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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문화·관광 메카로…잠실 ‘하얀 코끼리’ 오명 벗는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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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2호 24면

[스포츠 오디세이] 리모델링하는 잠실올림픽주경기장

잠실올림픽주경기장은 7만석에서 6만석으로 좌석이 줄고 관람객 동선도 간결해진다.

잠실올림픽주경기장은 7만석에서 6만석으로 좌석이 줄고 관람객 동선도 간결해진다.

서울 잠실이 천지개벽을 한다. 서울시는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와 송파구 잠실올림픽주경기장 일대 166만㎡ (약 50만평)를 동남권 국제교류복합지구로 개발한다. 삼성동 옛 한전 본사를 사들여 신사옥(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을 짓는 현대자동차그룹이 내는 1조7500억원의 공공기여금이 종자돈으로 쓰인다. 이 초대형 프로젝트의 중심이자 랜드마크가 되는 곳이 31년 전 88 서울 올림픽이 열렸던 잠실올림픽주경기장이다. 낙후된 스포츠 시설이 도시를 바꾸는 상징으로 거듭난다.

주변 166만㎡ 녹지공원 연계 개발 #2024년 완공, 서울 새 랜드마크로 #막대한 ‘세금 먹는 흉물’ 벗어나 #한강을 품은 도심 허파로 재탄생 #올림픽 열려도 주경기장으로 써 #공공성과 함께 수익성 확보 관건

1925년 지어진 동대문운동장을 부수고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를 만든 게 11년 전인 2008년이다. 역사적 기념물을 ‘용감하게’ 부수고 새 것을 만드는 일에 대한 ‘반성적 성찰’이 잠실올림픽주경기장을 살려냈다.

서울시, 국제교류복합지구로 지정

서울시는 지난해 5월 잠실올림픽주경기장 리모델링을 위한 국제 설계공모를 했다. 김창환 서울시 동남권사업과장은 “잠실주경기장의 장소성·역사성·상징성 보존을 리모델링의 기준으로 삼았다”고 말했다. 나우동인건축사사무소가 낸 ‘공명하는 대지, 잠실’이 당선작으로 뽑혔다. 이 작품의 특징은 잠실올림픽주경기장을 존중하고, 일대를 녹지 공원화함으로써 시민과 친근하게 어울리는 서울의 새 랜드마크로 삼겠다는 것이다.

잠실올림픽주경기장은 건축계 레전드인 고(故) 김수근 선생이 조선백자의 담백함과 유려한 선을 모티브로 설계했다. 부드러운 곡선으로 이어지는 지붕을 80개의 콘크리트 기둥(리브)이 받치고 있다. 86 아시안게임, 88 서울 올림픽 개·폐막식과 축구·육상 등을 치르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올림픽이 끝난 뒤에는 축구 A매치와 연세대-고려대 정기전 등이 열렸다. 그러나 지나치게 큰 덩치(7만석)와 90% 콘크리트로 이뤄진 육중함, 주차장 외 편의 시설이 없는 황량함 등으로 인해 시민에게 잊힌 상태로 늙어가고 있었다. 지금은 프로축구 2부리그 소속 서울 이랜드의 홈 구장으로 쓰이고 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이 열렸던 경기장 전경.

1988년 서울올림픽이 열렸던 경기장 전경.

잠실올림픽주경기장 리모델링 설계에 공동 참여한 삼우종합건축사사무소 정모 소장을 만나 설계의 철학을 들었다. 정 소장은 “가장 큰 화두는 106층 GBC∼코엑스∼서울의료원∼탄천∼한강으로 이어지는 흐름에서 잠실올림픽주경기장이 어떤 변화의 핵심 역할을 해야 하느냐였다”고 말했다.

잠실올림픽주경기장 주위에 수익을 위한 상업시설과 건물이 들어서게 되면 단지 내 밀도가 높아진다. 주경기장이 존중받는 게 아니라 가려지고, 공간이 답답해질 수 있다. 그래서 단지 전체를 공원화하는 방향을 설정했다. 주경기장을 중심으로 자연스러운 녹색 구릉이 사방으로 퍼져가게끔 하고, 구릉 아래로 갤러리·오피스 등 상업시설을 배치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주경기장을 빙 둘러서 폭 30m의 움푹 파인 해자를 만들어 주경기장을 돋보이게 하는 것이다. 이 공간은 야구장 쪽으로 이동하는 통로가 되고, 좌우에 상점과 스포츠 전문시설, 휴게 공간 등이 들어서게 된다.

경기장을 밝고 단순한 디자인으로 바꾸는 것도 설계의 핵심이다. 어둡고 육중한 콘크리트 데크를 걷어내고, 지붕도 반투명 폴리카보네이트 재질로 바꿔 채광을 좋게 한다. 경기장 입구에서 관람석으로 들어가는 공간(콩코스)은 목재 천장과 조경을 가미해 경기가 없는 날에도 시민들이 산책하고 담소하는 공간으로 꾸민다. 관람석을 7만석에서 6만석으로 줄이되, 국제올림픽위원회(IOC) 기준에 맞춰 다음에 올림픽이 열려도 주경기장으로 쓸 수 있게 한다. 야구장은 주경기장 왼쪽, 한강변 쪽으로 옮겨 3만5000석 규모로 새로 짓는다.

