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디즈니, 역시 ‘겨울왕국’이다. 21일 개봉한 디즈니 애니메이션 ‘겨울왕국 2’(감독 크리스 벅‧제니퍼 리)가 토요일인 23일 하루에만 관객 166만1965명을 동원하며 역대 일일 관객 수 2위를 기록했다.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기준이며 전국 2642개 스크린에서다. 계열사 마블의 히어로물 ‘어벤져스: 엔드게임’이 첫 주 토요일(4월 27일) 세운 역대 1위 기록(166만2469명, 2836개 스크린)을 바짝 뒤쫓았다.
21일 개봉, 나흘째 400만 관객 돌파 #'엔드게임' 이어 일일 최다 관객 수 #관련 상품 출시 1편보다 수십 배 규모 #독과점 논란 속 '렛 잇 고' 열풍 넘을까
개봉 나흘째 흥행 1위를 기록한 ‘겨울왕국 2’의 누적 관객 수는 24일 400만 명을 넘겼다. 5년 전 디즈니 최초 1000만 영화에 등극한 1편을 열흘 이상 앞지른 속도다. 이런 열기는 일찌감치 예견됐다. 전편의 ‘렛 잇 고(Let It Go)’를 잇는 이번 주제가 ‘숨겨진 세상(Into the Unknown)’ 뮤직비디오는 공개 24시간 만에 디즈니 공식 SNS(소셜미디어)를 통틀어 누적 519만 조회 수를 기록했다. 기대감을 반영하듯 사전 예매량은 역대 애니메이션 최고치인 112만장에 달했다.
'뽀로로'는 없고 '겨울왕국'엔 있는 것
전편에서 아렌델 왕국의 왕위를 계승한 여왕 엘사(이디나 멘젤, 이하 목소리 출연)와 동생 안나(크리스틴 벨) 공주는, 이제 모든 것을 얼어붙게 하는 엘사의 마법 능력에 얽힌 진실을 찾아 또 다시 모험을 떠난다.
CGV 예매 관객 분석에 따르면 60만 명이 본 개봉 첫날 관객 성비는 여성이 더 많은 69.63%. 연령별로 20대가 37.15%로 가장 많고 30대(25.14%), 40대(23.98%) 순서였다. 혼자(16.33%)보단 둘(51.37%), 셋(32.29%)이서 보러온 다인 관객이 대다수였다. 친구끼리 보거나, 아이를 동반한 가족 관객이 많았다.
극장을 찾은 아이 중엔 1편 개봉 땐 극장에서 못 본 저연령층도 적지 않다. 다섯 살 딸을 둔 이다정(36‧서울 마포구)씨는 “키즈 유튜버들이 ‘겨울왕국’ 코스튬, 장난감 놀이를 많이 하고 키즈카페나 어린이집 친구들이 엘사 옷을 많이 입다 보니 아이가 서너 살 때부터 자연히 관심을 갖더라”면서 “수동적인 백설공주‧신데렐라 등과 달리 자기 일을 스스로 해결해나가는 자매 공주가 주인공이어서 딸아이가 ‘안나 할래, 엘사 할래’ 하며 롤모델이 둘 생겼다”고 했다.
여섯 살 딸에게 “(여자 캐릭터) 루피가 맨날 음식 만들고 수동적이어서 ‘뽀로로’는 잘 보여주지 않는다”는 서희(35‧서울 동작구)씨는 “‘겨울왕국’은 왕자 없이 자매 둘이 전면에 나선 능동적인 여성 캐릭터를 보여준다”는 점을 높이 샀다.
여왕 엘사, 드레스 벗고 바지 입었다
시대가 요구하는 여성상의 반영일까. 1편이 마법이 갈라놓은 공주 자매의 성장담이라면, 이번 2편은 왕국의 역사까지 거슬러올라가는 대서사시의 성격이 강해졌다. 특히 화제가 된 것은 전편엔 없었던 바지 복장이다. 이번에 안나와 엘사는 드레스뿐 아니라 바지를 입는다. 엘사가 드레스를 벗어 던지고 맨발로, 포효하는 파도 앞에 맞설 땐 레깅스를 닮은 하의가 눈에 띈다. 앞자락이 트인 긴 망토 같은 상의 아래 바지를 입기도 한다. 디즈니 공주로선 꽤나 파격이다. 역대 디즈니 공주 애니메이션 중 바지를 입은 건 ‘알라딘’(1992)의 자스민이 최초고, 이후 전장에 나선 중국 공주 ‘뮬란’(1998)이 유일했다.
“모든 공주는 영화가 만들어진 시대와 영화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을 대표한다. 이 두 여성은 자랑스럽게도 왕국의 무게를 어깨에 짊어지고 있고 그렇게 하기에 딱 맞는 옷을 입은 것이다.” 1편에 이어 공동 각본‧연출을 맡은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CCO(최고 창의력 책임자) 제니퍼 리 감독은 지난 7일 미국 매체 ‘LA타임즈’에 이렇게 밝혔다.
"엘사 옷 사주세요" 완구·패션 시장 요동
이런 바지 복장은 관련 제품에도 반영됐다. ‘겨울왕국’은 1편 때 극장 흥행 매출이 전 세계 12억 달러에 이르며 관련 상품 인기도 치솟았다. 10만 원짜리 한정판 엘사 인형이 품절 뒤 100만 원대까지 가격이 오르는 품귀현상도 벌어졌다.
