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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희옥의 한반도평화워치

연말 북한 도발 막으려면 평창올림픽 때 돌파력 살려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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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미·중 갈등 속 한반도 평화

지난 7월 31일 북한 원산 갈마 일대에서 장거리 방사포(다연장 로켓) 발사 장면을 지켜보는 김정은 국무위원장. [AP=연합뉴스]

지난 7월 31일 북한 원산 갈마 일대에서 장거리 방사포(다연장 로켓) 발사 장면을 지켜보는 김정은 국무위원장. [AP=연합뉴스]

1989년 12월 2일 지중해 몰타에서 미국과 소련은 탈냉전에 합의했다. 30년이 지난 지금 다시 신냉전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중국은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3분의 2로 따라붙었다. 이러한 추세라면 2030년대엔 미국 경제를 추월할 전망이다.

올 연말은 한반도에서 신냉전 가는 길목에 있어 #한국은 단순하게 북·미 요구 절충하는 게 아니라 #창의적인 방안을 가다듬어 제시할 필요 요구돼 #비핵화 목표 아래 한·중 공동보조도 절실한 시점

냉전 시기 미국은 압도적 군사적 우위를 이용해 소련을 관리할 수 있었다. 그러나 혁신 역량을 통해 최첨단 분야의 기술적 격차도 줄이면서 등장한 중국에 대해 미국이 위협을 느낄 소지는 충분하다. 이런 점에서 1단계 합의를 앞둔 미·중 무역 협상은 미·중 관계 정상화의 신호라기보다는 탈동조화의 서막이라고 볼 수 있다.

미국 공화당과 민주당은 각각 초매파와 매파가 되어 중국의 디지털 권위주의를 정조준하고 있다. 심지어 미 국무부 고위 관료가 공개적으로 “미국은 백인이 아닌 경쟁자와의 정말로 다른 문명과 이데올로기의 싸움”이라는 속내를 드러내기도 했다. 중국도 미·중 무역 마찰을 복기하는 과정에서 글로벌 가치사슬 체계의 공백을 최대한으로 메워 미국에 대한 기술 의존을 줄이는 한편 사회주의 체제를 지키는 정체성의 정치(politics of identity)와 애국주의를 강조하고 있다.

또 지난 5일 타결된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을 일대일로 이니셔티브(Belt and Road Initiative, BRI)와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등과 결합해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 조직 바깥에서 중국적 세계화 가능성을 탐색하고 있다. 이처럼 미국과 중국이 자국 진영을 강화하고 다른 진영을 약화하는 장기적인 전략 경쟁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양상은 한반도에서 한·미 동맹과 한·미·일 협력이라는 ‘작용’이 강해질수록 북·중 관계와 북·중·러 협력이라는 ‘반작용’도 거셀 것이다.

한국 제치고 밀착하는 북·중

이러한 환경을 대하는 남북한의 접근도 달라지고 있다. 북한은 김정은 위원장의 발언대로 “우리는 강대국의 짬에 끼어 있는 것이 아니라, 전략적 요충지에 올라타 있다”고 인식하면서 미·중을 상대로 북한식 강대국 외교를 추구하고 있다. 북한은 한국 역할론의 창의성이 떨어지는 것을 확인하자 곧바로 미국을 직접 상대하기 시작했으며, 오히려 북·중 간 전략적 불신을 극복하는 데 주력했다.

시진핑 주석도 ‘사회주의 북한’에 대한 지지로 화답했고, 올해 6월 북한을 방문해 “북한의 합리적 안전과 발전이 걸린 문제에 대해 힘이 닿는 한 돕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실제 쌀과 옥수수를 포함해 상당한 수준의 대북 인도적 지원을 통해 북한에 숨 쉴 공간을 만들어 주었다. 11월 6~9일 북한과 중국의 국경을 담당하는 랴오닝성 서기도 북한을 방문해 ‘인적 및 무역, 농업, 민생, 관광 협력’을 강화하기로 합의하는 등 국제 제재 속에서도 가능한 방안을 찾는 적극성을 보여주었다. 북·중 교역은 2019년 9월 말 기준으로 전년 대비 14.4% 증가했다. 북한은 중국이라는 안정적 뒷마당을 배경으로 삼아 북·미 대화에서 협상력을 비축할 수 있게 되었다.

