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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찬의 인프라] 비정규 폭증 오류라는 정부, 올해만 기간제 63만명 늘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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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8월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에서 비정규직이 지난해에 비해 86만7000명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비정규직 증가로는 역대 최대다. 이를 두고 정부는 '그만큼 늘어났을 리 없다. 정규직인 응답자가 심리적 변화를 일으켜 비정규직으로 오인하고 답했을 것'이라는 취지로 해명해 논란이 일었다.

통계청 매월 고용동향 10개월 치 분석

그러나 학계에서는 "현 정부 들어 재정을 풀어 만든 노인 임시직 등이 불어나는 추세를 보면 통계 수치가 틀리지 않는다"는 쪽에 무게를 싣는다.

부가조사에서 드러난 비정규직 증가 규모는 1년 치다. 지난해 8월 부가조사 결과와 비교한 수치다. 그렇다면 올해 들어서는 얼마나 늘어났을까. 이를 짚어보면 정부의 해명이 맞는지, 학계의 설명이 정확한지 알 수 있다. 통계청이 매달 발표하는 올해 1월부터 10월까지 고용동향의 원자료를 분석하면 가능하다. 추경호 의원(자유한국당)실과 유경준 한국기술교육대 교수(전 통계청장) , 중앙일보가 같이 분석했다.

2017년 기간제 줄었는데, 올들어 기간제 근로자 폭증세

올해 10월까지 10개월 치 고용동향 조사 자료 중 대표적인 비정규직으로 꼽히는 기간제의 증가 규모를 따져봤다. 근로계약 기간을 정하지 않은 비기간제에도 임시직이나 일용직 같은 비정규직이 있지만 분석기법을 단순화해 증가추세를 살필 필요가 있어 제외했다.

그 결과 올해 10월 말 현재 임금 근로자 가운데 기간제 근로자는 월평균 337만5119명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62만7121명이나 늘었다.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 결과 지난해 9월 이후 87만명의 비정규직이 늘어났다는 게 엉뚱한 통계가 아니었다. 오히려 올해 들어 고용시장에서 비정규직이 급증하고 있는 추세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올해 10개월 동안 비정규 기간제 63만 늘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올해 10개월 동안 비정규 기간제 63만 늘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2017년의 경우 전년 같은 기간(1~10월까지) 대비 기간제 근로자는 6만6350명 줄었었다. 지난해에는 2017년에 비해 1만8835명 늘어나는 데 그쳤다. 이를 감안하면 올해 비정규직 증가 규모는 폭증에 가깝다. 유경준 교수는 "현 정부의 일자리 정책이 숨 고르기(2018년)를 끝내고 시장에 본격적인 영향을 미치자 엉뚱하게 비정규직 급증 사태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추경호 의원실은 "정부의 일자리 정책에 분명한 오류가 있다는 의미"라며 "지금이라도 정책의 잘잘못과 원인을 따져 수정할 건 수정하고, 폐기할 건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

그나마 일하는 계약 기간도 짧아…근로소득 감소하는 원인으로 작용

기간제 근로자들의 근로계약기간도 짧아지는 추세다. 근로계약기간 1년 미만인 기간제 근로자는 48만5163명이나 늘었다. 전체 기간제 근로자 증가 인원의 77.4%다. 1개월 미만의 단기 근로 계약을 한 기간제 근로자가 무려 60.7%(12만3954명) 불어났다. 근로계약기간 6개월~1년 미만인 기간제 근로자도 31만8512명이나 증가했다. 고용안정성이 떨어지는 등 비정규직의 일자리 질이 크게 나빠졌다는 의미다. 지난 21일 통계청이 발표한 소득분배 지표 상 근로자가 일해서 버는 돈, 즉 근로소득이 확 줄어든 이유가 짐작되는 대목이다.

전체 기간제 증가인원 10명 중 8명이 1년 미만 계약자.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전체 기간제 증가인원 10명 중 8명이 1년 미만 계약자.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연령별로는 60대에서 기간제 근로자가 12만2644명 늘어 28.4%의 증가율을 보였다. 70대 이상 연령층은 가장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 무려 33.2%(11만2388명)였다. 60대 이상을 통틀어 계산하면 증가율이 28.3%(23만5032명)나 됐다. 2017년 5.4%, 지난해 8.4% 늘어났던 것에 비하면 5배의 급증세다. 전체 기간제 근로자 가운데 노인이 차지하는 비중도 31.6%로 지난해 30%를 넘어선 뒤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60대 이상 노령층에서 23만5000명이나 늘어.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60대 이상 노령층에서 23만5000명이나 늘어.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업종별로는 임금이 비교적 적고 단기 일자리가 많은 보건사회복지서비스업에서 12만6417명(26.1%) 늘어났다. 비정규직 제로 정책에 따라 정규직화 수혜 직종인 공공행정 분야에서도 17.4% 증가했다. 최저임금의 영향을 고스란히 떠안는 도소매업, 건설업, 숙박음식업, 시설관리업 같은 업종에서 비정규직이 많이 늘었다. 국제·외국기관(-646명)과 광업(-261명)에서만 기간제 근로자가 줄었을 뿐 모든 업종에서 골고루 가파른 증가세를 보였다.

"비정규직은 나쁜 일자리?…정책 패러다임 바꿔야"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 교수는 "40~50대는 구조조정을 당하고, 경기조차 안 좋은 데다 산업의 디지털화 진행(4차 산업혁명)과 인구구조의 변화가 맞물려 기간제 근로자는 앞으로도 계속 늘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따라서 비정규직 제로화처럼 비정규직을 무조건 나쁜 것으로 보는 정책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며 "예컨대 50대 연령대의 기간제 근로자 가운데는 반복계약을 하는 경우도 많은데 이걸 무조건 나쁜 일자리로 보는 것은 일자리 정책의 오류를 낳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권 교수는 "다만 60대 이상 비정규직 일자리의 경우 정부가 돈을 풀어서 만든 게 많은데, 이런 노동시장 정책은 지양해야 한다"고 말했다. "예산 낭비와 같은 사중효과와 노동시장을 왜곡할 수 있어서"라고 했다.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wol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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