출근길을 재촉하는 사람들. 내년에 커다란 인구 변동이 시작되며 인구 변화에 맞춰 국가 정책 등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뉴시스]

1990년대 말, 많은 사람이 2000년대가 시작되면 컴퓨터가 오작동할 것이라는 우려와 함께 탈산업 시대가 열려 완전히 다른 사회가 올 것이라고 기대했다. 21세기가 열린 지 20년이 되어간다. 스마트폰의 등장을 제외하고 혹시 이전 세기와 달리 우리 사회의 질서를 바꾸어 놓을 만큼 뭔가 큰 변화가 발생한 것이 있을까? 아마 그리 바뀐 것이 많지 않다는 생각에 많은 독자가 깜짝 놀랐을 것이다. 새로운 밀레니얼 시대는 그저 허상에 불과했을까?

베이비부머가 고령자 되는 내년을 시작으로 #향후 20년간 연 70만~85만명 편입 예정 #건보 등 사회보장기금 위기 발생 우려 현실이 돼 #고령화가 눈 앞에 닥친 만큼 국가 대응 달라져야

인구는 사회를 구성하는 기본이 되는 요소다. 인구의 양적·질적 특성이 변하면 사회 질서도 바뀐다. 요컨대 80년대에는 경제가, 90년대에는 정치가 매우 역동적이었다. 80년대는 55년부터 태어난 베이비부머들이 대규모로 노동시장에 들어오던 때였다. 20대와 30대 젊은 노동력이 넘치니 제조업 중심의 경제가 성장했다. 대학 진학률도 높아졌다. 70년대까지 20%대였던 진학률이 80년대에 30%대가 되었다. 젊은데 학력도 높아지니 정치 참여 욕구도 커졌다. 87년 대통령 직선제와 93년 문민정부의 출범은 사람 수도 많고 교육 수준도 높은 젊은 베이비부머들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처럼 사회 변화는 인구 변동 때문에 촉발된다.

인구 관점에서 보면 우리나라는 20세기 말부터 지금까지 그리 바뀐 것이 없다고 느껴지는 것이 당연하다. 비록 2000년대 들어 심각한 저출산 현상이 나타났지만, 이때부터 태어난 영유아들이 국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은 미미했다. 전체 인구에서 65세 이상 고령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져 고령화도 매우 빠르게 진행되었지만, 아직은 70세 언저리의 고령자여서 사회적 비용을 크게 쓰지 않았다. 고령화 소리는 15년이 넘게 들었지만, 지금까지 제대로 뜬 실버산업이 있다는 소리를 거의 듣지 못했던 이유다.

고령화에 대한 국가 대응 변해야

이처럼 사회를 구성하는 인구 크기와 질적 특징이 어떻게 변하는지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나라는 내년부터 지금까지와 크게 다른 사회를 맞이하게 될 전망이다. 내년부터 아예 새로운 질서와 사회구조가 만들어져 진정한 밀레니얼 시대가 열린다는 말이다. 2020년이 바로 주요 인구집단이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사람들로 채워지게 될 원년(元年)이기 때문이다.

베이비부머는 80년대부터 노동시장에 들어와 2010년대까지 한국 사회 주연으로 활동했다. 그들의 활동 무대는 비단 경제·산업만이 아니라 정치·문화 등 사회의 거의 모든 영역을 포괄했다. 2020년 베이비부머의 맏형인 55년생이 공식적으로 고령자가 된다. 2010년대 매년 약 40만 명이 고령자가 되었다. 베이비부머가 고령자가 되는 내년의 약 65만 명을 필두로 앞으로 20년간 연 70만~85만 명이 고령자로 편입될 예정이다.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각종 연금 수급자이면서 동시에 국민건강보험의 최대 이용자다. 그동안 고령화가 되면 사회보장을 위한 각종 기금에 위기가 발생할 것이라는 걱정이 많았는데 내년부터 그 걱정이 현실이 된다. 아직 경험하지 않을 때와 막상 현실이 되었을 때, 고령화에 대한 국가 대응은 달라져야 한다. 더는 퍼주기 식의 복지 확대는 불가능하다.

베이비부머의 중간 연령대인 60년대생들이 내년부터 은퇴 연령으로 들어간다. 지난해 60세가 된 58년생 개띠가 약 75만 명이었다. 2020년 60세가 되는 60년생 쥐띠는 약 88만 명이고, 61년생 소띠는 약 89만 명에 육박한다. 은퇴 이전과 이후의 소비 행태는 크게 바뀌는 것이 일반적이다. 한 해 8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은퇴 연령대를 지나고 소비 행태를 바꿔주면 시장은 영향을 받지 않을 수가 없다.

예컨대 소득이 가장 높을 때인 55세의 금융 행동은 자산 여부와 관계없이 소득이 줄어드는 60세를 넘어가면서 바뀔 수밖에 없다. 만일 이런 사람의 수가 적다면 사회적 영향력은 적다. 하지만 이런 사람이 매년 80만 명씩 앞으로 20년 동안(정년이 연장되지 않는 상황에서) 누적된다면? 핀테크 성장이나 이자율 변동과 관계 없이도 금융산업은 지각 변동을 경험할 것이 분명하다.