한편 한국은 한·미 관계, 특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움직여 한반도 평화라는 기회의 창이 닫히지 않도록 총력을 기울여 왔다. 중국의 불만에도 불구하고 남·북·미 종전선언 등을 제의한 바 있고, 심지어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라면 미국의 무리한 요구를 선택적으로 수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중 관계는 전반적으로 소강상태를 벗어나지 못했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이후 중국이 취한 보복 조치가 여전히 작동하고 있고, 무엇보다 2017년 12월 문재인 대통령이 중국 방문 이후 시진핑 주석의 답방이 2년 가까이 이루어지지 않는 어색한 상황도 지속하고 있다. 양국의 전략적 협력 공간이 줄어든 배경에는 중국이 한반도 비핵화 문제에 대한 한국적 방안의 전략적 비전이 부족하고, 한반도 비핵화 접근법이 남·북·미 우선 전략이라는 지나친 단계론에 갇혀 있다는 실망감이 있으며, 중국의 전략적 관심에 대한 한국의 대응이 지나치게 미국을 의식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김정은, 경제 건설 돌파구 원해

이처럼 미·중 관계의 성격 변화와 한반도 문제의 교착 상태가 지속하는 상황에서 북한은 “상황 변화가 없으면 새로운 길을 갈 수 있다”고 겁박한 연말이 오고 있다. 지난 13일 북한은 국무위원회의 한밤 담화를 통해 “미국이 지금과 같은 정세 흐름을 바꾸지 않는다면, 머지않아 더 큰 위협에 직면하고 고달프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새로운 길이란 대륙간탄도미사일이나 인공위성, 잠수함 미사일 발사같이 미국에 위협이 되면서 북·중·러 협력을 통해 신냉전 구도에 올라타는 것일 수 있다. 이러한 국면에서 한·미의 대응도 분주해지고 있다. 우선 지난해 한·미 공중연합훈련을 유예한 데 이어 올해는 아예 연기하기로 한 것도 대화 모멘텀을 찾기 위해서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에게 “빨리 행동해야 하며 합의를 이뤄야 한다. 곧 보자!”라고 제의하면서 북·미 정상회담의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북한은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를 조건으로 걸었지만, 북·미 실무회담을 통해 북한의 요구를 관철할 수 있는 공간을 찾고자 할 것이다.

북한은 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 실험 중단, 북한 비핵화에 대한 초보적 조치, 미군 유해 송환에 상응하는 최소한의 조치로, ‘선의를 악으로 갚는 배신행위’로 간주한 한·미 연합군사훈련의 중단을 요구해 왔다. 문제는 북·미 실무대화가 제3차 북·미 정상회담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대북 제재의 단계적 해제 문제라는 난관을 돌파하는 과제가 남아있다.

북한의 목표는 안전 보장, 제도 보장 그 자체보다는 경제 건설의 돌파구를 찾아 업적 정당성(performance legitimacy)을 확보하고자 하는 실리적 동기가 더 크다. 향후 북한이 비핵화에 대한 추가 조치를 선제적으로 취하고 국제사회가 이에 상응하는 실질적인 제재 해제 조치 일부를 실행에 옮길 수 있는가 하는 점이 관건이다.

북·미 중재 넘어 창의적 방안 마련해야

2019년 연말은 한반도에서 신냉전으로 가는 길목에 있다. 신냉전이 오면 한반도 평화를 위한 한국 역할론도 힘을 잃게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한국도 단순하게 북·미의 요구를 절충하는 것을 넘어 창의적인 한국적 방안을 가다듬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평창 동계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한·미 연합군사훈련 중단을 제의했던 돌파력을 살릴 필요가 있다.

또 한반도 신냉전을 막기 위해서라도 한·미 협력은 물론이고 한·중 협력을 통해 한반도 평화 국면을 지속시킬 필요가 있다. 역설적이지만, 북한이 긴장을 높이면서도 ‘벼랑 끝 외교’를 선택하지 않았던 것도 중국이 다양한 정치적·경제적 지원을 통해 북한의 위기의식을 낮춰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중이 한반도 비핵화 목표를 견지하고, 북한의 위협 요인을 줄이며, 비핵화 궤도를 유지하도록 하는 공동보조와 역할 분담이 필요하다. 이것은 북한이 핵을 가진 경제 건설 전략을 방지하는 예방 효과도 있다. 물론 트럼프 행정부는 한반도 비핵화 과정에서 중국의 역할이 부각되며 자신의 성과가 드러나지 않는 것은 절대 원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한·미 동맹 환원론으로 신냉전의 그림자를 헤쳐 나가기에는 국제 질서 변환의 폭이 너무 크고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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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신냉전
미국과 러시아 간에 냉전이 탈냉전으로 되었다가 다시 옛날의 냉전과 같이 군사적 대립으로 치닫는 현상을 말한다. 영어로는 Cold War II, New Cold War 등으로 부른다. 시리아 내전, 남중국해 갈등, 한국의 사드 배치 등에서 신냉전 양상이 나타났다.

일대일로(一帶一路)
고대 동서양의 교통로인 실크로드를 다시 구축해, 중국과 주변 국가의 경제·무역 합작 확대의 길을 여는 대규모 프로젝트. 2013년 시진핑 주석의 제안으로 시작되었으며, 한국을 포함해 100여 개 국가와 국제기구가 참여하고 있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미국이 추진하는 미사일 방어체계의 핵심 요소 중 하나. 중·단거리 탄도미사일로부터 군 병력과 장비, 인구 밀집 지역, 핵심 시설을 방어하는 데 사용된다. 중국은 주한미군의 사드 배치에 반대해 한국에 대해 각종 경제 보복을 하고 있다.

이희옥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성균중국연구소장·리셋 코리아 외교안보분과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