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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미세먼지는 한국 탓"…중국의 아전인수

중앙일보

입력

베이징 천안문 광장 앞에서 한 시민이 마스크를 쓰고 있다. 천권필 기자

베이징 천안문 광장 앞에서 한 시민이 마스크를 쓰고 있다. 천권필 기자

미세먼지 문제에 민감한 중국이 다른 나라의 비판에 대응하는 전략을 두고 아전인수(我田引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객관적 연구 결과를 두고 중국 측에 유리하게 해석하는 태도를 중국 언론 매체 및 연구자들이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한·중·일 공동연구 결과에 "왜 중국 탓 하나" #"인도가 더 심하다"며 제3국에 화살 돌리기도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의 20일 보도가 대표적이다. 글로벌타임스는 이날 한국 환경부 산하 국립환경과학원의 보고서를 거론하며 "중국은 한국으로부터 스모그 발생의 주요 원인 국가라는 비난을 받아왔지만, 전날 공개된 한·중·일 첫 공동연구 결과에서 한국의 스모그는 사실상 '메이드 인 코리아'인 것으로 밝혀졌다"며 "한국이 오랫동안 해오던 '비난 게임'을 끝낼 수 있게 됐다"고 전했다.

"한국 미세먼지는 한국 탓"

글로벌타임스가 지목한 보고서는 같은 날 발간된 '동북아 장거리 이동 대기오염물질 국제 공동연구(LTP)' 요약 보고서다. 미세먼지 관련 한·중·일 3개국의 첫 공동연구 결과라는 의미가 커서 한국에서도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에서 발생하는 초미세먼지(PM-2.5) 중 51%는 국내 영향에 따른 것이고, 32%는 중국에서 비롯됐다. 중국 정부도 한국 미세먼지의 약 3분의 1은 중국 탓이라고 인정한 셈이었다.

그러나 글로벌타임스는 한국의 초미세먼지 발생에 한국 내 영향이 더 크다는 데 초점을 맞췄다. 같은 연구결과를 두고 중국 탓이 아니라고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한 것이다.

황사가 불어온 지난 18일 오후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하늘이 뿌옇다. [연합뉴스]

황사가 불어온 지난 18일 오후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하늘이 뿌옇다. [연합뉴스]

중국과학원 대기물리연구소의 왕겅천(王庚辰) 연구원은 글로벌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조사 결과는 그동안 한국의 (초미세먼지와 관련된) 잘못된 보도를 강력히 반박한다"며 "한국 내에서 초미세먼지가 발생하는 것을 두고 중국의 빠른 발전과 일부 (중국) 지역의 심각한 오염을 이유로 들며 중국 탓을 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주장했다.

중국사회과학원의 장위안쑨(张元勋) 박사도 "스모그는 국경을 초월하며 서로를 비난하기보다는 협력을 요구하는 지역적인 문제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글로벌타임스는 "중국은 미국과 함께 인공 비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국가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고 전했다.

중국이 이같은 태도를 보인 건 처음이 아니다. 지난 1월 중국 생태환경부는 "다른 사람이 자기한테 영향을 준다고 맹목적으로 탓하기만 해서는 미세먼지를 줄일 기회를 놓칠 것"이라며 미세먼지 관련 해결책은 한국이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 미세먼지는 한국 탓'이라는 일관된 태도다.

지난 15일 인도 델리의 붉은요새가 미세먼지에 가려져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15일 인도 델리의 붉은요새가 미세먼지에 가려져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우리보다 인도가 더 나빠"

중국 미세먼지에 대한 다른 나라의 비판에 애꿎은 제3국으로 거론하는 전략도 중국이 미세먼지 비판 대응법 중 하나다. 이때 주로 등장하는 게 인도의 대기오염이다.

글로벌타임스 20일자 역시 "인도 전역의 대기오염이 위험한 수준까지 올라가며 인도에선 이미 심각한 공중보건의 위기를 맞고 있다"며 "유독한 스모그가 도시를 삼키면 부유한 델리 주민들은 산소 바(bar)를 방문한다"고 썼다. 이는 지난 3일(현지시간) 인도 뉴델리의 초미세먼지 농도가 한때 1033㎍/㎥을 넘어서며 세계보건기구(WHO) 안전기준(25㎍/㎥)을 40배 이상 초과한 일을 가리킨 것이다. 글로벌타임스는 "(인도의) 산소 바는 15분당 500루피(약 8000원)에 신선한 공기를 제공하는 비즈니스로 성업 중이다"라고 비꼬았다.

인도 뉴델리에서 한 고객이 '산소 바(bar)'를 방문해 깨끗한 공기로 숨을 쉬고 있다. 대기오염이 심각한 인도 대도시에서는 시간당 500루피(약 8000원)를 받고 공기를 파는 업소가 생겨나고 있다. [EPA=연합뉴스]

인도 뉴델리에서 한 고객이 '산소 바(bar)'를 방문해 깨끗한 공기로 숨을 쉬고 있다. 대기오염이 심각한 인도 대도시에서는 시간당 500루피(약 8000원)를 받고 공기를 파는 업소가 생겨나고 있다. [EPA=연합뉴스]

중국은 인도에 대해 '중국에게서 배워라'는 태도까지 취하고 있다. 글로벌타임스는 별도 기사를 통해 중국 베이징의 대기오염 수준이 꾸준히 개선되고 있다고 주장하며 "견디기 어려운 수준의 대기오염을 겪는 상황에서 인도 네티즌들과 미디어들은 왜 인도는 중국을 배울 수 없는지, 왜 중국과 같은 (대기오염 개선) 성취를 이룰 수 없는지 궁금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글로벌타임스는 "(인도의) 농촌과 도시의 서로 다른 선거구를 고려하면 도시 정치인들은 농부들에게 화전을 일구지 말라고 설득하기 어렵고, 농촌의 정치인들은 도시 주민들에게 자동차를 운행하지 말라고 권고하기 힘든 상황"이라며 "정책 입안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상당히 제한적"이라고 비판했다. 인도 미세먼지의 주요 원인으로 농촌의 화전과 도시의 노후화한 자동차 운행을 거론하며 인도의 정치가 이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고 정면으로 비판한 셈이다.

오원석 기자 oh.won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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