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윤석열도 이용당한 김학의 사건…6년 만에 3차 재수사 결론은 ‘무죄’

중앙일보

입력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 22일 오후 서울 송파구 동부구치소에서 마중 나온 한 여성의 보호를 받으며 귀가하고 있다.[뉴스1]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 22일 오후 서울 송파구 동부구치소에서 마중 나온 한 여성의 보호를 받으며 귀가하고 있다.[뉴스1]

김학의(63‧사법연수원 14기) 전 법무부 차관의 강원도 별장 성 접대 의혹에 대한 사법부의 1차 판단이 사실 관계에 대한 시원한 결론 없이 마무리됐다. 별장 성접대 동영상과 함께 의혹이 제기된 지 6년 8개월 만에 사법부가 내린 첫 판단이다.

김 전 차관은 1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고 풀려났고, 건설업자 윤중천(58)씨는 실형을 선고받았으나 성범죄 의혹에 대해서는 처벌받지 않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 정계선)는 지난 22일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 뇌물 혐의로 기소된 김 전 차관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김 전 차관이 받은 3억원대 뇌물수수 혐의를 내용과 기간에 따라 나눠 일부는 증명이 부족하다며 무죄를 선고하고, 일부는 공소시효가 지났다며 면소(소송 조건이 결여됐다고 보고 소송을 종결시키는 것)로 판결했다. 특히 성접대를 제공한 여성이 윤씨에게 갚아야 할 채무 1억원을 김 전 차관이 면제해줬다는 제3자 뇌물수수 혐의에 대해 “증거가 부족하다”며 무죄로 판단했다.

이는 지난 15일 먼저 1심 선고를 받은 윤중천씨 재판 결과와도 비슷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부장 손동환)는 윤씨의 사기·공갈미수 등 혐의만 유죄로 판단하고 징역 5년 6개월을 선고했다. 의혹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성폭력 혐의에 대해서는 김 전 차관의 사례와 비슷하게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면소 판결했다.

다만 윤씨의 재판부는 “윤씨는 원주 별장을 꾸미고 친분을 위해 성을 접대 수단으로 사용했다”며 성 접대가 있었다는 사실은 인정했다. 그러면서 “검찰이 2013년 적절히 공소권을 행사했다면 그 무렵 피고인이 적절한 죄목으로 법정에 섰을 것”이라고 검찰을 비판했다.

실제로 검찰은 관련 의혹이 불거진 2013년과 2015년 두 차례 이미 수사를 벌였으나 김 전 차관을 불기소 처분했다. 이를 두고 정치적 외압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계속 제기됐다. 대전고검장을 지내던 김 전 차관은 박근혜 정부 초기인 2013년 3월 임명됐다. 별장 성접대 동영상 의혹이 불거지면서 취임 6일 만에 사퇴했다.

1억6000만원대 뇌물수수·성접대 혐의를 받는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 지난 5월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를 마치고 법원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1억6000만원대 뇌물수수·성접대 혐의를 받는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 지난 5월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를 마치고 법원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발족한 법무부 산하 검찰 과거사위원회가 이 사건을 재조사할지 논의했고, 지난해 4월 검찰에 정식 조사를 권고했다. 대검찰청 과거사진상조사단은 네 차례 활동 기한을 연장하면서 김 전 차관 사건을 조사했다. 올해 3월 김학의 수사단이 정식 출범하면서 본격적인 수사가 시작됐다.

세 번째 수사 과정에서도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과거사위 내부에서 외압이 들어왔다는 폭로가 나왔고, 검찰과 경찰 사이에 과거 부실수사의 책임을 두고 신경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지난 10월에는 윤씨의 기록에서 윤석열 검찰총장 이름이 나왔으나 조사가 진행되지 않았다는 보도가 나왔다. 과거사위는 위원들은 이 문제로 또다시 갈등을 드러냈다.

과거사위 외부 위원으로 활동하다 사임한 박준영 변호사는 김 전 차관 1심 결과가 나오자 라디오 인터뷰를 통해 “일부 혐의가 무죄가 되면 남은 부분은 공소시효가 단축된다”며 “공소시효가 끝났다는 사실을 피하기 위해서 너무나 폭넓게 약간 무리해서 기소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김 전 차관 측 변호사도 재판 뒤 “윤씨가 피해 여성을 감금하고 마약을 먹였다는 등 영화 ‘내부자들’처럼 상상력이 가미돼 과장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징역 12년을 구형했던 검찰은 1심 결과를 인정할 수 없다며 항소하겠다는 분위기다. 수사팀 관계자는 “검사와 스폰서 관계를 용인해 주는 판결”이라며 “과거 김형준 전 검사나 김광준 전 부장검사 재판 때 검사의 직무 관련성 법리가 만들어졌는데 관련 판례와 어긋난다”고 반발했다.

한국여성의전화도 논평을 통해 “엄연히 ‘사람’인 피해자가 존재하는 성폭력 사건을 ‘액수 불상’의 뇌물죄로 둔갑시켜 기소한 이번 김학의 사건과 윤중천 사건 모두 애초에 검찰 조직의 면피용 기소였다”며 “검찰이 깔아놓은 좁은 틀 안에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움직인 법원은 사실상 ‘판단’을 회피했다”고 비판했다.

김민상 기자 kim.minsang@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