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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소미아 파기, 미군 철수 부를 수도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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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마이클 그린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부소장

마이클 그린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부소장

청와대는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효력 정지가 한·일 관계에 국한된 사안이라고 단언했다. 국제법이나 외교상으로는 틀리지 않은 말이지만 지정학적 관점에선 완전히 잘못된 주장이다. 지소미아 파기는 한미동맹에 타격을 입히는 결정이며, 청와대는 그 심각성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에 만난 미국의 고위 관리들과 군 장성들, 싱크탱크 전문가 및 의원들은 이 사안에 대해 깊은 우려를 나타냈다. 예외가 없었다.

미국 전문가들 예외 없이 우려 #한국 정부는 심각성 모르는 듯

그들이 걱정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차후 북한 도발에 기민하게 대응하지 못할 위험이 있다는 점이다. 일본의 인공위성, 지상감시레이더, 조기경보기, 이지스함 등은 한국군이 갖춘 장비보다 우수한 성능으로 해저 탐지 및 미사일 발사 정보를 제공한다. 한·미·일 정보공유약정(TISA)은 미국을 통한 간접 공유 방식이므로 미국의 부담이 커질 뿐 아니라 정보 전달 속도도 느리다. 일본의 최첨단 장비는 탄도미사일을 거의 실시간으로 추적할 수 있다. 한·일 간의 즉각적인 정보공유 통로 차단은 미국의 안보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둘째는 한미동맹의 균열을 노리는 중국이 지소미아 파기를 전략상의 청신호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중국은 한미동맹의 필요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사드 배치에 경제 보복으로 대응하는 등 한미동맹을 줄곧 견제해 왔다. 한국이 미국 측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지소미아 파기를 결정하면 중국은 한·미·일 동맹 약화를 확신하고, 나아가 한미동맹 약화까지 예견할 것이다. 중국이 머지않아 한국에 남북통일에 대한 지지의 전제 조건으로 한미동맹 파기를 요구할 가능성도 있다.

그리고 지소미아 파기 결정이 불러올 최악의 후폭풍은 따로 있다. 다음 달 미국과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 특별협정(SMA)의 결론이 내려졌을 때 백악관의 대통령 집무실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생각해 보라. 미국이 요구하는 50억 달러에 못 미치는 액수로 합의에 이르렀을 가능성이 매우 크고, 그렇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분노를 표출할 것이다.

빅터 차 교수 집계에 따르면 트럼프가 1990년부터 지금까지 주한미군의 필요성에 이의를 제기한 횟수가 30회가 넘는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과의 평화조약 체결’이라는 성과를 얻으려 한다. SMA 협상에 대한 불만도 크다. 이런 상황은 주한미군 철수 선언 가능성으로 이어진다. 한미동맹 유지와 강화를 위해 노력해 온 전문가들이 상상하지도 못한 그림이 펼쳐질지도 모른다.

이 문제를 타개할 최선책은 한국 정부가 이른 시일 내에 지소미아에 대한 입장을 바꾸는 것이다. 아울러 한국이 자유롭고 개방된 아시아·태평양을 지향하며 한미동맹의 유지와 강화를 지지한다는 입장을 피력해야 한다.

한국이 한반도 밖의 공동의 이익과 가치를 지키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한국 정부가 증명해 보여야 할 때다. 사실 한국은 이를 위해 많은 공을 들여왔지만, 그 노력이 충분한 조명을 받지 못했고, 다른 아시아 동맹국들과의 협력이나 입장 조율도 부족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연설을 통해 한반도 분단 종료가 한미동맹의 종결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명시할 수도 있다. 한국의 이런 조치에 대해 중국이 불쾌감을 드러낼 수도 있겠지만, 중국과의 관계에 지나치게 골몰하다가 모든 전략적 선택권을 잃어버리고 동맹마저 깨트릴 위험을 자초해서는 안 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15년 전 노무현 정부에서 한미 자유무역 협상(FTA) 타결, 이라크 파병 등 한미동맹을 위한 여러 중책을 실행했던 일을 기억한다. 그래서 문 대통령 성향을 친북이나 반미로 의심하는 보수 평론가들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 문 대통령이 그들이 틀렸다는 증거를 다시 한번 보여주기 바란다.

마이클 그린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부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