X세대가 중간관리자 돼 조직 문화 바꾼다

2020년 인구피라미드로 보는 세대 구분

2020년 인구피라미드로 보는 세대 구분

기업에서 중간관리자의 역할은 중요하다. 조직의 버팀목으로서 임원과 실무자 사이에서 실무와 관리를 병행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중간관리자는 리더십도 필요하고, 업무 능력도 있어야 한다. 또 임원과 사원 사이의 의사소통 창구도 되기 때문에 누가 중간관리자인가에 따라 기업 성과는 물론 조직 문화도 영향을 받게 된다. 현재 많은 기업에서 중간관리자의 대부분은 30대 말에서 40대 중반 직원들이 담당한다. 내년부터 이 연령대는 모두 X세대로 채워진다. X라는 말이 내포하듯 이 세대는 기성 가치를 거부하며 만들어진 세대다.

우리나라에서 X세대는 75~85년에 태어난 사람들이다. 혹자는 70년대에 태어난 사람들이 X세대 아니냐고 할 수 있지만 74년생과 75년생은 매우 다른 사회 경험을 하며 성장했다. 75년생은 90년대 초반 새로운 형태의 대중문화를 만들었던 서태지를 고등학교 때 만났고, 최초로 학력고사가 아니라 수능을 보고 대학에 진학했다.

이전까지 30%대에 머물던 대학 진학률이 이들이 대학에 진학한 95년부터 40%를 넘기 시작해 85년생이 대학에 입학한 2004년 79.7%까지 증가했다. 동시에 여성의 대학 진학도 일반적이 되었다. 윗세대들이 대학 졸업과 동시에 탄탄대로의 성공 가도를 누린 것과 달리 이들은 졸업과 동시에 IMF 경제위기와 국제금융위기로 취업은 말할 것도 없고 졸업조차 힘들어진 첫 세대다. 교육 수준이 높은 만큼 기대도 컸는데 그 기대가 충족되지 못하여 피해의식이 크고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으며 부조리에 민감하다.

이런 특성을 가진 X세대가 중간관리자를 가득 채우면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았던 기업의 조직 문화는 크게 바뀌게 된다. 인정이나 관행이 통용되던 조직 문화에 원칙과 원리가 더 중시된다. 중간관리자로서 윗세대는 주로 임원들의 의견이나 지시에 따라 움직인 경향이 강했다면 X세대는 임원 지시를 무조건 따르기보다 조직이 정해 놓은 업무의 프로토콜대로 움직인다. 당연히 관행적 조직 문화는 바뀔 수밖에 없다.

과거 관행 더는 통용되지 않아

베이비부머와 X세대 외에도 전 연령대에서 지금까지 겪지 못한 인구 변동이 2020년부터 한국 사회를 크게 바꿀 예정이다. 초고령인구인 80세 이상 인구가 2021년 200만 명을 돌파하여 2030년 300만 명을 넘어선다. 실버산업에 규모의 경제가 생겨난다. 내년이 되면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전체 학령인구가 2002년부터 태어난 초저출산 세대로 채워진다. 한 연령이 갑자기 40만 명 선이 된다. 2021년부터 지방대와 지방 도시의 어려움이 시작된다. 2021년부터 영유아는 한 연령에 30만 명 남짓으로 줄어들어 부모형 소비 규모가 줄어든다. 어려서부터 경쟁이 일상화돼 역사상 최고의 스펙을 쌓은 밀레니얼 세대가 신입사원으로 노동시장에 진입하기 시작한다.

인구 변동으로 보면 2020년부터 한국 사회는 소위 ‘역대급’으로 바뀌어 지금까지와는 질적으로 다른 진짜 밀레니얼 시대가 열린다. 과거의 관행은 더는 통용되지 않음을 명심하자.

키워드

베이비부머
미국에선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인 1946~65년 출생자를 뜻한다. 전쟁 기간 떨어져 있던 부부들이 전쟁이 끝나자 다시 만나고 결혼도 한꺼번에 이뤄지며 많은 아이들이 태어났다. 한국에선 한국전쟁이 끝난 뒤인 55년~64년 태어난 사람을 1차 베이비부머, 65~74년 출생자를 2차 베이비부머라 한다.

X세대
1975~84년 태어나, 학력고사가 아닌 수능으로 대학을 진학한 세대. 97년 IMF 외환위기와 2008년 국제금융위기를 겪으며 ‘대학 진학=인생 성공’ 공식이 적용되지 않는 것을 처음 경험했다. 사회 변화에 앞장서며 밀레니얼 세대보다도 더 진보적 가치를 가진 세대이다.

밀레니얼 세대
1985년~96년생으로 국민학교가 아닌 초등학교를 졸업한 첫 세대이자, 부모 세대인 베이비부머 1세대들의 열기로 대학 진학률 최정점을 찍은 세대. 노동시장에서 이전 세대의 큰 인구 규모에 따른 인구 압박으로 치열한 경쟁을 치른 세대이기에 공정성을 중시한다.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리셋 코리아 보건복지분과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