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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징용 노동자상과 ‘일본인 모델’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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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김방현 기자 중앙일보 내셔널부장
김방현 대전총국장

김방현 대전총국장

올여름만큼 반일(反日) 감정이 고조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이순신 ‘배 12척’이 나오고 ‘죽창가’가 울려 퍼졌다. 당장 거북선이라도 만들어 일본으로 달려갈 기세였다. 이런 분위기 속에 대전에는 일제 징용 노동자상(像)이 세워졌다.

노동자상은 지난 8월 13일 평화나비대전행동(시민단체),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등이 대전시청 앞 보라매공원에 세웠다. 시민 성금 8000만원이 쓰였다. 갈비뼈가 드러날 정도로 삐쩍 마른 사람이 오른손에 괭이를 든 모습이다. 동상에는 “참혹했던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하여 (…) 대전시민의 뜻을 모아 이 비를 세웁니다”라고 새겨졌다.

하지만 동상은 ‘일본인 모델’ 논란에 휩싸였다. 1926년 일본 아사히카와 신문에 실린 사진 속 일본 노무자가 모델이라는 주장이 일각에서 나왔다. 노동자상 작가는 최근 명예훼손(허위사실)과 손해배상 소송으로 맞섰다. 특정인을 모델로 한 게 아니라는 것이다.

이 노동자상은 ‘불법’ 조형물이다. 도시공원에 조형물을 설치하려면 도시공원법 등에 따라 공공조형물 심의와 공원조성계획 변경 절차 등을 거쳐야 한다. 평화나비 대전행동은 동상 설치 이후에야 공공조형물 심의 신청서를 대전시에 제출했다. 이후 3개월이 지났지만 진전된 행정절차는 딱히 없다.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도 별로 없다. 관할 지자체는 "철거 대상이지만 두고 보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불법 징용 노동자상은 서울 용산역 등에도 있다. 노동자 상은 또 다른 토템(신성한 상징물)이 되는 분위기다.

반일은 물론 극일(克日)하자는 데 반대할 국민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반일을 위해 불법행위까지 용인하는 것은 곤란하다. 노동자상도 합법적인 절차와 고증, 공개 토론 과정을 거쳐 설치했더라면 모델 국적 논란으로 인한 소송 사태는 피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일본에 적개심을 갖고 있지만, 109년 전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원인도 제대로 아는 사람은 드물다. 반일에도 배움과 관심이 필요한 시점이다. 다행히 죽창가를 외치며 반일을 선동하던 사람들도 자취를 감췄다.

김방현 대전 총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