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항공부터 SK바이오팜까지…코스피 상장 '쪽집게 컨설팅'

중앙일보

입력

“마이 베이비(My baby)”

김주용 한국거래소 증권시장마케팅팀장 #기업공개 제안하고 우량자본 유치 도와 #"성장성 큰 기업 수혈로 시장도 키워야"

유가증권시장(코스피)에 상장한 회사를 ‘내 자식’처럼 여기는 사람. 될성 부른 기업을 어르고 달래 주식 시장으로 모시는 김주용(51) 한국거래소 증권시장마케팅팀장이다. 1995년 한국거래소에 입사해 공시팀장, 상장심사팀장, 인덱스개발팀장 등을 거친 그가 이끄는 증권시장마케팅팀은 기업공개(IPO)를 고민하는 국내ㆍ외 알짜기업 및 해외 투자자금을 코스피로 유치하는 일을 한다.

상장을 할만한 역량을 갖췄음에도 상장을 생각치도 못하는 기업에 찾아가 IPO를 제안하거나, 상장을 마친 기업엔 글로벌 투자금 마케팅활동을 통해 우량 자본을 유치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도 한다. 어찌 보면 그의 업무는 이른바 ‘쪽집게 강사’를 닮았다.

“상장 유치 대상 기업을 발굴해 부족한 부분을 컨설팅해준 뒤, 해당 기업이 상장에 성공해 계속 성장하는 모습을 보노라면 내 손으로 키운 아이를 바라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이 세계에선 내 손으로 직접 상장 유치한 기업을 ‘마이 베이비’라고 부르는데 정말 딱 맞는 말이에요.”

김주용 한국거래소 증권시장마케팅팀장이 인터뷰 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정용환 기자

김주용 한국거래소 증권시장마케팅팀장이 인터뷰 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정용환 기자

열 손가락 깨물어 아프지 않은 손가락은 없겠지만 특별히 기억에 남는 아이(상장사)는 있을까.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던 그가 어렵게 꺼낸 이름은 제주항공이었다. 극적으로 상장에 성공했던 데다, 이후 저비용항공(LCC) 업계 전반의 상장의 물꼬를 튼 사례여서다.

그가 제주항공 측을 만나 상장의 청사진을 그린 건 201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상황은 좋지 않았다. 2014년만 해도 제주항공은 자본잠식 상태였다. 이듬해 8월 자본잠식을 해소한 뒤 한국거래소에 상장예비심사를 청구했고, 그해 11월 국내 LCC 가운데 최초로 코스피 입성에 성공했다.

“겨우 자본잠식에서 벗어났던 데다 해외 노선은 괌하고 사이판 2개밖에 없을만큼 작은 회사였어요. 대규모 장기 투자를 통해 한 단계 점프업(Jump up)할 계기가 필요했죠. 상황은 여의치 않았지만 경영진이 강한 의지를 가지고 적기에 IPO에 성공하면서 아시아나항공 시가총액을 넘어서는 회사로 성장했습니다.”

제주항공의 성공적 데뷔는 업계 전반의 성장세를 견인하는 나비효과를 일으켰다. 김 팀장은 “제주항공이 상장 이후 성공가도를 달리자 경쟁 LCC들이 그동안 주저하던 상장을 적극 고려하기 시작했다”며 “진에어와 티웨이, 에어부산 등을 찾아가 제주항공의 사례를 이야기하며 설득해 이들을 모두 코스피로 끌어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주용 한국거래소 증권시장마케팅팀장이 인터뷰하고 있다. 정용환 기자

김주용 한국거래소 증권시장마케팅팀장이 인터뷰하고 있다. 정용환 기자

그는 “IPO에도 트렌드(유행)가 있다”고 했다. 예컨대, 2015년부터 최근까지는 LCC가 상장의 주요한 한 축을 차지했다. 앞으로 상장의 흐름을 이끌 업종으로 그는 바이오테크를 꼽았다. 그 대표주자가 지난달 25일 한국거래소에 코스피 상장 예비심사 신청서를 제출한 SK바이오팜이다.

김 팀장은 “SK바이오팜은 아직 실적이 잡히지 않은 회사다보니 회사 실무자들이 ‘괜히 코스피에서 불이익을 받지는 않을까’라는 막연한 우려했다”며 “우리 팀이 두번이나 찾아가 상장특례요건 등을 설명하며 설득해 실무자들이 마음놓고 상장 준비에 착수할 수 있게 도왔다”고 말했다. 자기자본 2000억원ㆍ시가총액 6000억원만 넘으면 실적과 상관없이 상장을 할 수 있는 특례요건을 만든 것이 SK바이오팜처럼 성장성 큰 연구개발(R&D) 기업을 우대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득한 것이다.

SK바이오팜은 지난 22일 뇌전증 신약 ‘엑스코프리’의 미국 식품의약처(FDA) 판매 승인을 취득했다. 신약후보물질의 발굴부터 임상 개발, 판매 허가 신청 및 승인까지 전 과정을 독자적으로 진행해 FDA 판매 승인을 따낸 것은 국내 바이오테크 기업 가운데 SK바이오팜이 최초다. 글로벌 뇌전증 치료제 시장 규모는 2018년 기준 약 61억 달러(7조1826억원)에 달한다. 증권업계는 상장을 앞둔 SK바이오팜의 시가총액을 5조원대로 전망한다.

김 팀장은 “SK바이오팜은 순수 R&D 바이오테크 회사로서는 최초로 코스피 상장에 도전하는 회사인 만큼 기대가 크다”며 “고령화 속도가 빨라지고 국민의 소득수준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SK바이오팜처럼 성장성이 큰 바이오테크 기업을 코스피 시장에 지속적으로 수혈해 시장 전체의 성장성을 끌어올리는 게 우리 임무”라고 말했다.

김주용 한국거래소 증권시장마케팅팀장이 인터뷰 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정용환 기자

김주용 한국거래소 증권시장마케팅팀장이 인터뷰 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정용환 기자

‘자본주의의 꽃’으로 불리는 주식시장에서 기업들이 자금을 공급받아 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김 팀장은 오늘도 ‘기업 발굴’에 매진하고 있다. 상장을 추진해도 될만큼 이른바 ‘물 오른’ 기업들에게 그는 하고싶은 이야기가 있다고 했다.

“장기 투자가 꼭 필요한 시점에 IPO를 하려고 시장에 나왔다가 시장의 밸류에이션(가격)이 마음에 안 든다고 상장을 접는 기업들이 꽤 많아요. 그런 기업들이 나중에 다시 시장에 나온다고 해서 더 좋은 가격을 받을 수 있는 건 아닙니다. 투자의 때를 놓쳐버렸거나 시장의 트렌드가 바뀌어서 처음보다 훨씬 떨어지는 평가를 받기도 합니다. 내 자식이 원하는 대학 못 갔다고 재수, 삼수 시킨다고 결과가 꼭 좋은 것만은 아니죠. ‘상장에도 때가 있다’고 꼭 이야기해주고 싶습니다.”

정용환 기자 jeong.yonghwa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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