이에 힘입어 이번엔 출시 규모가 더 커졌다. 디즈니 코리아에 따르면 ‘겨울왕국 2’ 개봉에 맞춰 70여개 브랜드에서 출시되는 상품만 1000여 종이다.
이랜드리테일의 경우 5년 전 ‘겨울왕국’ 1편 때 아동복 브랜드 한곳에서 판매가 기준 총 5억원 내외 규모로 관련 상품을 출시했지만, 이번엔 총 61종, 70억원대로 규모를 키웠다. 이랜드 계열사 SPAO가 50억원 규모로 관련 패션 상품을 출시한 것을 더하면 도합 120억원 규모로 1편 때보다 24배나 증가했다.
이랜드리테일 마케팅 관계자는 “1편 때는 이렇게 대박날 줄 몰랐지만, 이번엔 5년간 누적된 기대감과 함께 ‘겨울왕국’ 트렌드가 생겼다”면서 “최근 할로윈 시즌에 이어 어린이집‧유치원에서 2편 단체관람할 때 엘사 코스튬을 입으려는 아이들이 생기면서 맘카페‧블로그‧인스타그램 등에 구매처 문의가 많이 올라온다. 개봉 전주 아동복 브랜드에서 출시한 2편 코스튬이 개봉 당일엔 이미 총 수량의 66%가 팔려나갔다”고 했다.
최고 인기 '겨울왕국 2' 굿즈는?
영화 캐릭터 상품 전문매장인 CGV 씨네샵은 지난 20일부터 해즈브로 완구, 레고 등 ‘겨울왕국 2’ 관련 제품 35종을 선보여 사흘여 매출이 전주 동기간 대비 1790% 급상승했다. 씨네샵에 따르면 최고 인기 품목은 노래하는 엘사 인형, 그 뒤를 캐릭터별 소형 봉제 인형, 아동용 손목시계 등이 따랐다. 멀티플렉스 극장들도 저마다 작품 속 이미지를 새긴 영화표나 캐릭터 굿즈가 포함된 팝콘 콤보 등으로 표심 잡기에 나섰다. 웅장한 비주얼‧사운드를 즐길 수 있는 특수관 상영도 다채롭다. CJ CGV는 개봉 이틀째인 22일 “실관람객 사이에서 벌써부터 4DX 싱어롱(영화 속 노래를 따라 부르는 것) 상영 요청이 나온다”고 전했다.
지난 7일 서울 삼청동과 이태원에 문을 연 영화 속 마법 눈사람 올라프 테마 체험 공간엔 개봉 전 이미 2만 명 가까이 다녀갔다. ‘겨울왕국’ 테마로 꾸민 카페에서 인증샷을 찍거나 관련 제품을 구매하는 형태다. 19일 삼청동 체험 공간에서 만난 김지수(26‧울산)‧김민수(23)씨 자매는 “1편은 유행한다기에 봤다가 캐릭터가 개성 있고 삽입곡이 좋아 3D‧4D‧일반상영 등 대여섯 번 재관람했다”면서 “2편도 챙겨볼 것”이라 기대했다.
화려하지만, '렛 잇 고'의 신선함 부족
다만, 평가는 1편보다 저조하다. 영화 비평 사이트 로튼토마토 평단 신선도는 77%로 전편의 90%보다 크게 떨어졌다. 화려한 화면과 음악은 즐길 만하지만, 안전한 흥행전략 이상의 새로움이 없어서다. 영화음악도 ‘렛 잇 고’ 신드롬의 주역 크리스틴 앤더슨-로페즈와 로버트 로페즈 부부가 새롭게 작사‧작곡한 7곡 중 엘사의 주제가 ‘숨겨진 세상’과 안나의 연인 크리스토프(조나단 그로프)의 1980년대 파워발라드풍 솔로곡 ‘로스트 인 우즈(Lost In Woods)’가 시선을 끌지만 ‘렛 잇 고’만큼 압도적인 감흥을 주진 못한다.
영국 주간지 ‘옵저버’는 “(1편 같은) 신선함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다”고 혹평했다. 미국 뉴욕타임즈는 “결코 놀라움을 주진 않지만, 그림 같은 상상력의 폭발이 계속해서 몰입하게 만든다”면서 “엘사와 안나는 이번에도 운명이 닥쳐오길 기다리고만 있지는 않는다”고 주체적인 캐릭터를 지지했다. 2편 엔딩크레디트가 끝난 뒤엔 쿠키영상이 수록돼있다.
디즈니 6번째 1000만 할까…독과점 논란도
올해 역대 외화 1위를 갈아치운 ‘엔드게임’, 그리고 ‘알라딘’에 이어 이번에도 1000만 흥행에 성공할 경우 디즈니는 총 여섯 편의 1000만영화를 갖게 된다. ‘겨울왕국’ 1편과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를 포함해서다. 그러나 첫 주말 2500개 넘는 스크린, 좌석 수론 전국 극장가의 70% 이상을 점령해 흥행 속도전을 벌이는 대형 배급사의 반복된 전략에는 우려도 나온다.
22일 반독과점영화인대책위원회는 긴급기자회견을 열고 “‘겨울왕국 2’가 좋은 영화지만, 단기간 내 스크린을 독과점해 다른 영화에 피해주면서 그렇게 빨리 매출을 올려야겠느냐”며 “스크린 독과점은 특정 영화, 배급사 문제가 아니고 구조적인 문제다. 그 구조를 타파하기 위해 제도적 개정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