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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발등의 불 끈 52시간제, 여전히 한숨 쉬는 중소기업

중앙일보

입력

#. 대구에서 주유소 사업을 하는 사장 A씨는 얼마 전부터 ‘회사를 둘로 쪼개야 할지’가 고민이다. 주유소 40여곳을 한 회사로 묶어 운영하는 A씨는 주유소 한 곳당 3~5명의 직원을 두고 있다. 내년부터 50~299인 회사에도 주 52시간 근무제가 적용된다고 하자, 회사를 둘로 쪼개면 적용 대상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게 그의 계산이다. 당장 직원을 줄일 수도 없는 그가 법 적용이 한달여 앞으로 다가오자 떠올린 궁여지책이다.

 고용노동부는 2020년 1월 1일부터 직원 수 50명 이상 300명 미만 기업에 적용될 주 52시간제에 대해 “중소기업에 충분한 계도기간을 부여하고, 특별연장근로 인가를 최대한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지난 13일 오후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중소기업중앙회장, 한국여성경제인협회장, 소상공인연합회장 등 14개 중소기업 단체장들이 주 52시간제 입법 보완에 대한 입장 발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3일 오후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중소기업중앙회장, 한국여성경제인협회장, 소상공인연합회장 등 14개 중소기업 단체장들이 주 52시간제 입법 보완에 대한 입장 발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코앞으로 다가온 주 52시간제 확대 적용에 앞서 기업의 발등에 떨어진 불은 당장 끈 듯 보였지만, 중소기업은 여전히 수심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다. 중소기업계는 이번 정부 대책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애초에 ‘계도기간’을 요구하지 않았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계도기간은 주 52시간제를 위반한 것이 적발되더라도 처벌을 유예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기업은 이를 조금 다르게 해석한다. 중소기업 사장인 김문식 중소기업중앙회 노동인력위원장은 “아무리 계도기간이라도 근로자의 신고가 있으면 어떡할 거냐”고 반문했다.

300인 이상 기업에 대한 주52시간제 계도기간이 끝난 지난 4월 한 기업 사무실 모니터에 PC오프제 안내문이 떠있다. [뉴스1]

300인 이상 기업에 대한 주52시간제 계도기간이 끝난 지난 4월 한 기업 사무실 모니터에 PC오프제 안내문이 떠있다. [뉴스1]

 당초 중소기업계는 주 52시간제의 시행을 아예 미루는 ‘1년 이상 유예’를 요구해 왔다. 그러나 정부가 부여하겠다는 계도기간마저도 아직은 명확하게 발표되지 않았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0일 정부의 주 52시간 보완책과 관련해 “다음 달 10일쯤 최종 입장을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이재갑 고용부 장관은 “300인 이상 기업에도 최장 9개월의 계도기간을 부여했으니, 그보다는 긴 기간이라고 보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재난 등의 상황에만 허용하던 특별연장근로를 확대하겠다는 대책도 여전히 기업 활동의 불확실성을 해소하기에 부족하다. 김재령 중기중앙회 인력정책실 과장은 “시행규칙에 따른 특별연장근로 인가 확대는 시간이 지나면 흐지부지될 수 있어 기업이 불안한 것”이라고 말했다.

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국노동조합총연맹에서 유정엽 한국노총 정책실장이 정부의 중소기업 주 52시간제 보완 대책에 관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국노동조합총연맹에서 유정엽 한국노총 정책실장이 정부의 중소기업 주 52시간제 보완 대책에 관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노동계도 정부 대책을 비판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은 “노동시간 단축 정책과 관련해 스스로 무능함을 인정했다”며 “강력한 정책 추진의 의지보다는 ‘보완’이라는 이름으로 기업에 애매모호한 신호를 보내왔으니 누가 최선을 다하겠냐”고 지적했다.

 정부가 이러한 ‘보완책’을 내놓은 것은 사실 지지부진한 국회 때문이다. 자유한국당은 선택근로제와 특별연장근로의 확대를 더불어민주당이 수용해야만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의 탄력근로제 시행 단위 6개월 연장안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들을 바라보는 노·사·정 누구도 웃을 수 없는 씁쓸한 표정이다. 여전히 열쇠는 국회가 쥐고 있다.

임성빈 산업1팀 기자 im.soungb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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