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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들이 기다린다' 에보라에서 만난 5000개 해골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권지애의 리스본 골목여행(2)

대항해시대 찬란한 부귀영화를 누렸던 포르투갈, 특히 수도 리스본은 화려한 과거의 향기와 현재의 아름다운 격동이 끊임없이 물결치는 곳이다. 와인과 에그타르트, 해산물 그리고 가성비 좋은 물가만으로 평가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리스본과 근교 소도시에 펼쳐진 역사의 흔적들은 여행의 가치를 높여 준다. 과거 향기로 가득한, 프라이빗한 리스본 골목 속으로 함께 거닐어 보자.<편집자>

에보라 도시 전망. 1986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에보라 구도심(역사지구)은 수도 리스본에서 남동쪽으로 차로 2시간 거리, 성곽으로 둘러싸인 요새와도 같다. [사진 권지애]

에보라 도시 전망. 1986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에보라 구도심(역사지구)은 수도 리스본에서 남동쪽으로 차로 2시간 거리, 성곽으로 둘러싸인 요새와도 같다. [사진 권지애]

시차 적응은 기대조차 할 수 없던 포르투갈 3일 차. 새벽 4시부터 시작된 긴 하루의 여정은 에보라(Evora)로 가기 위한 준비로 분주한 순간의 연속이었다. 수도 리스본에서 남동쪽으로 차로 2시간 거리, 성곽으로 둘러싸인 요새와도 같으며 1986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에보라 구도심(역사지구) 전체를 하루 종일 거닐겠다고 마음먹기 전까지 사실, 몇 가지 사소한 고민이 뒤따랐다.

알아듣지도 읽지도 못하는 포르투갈 언어의 장벽을 넘지 못한 채 흥미를 못 느끼거나, 사진 보는 게 나을 뻔 했다 후회하거나, 다른 소도시가 더 좋으면 어쩌나 조바심내거나…이런 고민들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는 코르크 나무들이 끝도 없이 이어진 길을 따라 조우하게 된, 목을 뒤로 젖힌 채 올려다 본 6km 둘레의 성벽 입구에 도착했을 때 깨달았다.

해골을 뒤로 하고 찾아간 곳은 에보라 구도심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로마 신전이다. 이 신전의 가치는 보여지는 규모가 아닌 수십 세기를 짊어지고 온 보이지 않은 역사적 시간의 깊이다.

해골을 뒤로 하고 찾아간 곳은 에보라 구도심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로마 신전이다. 이 신전의 가치는 보여지는 규모가 아닌 수십 세기를 짊어지고 온 보이지 않은 역사적 시간의 깊이다.

로마 시대의 흔적들이 흩어져 있는 이 숭고한 도시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5천구의 해골과 뼈라고 한다면 지레 무서운 선입견을 만드는 걸까. 성곽 안으로 들어가 망설임 없이 찾아간 뼈의 예배당(Capela dos Ossos)은 성 프란시스코 성당을 통해 들어갈 수 있었는데 좁다란 창문 사이로 희미하게 흘러 들어오는 햇살로 인해 더욱 어둡고 스산하게 느껴진다. 작은 크기의 두개골과 뼈들은 바닥을 제외한 천장과 벽은 물론 8개의 기둥 모두를 빼곡하게 덮고 있는데 이들은 16세기 교회의 무덤에서 나온 것으로 수도사들이 직접 예배당 안에 붙였다고 한다.

쉽게 접할 수 없는 난생처음 보는 광경이기에 몸이 살짝 위축되었지만 삶의 겸손함을 죽음을 통해 깨닫게 하고자 했던, 삶과 죽음은 동일하다는 그 시대 선인들의 가르침을 새겨 놓은 문구 ‘NOS OSSOS QVE AQVI ESTAMOS PELOS VOSSOS ESPERAMOS’(직역하자면 ‘여기에 있는 뼈들은 당신을 기다린다’)-에 생경하지만 왠지 모르게 공감되는 깊은 울림이 그대로 전해 졌다. 이름이 뼈의 성당이다 보니 모두가 해골과 뼈에만 집중하고 있지만 르네상스와 바로크 스타일의 동상과 그림 등을 감상할 수 있는 위층 전시실, 놓쳐서는 안될 볼거리들로 가득하다.

해골 성당. 이름이 뼈의 성당이다 보니 모두가 해골과 뼈에만 집중하고 있지만 르네상스와 바로크 스타일의 동상과 그림 등을 감상할 수 있는 위층 전시실, 놓쳐서는 안될 볼거리들로 가득하다.

