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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최후의 요새' 결국 뚫렸다···이공대, 성조기들고 SOS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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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홍콩 이공대 안에 잔류한 시위대가 20일 오전 미국 상원에서 ‘홍콩 인권·민주주의 법안’이 통과됐다는 소식을 들은 뒤 성조기를 내걸었다. [입장신문 캡처]

홍콩 이공대 안에 잔류한 시위대가 20일 오전 미국 상원에서 ‘홍콩 인권·민주주의 법안’이 통과됐다는 소식을 들은 뒤 성조기를 내걸었다. [입장신문 캡처]

무차별 진압에 나선 홍콩 경찰과 맞붙었던 시위대가 결국 궤멸 상태로 몰렸다. 시위대의 ‘최후의 요새’로 불린 홍콩 이공대에서는 20일까지 900여명이 이탈했다. 교내 잔류파는 50명 안팎으로 전해졌다. 고립된 시위대는 이날 미국 성조기를 내걸었다. 미국 상원에서 이날 ‘홍콩 인권·민주주의 법안’이 만장일치로 통과됐다는 소식을 듣고서다. 교내에는 흰색 페인트로 커다랗게 칠한 ‘SOS’ 구조 표시까지 등장했다. 경찰의 포위를 뚫지 못한 시위대가 탈출을 도와달라고 외부에 구조를 요청한 것이다. 이날 초·중·고 휴교령 해제에 맞춰 ‘아침 행동 2.0’으로 이름 붙인 ‘출근길 방해 운동’이 펼쳐졌지만, 대세를 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19일 밤 홍콩 이공대 교내에서 등장한 'SOS' 표시.[EPA=연합]

19일 밤 홍콩 이공대 교내에서 등장한 'SOS' 표시.[EPA=연합]

당국은 이미 장애물 철거 작업 

20일 오전 찾은 이공대 주위의 ‘경찰 장벽’은 틈이 없었다. 경계를 서는 폭동 진압 부대의 숫자는 전날 시야에 들어왔던 규모 보다 오히려 늘었다. 무장 경찰의 철제 차단막 뒤로 도로국 차량이 벽돌 등 장애물 치우기에 분주했다.
경찰은 하수구로 탈출하는 시위대까지 수색해 체포했다. 소방대 소속 잠수부가 동원돼 이공대 주변의 맨홀을 수색했다. 홍콩 민주파 정당인 열혈 공민의 부주석 앨빈 챙(鄭錦滿) 등 6명이 체포됐다고 현지 빈과일보가 보도했다.

20일 오후 홍콩 이공대학교에서 소방대원들이 시위 학생들이 탈출하기 위해 열어 놓은 하수도 입구를 살펴보고 있다.[뉴스1]

20일 오후 홍콩 이공대학교에서 소방대원들이 시위 학생들이 탈출하기 위해 열어 놓은 하수도 입구를 살펴보고 있다.[뉴스1]

넥타이 부대 지원 시위도 불발 

오후 1시 홍콩의 센트럴 페더가. 7일간 계속됐던 넥타이 부대의 ‘런치 위드 유(함께 점심을)’ 시위도 불발됐다. 시민 몇 명이 차량을 막으며 “5대 요구를 수용하라”를 외치자 곧바로 중무장한 경찰 특공대인 속룡대(速龍隊)가 나타났다. 태평양 건너에선 인권법안이 통과됐지만 홍콩에선 여전히 무장 경찰의 방패와 몽둥이가 더 위력적이었다.

이공대 시위 궤멸은 ‘초강경파’ 신임 경찰청장의 등장과 시점이 일치한다. 숫자 1 번호판을 단 공용차량을 타는 크리스 탕(鄧炳强) 신임 청장은 홍콩에서 ‘약꺼(一哥)’로 불린다. ‘일인자’, ‘큰 형님’이란 의미다. 새 수장은 3만1000명 홍콩 경찰의 강경 진압을 불사했다. 지난 18일 체포된 모든 시위대에 대해 석방을 허용하지 않고 전원 폭동 혐의로 기소하기로 했다. 도심 시위대에 무관용을 선언한 것이다.

경찰, ‘버스로 돌진’ 작전 불사 

진압 방식도 바뀌었다. 경찰 버스가 시위대를 향해 맹렬히 돌진하는 진압 작전까지 동원됐다. 달아나던 시위대가 버스에 깔리는 걸 불사했다. 이런 식으로 31명이 부상했다. 경찰 대변인은 기자회견에서 “빠른 운전이 불안전을 대표하지 않는다. 위급상황에서 선택한 전술”이라고 주장했다. 신임 청장의 등장과 함께 시위 진압에 섬광탄이 동원됐다.
‘앾꺼’는 시위 종식을 위한 4대 책략을 제시했다. 경찰의 인원과 장비 증강, 대테러 훈련 강화, 긴급대응부대 정규화, 사회 역량 강화다. 지난 6월 시작된 시위 사태에 대응하는 ‘타이드 라이더’ 작전을 이끌어 온 경험에서 나온 방안이다. 홍콩 시위대의 기세를 초반에 완전히 꺾어버리기 위해서였다.
홍콩 정부도 경찰을 지원했다. 존리(李家超) 보안국장은 20일 기자를 만나 “이공대 점거 사건 이후 경찰에 자수한 인원은 18세 이하가 대략 300명 가량이고, 18세 이상이 대략 500~600명, 모두 900명 정도”라며 “이공대 잔류자는 누구라도 빨리 경찰에 자수하라.상황은 영원히 계속될 수 없다”고경고했다.

이공대 잔류파에 대한 설득 작업도 이어졌다. 가톨릭 홍콩 교구의 요셉 하츠싱 주교가 이날 오후 미성년 중학생을 이끌고 학교를 빠져나갔다. 텅진광(滕錦光) 이공대 총장도 캠퍼스를 찾아 잔류 학생에 투항을 권고했다.

20일 오후 홍콩 이공대학교 앞 도로에서 관계자들이 시위 참여 학생들이 만들어 놓은 바리게이트를 정리하고 있다.[뉴스1]

20일 오후 홍콩 이공대학교 앞 도로에서 관계자들이 시위 참여 학생들이 만들어 놓은 바리게이트를 정리하고 있다.[뉴스1]

시위대가 무력화된 가운데 11·24 구의회 선거가 나흘 앞으로 다가오면서 민주파 인사들을 노린 폭행이 잇따랐다. 19일 밤 허쥔런(何俊仁) 민주당 전 주석이 귀갓길에 검은 옷차림의 괴한 3명에게 곤봉으로 머리와 등을 두드려 맞았다. 지난 16일 시위를 주도해 온 지미 샘 민간인권진선(민진) 대표의 망치 피습에 이은 테러다. 홍콩 명보는 올해 들어 지난 14일까지 폭행 67건 등 구의회 선거와 관련된 사건·사고가 총 202건 발생했다고 보도했다.
홍콩 구의회는 현재 간선제로 선출하는 행정장관의 선거위원 1200명 중 117명을 차지하고 있어 의미가 크다. 바나버스 펑(馮驊) 선관위장은 전날 기자회견에서 “사고로 1시간 30분 이상 투표소가 폐쇄된 선거구는 내달 1일 투표를 재개하겠다”며 예정대로 선거를 강행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20일 홍콩에서는 전날까지 보이지 않던 출마자의 유세 포스터가 곳곳에 걸리는 등 선거 국면으로 빠르게 변했다.
홍콩=신경진 특파원 shin.kyung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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