주경기장이 한강과 탄천을 품는 것도 큰 변화다. 그동안 한강은 올림픽대로, 탄천은 탄천로에 막혀 시민들이 자유롭게 오가기 어려웠다. 해당 구간의 올림픽대로를 지하화해서 주경기장에서 한강까지 걸어갈 수 있도록 하고, 탄천에도 보행교를 놓아 삼성동∼주경기장을 오갈 수 있게 했다. 주경기장 리모델링이 2024년에 끝나면 이곳은 서울시민 모두가 언제나 즐겁게 이용할 수 있는 도심의 허파 같은 파크가 될 것이다.

“세계인이 찾는 명소로 가꿔나가야”

잠실올림픽주경기장 리모델링 조감도. 주경기장이 돋보이게 주위에 해자를 팠고, 올림픽대로를 지하화 해 주경기장에서 한강까지 걸어갈 수 있다. [사진 서울시]

잠실올림픽주경기장 리모델링 조감도. 주경기장이 돋보이게 주위에 해자를 팠고, 올림픽대로를 지하화 해 주경기장에서 한강까지 걸어갈 수 있다. [사진 서울시]

문제는 공공성과 함께 수익성을 어떻게 확보하느냐다. 서울시는 수익성 확대 방안에 대한 연구 용역을 줬다. 용역을 수주한 김기한 서울대 체육교육과 교수는 “주경기장 일대를 공원화하는 콘셉트는 매우 좋다. 여기에 1988년 서울 올림픽 주경기장이었고, 2032년을 목표로 하는 서울-평양 공동올림픽의 주경기장이 될 이곳을 세계적인 올림픽 레거시(유산)로 만드는 작업이 필요하다. 호주 시드니의 오페라하우스처럼 세계인이 찾는 명소로 가꿔나가야 한다. 국제적인 명성을 가진 엔터테이너들이 일생에 꼭 한번 공연하고 싶은 곳으로 만들면 1년에 10여 차례 콘서트만 해도 150억원 정도를 벌 수 있다”고 말했다.

올림픽·월드컵 같은 대규모 스포츠 이벤트가 끝난 뒤 흉물처럼 방치되고 관리에 막대한 세금이 들어가는 경기장을 ‘하얀 코끼리(White Elephant)’라고 부른다. 88 올림픽이 끝난 뒤 30년 넘는 세월을 잠자고 있던 잠실의 하얀 코끼리가 깨어나고 있다.

오우근 지음아키씬건축사사무소 대표는 “동대문운동장도 건축가 승효상 선생이 원형을 활용하고 주변을 공원화하는 아이디어를 냈지만 채택되지 않았다. 잠실올림픽주경기장의 공원화를 계기로 1960년에 지어진 효창운동장을 비롯한 유서 깊은 스포츠 건축물이 지역 주민의 사랑을 받는 명소로 거듭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스포츠 시설은 지역 주민 위로하는 ‘곰인형’ 역할 해야

황영찬

황영찬

“지역의 스포츠 시설은 곰인형 같은 존재가 돼야 합니다. 아이가 곰인형을 안고 편안하게 잠들듯 학업과 생업에 지친 주민들이 스포츠 시설에 와서 땀 흘리고 이웃과 얘기도 나누면서 편안함을 느낄 수 있어야겠죠.”

황영찬(사진) 서울시설공단 문화체육본부장은 SBS 스포츠 PD 출신이다. 그는 스포츠 중계와 프로그램 제작으로 쌓은 노하우를 서울의 주요 스포츠 시설에 접목하고 있다. 서울시설공단은 서울월드컵경기장, 장충체육관, 고척 돔구장 등을 운영하고 있다. 황 본부장은 만성 적자에 시달리던 이들을 흑자로 돌려놓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황 본부장은 “잠실올림픽주경기장 리모델링은 서울의 얼굴을 바꿀 수 있는 프로젝트입니다.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지혜를 모아야 합니다. 모든 토의 과정은 시민에게 투명하게 공개하는 게 좋겠죠”라고 말했다.

그는 2015년 11월 고척돔 개장 경기 중계를 나갔다가 깜짝 놀랐다고 한다. 중계 카메라 놓을 자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관중석 의자도 30여석이 나란히 붙어 있어 관중이 화장실 가는 데 큰 불편을 겪었다. 그는 “이젠 모든 게 고쳐졌지만 애초에 각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했다면 시행착오와 비용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며 “잠실올림픽주경기장은 대형 콘서트도 열릴 테니 관중의 안전한 동선, 화장실 개수까지 꼼꼼하게 점검해야 합니다”고 덧붙였다.

황 본부장은 스포츠 시설이 ‘고유한 경험’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야구장이라면 지하철 역을 나오면서부터 보는 것(사진·포스터), 듣는 것(응원가·구호), 사는 것(기념품·응원도구) 등이 어우러져 방문객의 오감(五感)을 만족시켜 줘야 한다는 뜻이다. 시민운동장을 리모델링한 대구축구전용구장(애칭 대팍)은 ‘고유한 경험’을 주는 명소가 됐다. 관중석 바닥을 알루미늄으로 만들어 발을 구르는 “쿵쿵 골” 응원은 소름이 돋게 한다. 황 본부장은 “대팍 주변 경기가 살아나고 있어요. 잘 지은 스포츠 시설이 갖는 위력을 제대로 보여주는 거죠”라고 말했다.

정영재 스포츠전문기자/중앙콘텐트랩 jerr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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