해골 성당. 이름이 뼈의 성당이다 보니 모두가 해골과 뼈에만 집중하고 있지만 르네상스와 바로크 스타일의 동상과 그림 등을 감상할 수 있는 위층 전시실, 놓쳐서는 안될 볼거리들로 가득하다.

해골을 뒤로 하고 찾아간 곳은 에보라 구도심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로마 신전이다. 얼마나 오래전인지 가늠조차 할 수 없는, AD 1세기경 기둥머리에 아칸서스 잎을 조각한 것이 특징인 코린트 양식으로 건축된 신전으로 남의 사진에서 본 것 보다 훨씬 작은 규모에 실망할 수도 있겠지만 이 신전의 가치는 보여지는 규모가 아닌 수십 세기를 짊어지고 온 보이지 않은 역사적 시간의 깊이다.

이베리아 반도에서 가장 잘 보존된 로마 신전 중 하나로 이쯤에서 드는 의문 한가지, 왜 포르투갈에 로마 신전이 있는 걸까? BC 2세기경 로마가 이베리아 반도로 세력을 확장하는데 에보라가 속해 있는 알렌테주 지역은 로마의 기본 곡물인 밀이 풍부하여 전략적으로 중요한 것은 물론 로마인들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중요한 도시가 되었고 로마가 3세기까지 이베리아 반도를 완전히 지배하였기에 신전을 비롯한 로마 목욕탕 등의 로마 문화를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신으로서의 아우구스투스를 숭배하던 로마 신전은 화려한 시대를 보낸 이후 처형장으로, 그리고 도살장으로 운명을 달리하며 현재는 14개의 기둥만 남아 있지만 전 세계 관광객을 에보라로 오게 만드는 역사적 일등공신이다. 하지만 로마 신전을 아직도 다이애나 신전으로 잘못 알려 진 것이 안타깝다는 현지 가이드의 격양된 어조를 조금이나마 낮춰 주고픈 마음에 지면을 빌어 잘못된 부분, 지적해 본다.

로마 신전 앞에서 모퉁이만 돌면 만나게 되는 에보라 대성당.

로마 신전 앞에서 모퉁이만 돌면 만나게 되는 에보라 대성당.

1165년 에보라가 무어인으로부터 탈환된 이후 최초로 세워진 성당이다. 포르투갈의 가장 큰 성당으로 임신한 성모 마리아를 만날 수 있는 이 성당 역시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1165년 에보라가 무어인으로부터 탈환된 이후 최초로 세워진 성당이다. 포르투갈의 가장 큰 성당으로 임신한 성모 마리아를 만날 수 있는 이 성당 역시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로마 신전 앞에서 모퉁이만 돌면 만나게 되는 에보라 대성당은 1165년 에보라가 무어인(711년부터 이베리아 반도를 정복한 아랍계 이슬람교도의 명칭)으로부터 탈환된 이후 최초로 세워진 성당이다.

포르투갈의 가장 큰 성당으로 임신한 성모 마리아를 만날 수 있는 이 성당 역시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나의 흥미가 극에 달했던 부분은 각기 다른 세기에 각기 다른 건축 양식으로 만들어졌다는 것. 1184~1204년 사이에 처음 만들어진 후 1280~1340년 사이에 초기 고딕 양식으로 확장 재건축되었고, 16세기 초 마누엘 양식의 예배당, 18세기 초 바로크 양식의 주 예배당이 추가되며 세기에 따라 달라지는 양식은 물론 서로 다른 시간의 색이 베어있는 역사의 벽돌들이 현생의 모든 이들에게 무언의 오라를 전해주고 있다.

전사의 이름을 딴 지랄두 광장.

전사의 이름을 딴 지랄두 광장.

지랄두 광장. 페인트가 아닌 검은 돌과 흰 돌로 만든 횡단보도를 보고 짧은 탄성이 흘러나왔다.

지랄두 광장. 페인트가 아닌 검은 돌과 흰 돌로 만든 횡단보도를 보고 짧은 탄성이 흘러나왔다.

전사의 이름을 딴 것으로 한 번 들으면 잊혀 지지 않을 지랄두 광장 안으로 비가 아닌 햇살이 드리우니 약속이나 한 것처럼 광장 안으로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고 0.65유로 에스프레소 한 잔을 마신 후 또 다른 역사의 흔적을 찾아 길을 걷다 발견한 풍경에 잠시 발걸음을 멈추었다.

페인트가 아닌 검은 돌과 흰 돌로 만든 횡단보도를 보고 짧은 탄성이 흘러나왔다. 에보라가 품은 역사의 의미와 깊이를 얼마나 진중하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그들만의 방식으로 표현한 횡단보도에 작은 존경심을 표해본다.

콘텐트 크리에이터·여행작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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