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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기자 프리즘] 밀리의 서재 혹은 김영하의 실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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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2호 35면

신준봉 전문기자 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신준봉 전문기자 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밀리의 서재’의 최근 행보가 관심을 끈다. 2017년 서비스를 시작해 국내 독서 시장에 구독 경제 모델을 확산시킨 스타트업 말이다. 매달 일정액을 지불하면 보유한 수만 권의 전자책을 홍보 문구대로 ‘무제한’ 읽게 해준다. 전자책을 낱권으로 파는 기존 사업 방식과 비교하면 정작 저자의 인세 수입을 정확하게 정산해주지 못한다는 비난 섞인 의심에도 불구하고 사업은 순항하는 듯하다.

전자책 회사, 스타 작가 합세 #출판가에 활력 불어넣을지 관심

이번에는 종이책을 넘본다. 물론 본격적인 영역 확장은 아닐 거다. 전자책 구독 회원 늘리기 방편으로 보인다. 하지만 착점(着點)이 흥미롭다. 스마트폰으로 밀리의 서재 앱을 구동하면 이런 문구가 뜬다. ‘최고의 작가들, 그리고 밀리 오리지널 종이책 한정판/ 신간 출시 라인업’. 라인업의 작가들은 대표적인 국내 작가들이다. 내년 2월 15일 김영하, 4월 15일 김훈, 공지영은 ‘Coming Soon’이라고 안내한다. 이 작가들의 신작 종이책을 오직 밀리의 서재에서만 먼저 볼 수 있다는 뜻이다. 대신 월 구독료를 전자책만 볼 때보다 더 내야 한다. 어쩐지 글로벌 영상 공룡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영화을 연상시킨다. 밀리의 서재는 지난해에만 100억원의 투자를 유치했다고 한다. 출판계 바깥의 뭉칫돈들이 뭔가 돈 냄새를 맡은 걸까?

이런 마케팅의 출판사 버전. 밀리 오리지널 서비스에 참가하는 한 출판사 관계자는 “나쁠 게 없는 제안이었다”고 했다. 밀리의 서재는 출판사에서 2만 권을 사전에 납품받아 이를 오리지널 회원들에게 공급한다. 두 달 후에 시중에 깔리는 정식 종이책과는 디자인·도서번호(ISBN)가 다른 책들이다. 출판사로서는 적지 않은 물량(2만 권)의 판매 대금을 미리 받아 자금 사정의 숨통을 틔울 수 있다는 점이 무엇보다 매력적일 게다. 앞서 출판사 관계자는 “입소문 효과도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번에는 작가 버전. 김영하의 경우를 살피고 싶다. 그가 조만간 출판사를 차릴 것 같기 때문이다. 그는 문학동네(문동) 출판사 전속 작가였다. 어떤 책이든 문동에서만 내왔다. 최근 그 계약 기간이 끝난 것으로 보인다. 대신 문동과 계약을 맺고 임프린트 출판사를 차린다. 그럴 것 같다는 게 출판가의 정설처럼 돼 있다. 문동이 디자인·마케팅 등 책 출간을 돕고 저자이자 출판사 대표인 김영하는 인세는 물론 임프린트 출판사 수익을 문동과 나눠 갖는 방식이다. 김영하 출판사의 첫 책이 밀리의 서재 종이책이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이런 김영하의 움직임을 보는 출판계의 시각은 엇갈린다. 먼저 지지파. 김영하는 국내 독서 시장 최고의 인플루언서(Influencer)다. 소설에서 시작해 방송으로 힘을 키운 그가 추천한 책은 그야말로 불티나게 팔린다는 얘기가 돌 정도다. 가뜩이나 어려운 출판 시장, 김영하 같은 인플루언서가 많으면 좋은 거 아닌가. 이런 주장이다.

걱정파는 아무리 김영하라 할지라도 출판은 낯선 분야, 생각만큼 쉽지 않을 거라고 내다본다. 자신들의 입지 위축을 우려하는 출판사 편집자도 있다. 스타 작가가 유명세를 내세워 편집 영역에 발 들이는 일에 대한 경계 반응이다.

밀리의 서재에 김영하 등이 가세한 출판 실험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까. 출판업도 혁신은 필요할 테니 마냥 마다할 일은 아니다. 다만 자본과 물량을 앞세운 공세가 먹혀 출판 다양성, 그에 따른 독서 다양성을 해치는 상황을 초래하지 않았으면 한다. 독서야말로 효율이나 속도 같은 자본의 논리로부터 자유로운 차분한 활동이어야 하지 않을까. 한 출판사 대표는 이런 말을 했다. “이제는 방송 같은 데서 화제가 되지 않으면 어떻게 해도 책 팔기 어렵다.” 스타 마케팅에 목매야 하는 우리 출판 현실이 딱하다.

신준봉 전문기자/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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