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조 2교대, 코레일·SR 통합…섣부른 합의서에 발목 잡힌 철도

중앙일보

입력 2019.11.19 05:00

업데이트 2019.11.19 05:28

철도노조가 4조 2교대 전면시행 등을 요구하며 20일 무기한 파업을 예고했다. [사진 철도노조]

철도노조가 4조 2교대 전면시행 등을 요구하며 20일 무기한 파업을 예고했다. [사진 철도노조]

 " 그 합의서만 아니었어도 노조에 이렇게 밀리지는 않았을 겁니다."

 20일 무기한 파업 돌입을 예고한 철도노조와 협상을 이어가고 있는 코레일의 고위 간부는 이렇게 말했다. 철도노조는 앞서 지난 15일부터 준법투쟁(태업)을 벌이고 있으며, 이로 인해 일반열차는 물론 KTX까지 운행을 차질을 빚어 승객들이 큰 불편을 겪고 있다.

[뉴스분석]
철도노조의 4조 2교대 내년 시행 요구
지난해 오영식 전 사장의 합의가 근거

"적자 공기업이 5000억 추가로 들어갈
합의 섣불리 해줘 발목 잡혔다" 비판

지난 대선 민주당과 노동계 협약도 논란
"정치적 협약과 합의가 철도 정책 왜곡"

 코레일 간부가 언급한 합의서는 바로 지난해 6월 오영식 당시 코레일 사장과 철도노조 간에 맺은 '교대근무체계 개편을 위한 합의서'이다. 당시 코레일 노사는 '시범운영을 2019년 12월 31일까지 시행하고 2020년 1월 1일부터 근무체계를 개편한다"고 합의했다.

 그러면서 '근무체계 개편은 4조 2교대를 기본으로 한다"고 했다. 현재 3조 2교대인 현장근무 체계를 당장 내년부터 4조 2교대로 바꾸겠다는 의미로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철도노조는 이를 근거로 내년 4조 2교대 시행을 위해 필요한 인력 4600여명을 추가 채용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임금인상, 생명안전업무 정규직화와 자회사 처우 개선, KTXㆍSRT 연내 통합 등 다른 요구조건보다 무게가 실려 있다.

 그런데 철도노조의 요구대로 4600여명을 충원하면 인건비 등 추가 경비만 연간 5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가뜩이나 경영상황이 어려운 코레일로서는 쉽사리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지난해 3월 전격적으로 해고자 복직에 합의한 오영식 전 코레일 사장과 강철 철도노조 위원장. [사진 코레일]

지난해 3월 전격적으로 해고자 복직에 합의한 오영식 전 코레일 사장과 강철 철도노조 위원장. [사진 코레일]

 게다가 대규모 인력 충원은 코레일이 자체적으로 할 권한도 없다. 상위기관인 국토교통부와 기획재정부 등의 승인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당시 오영식 전 사장은 노조와의 합의 사항에 대해 국토부와 사전 논의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코레일로서는 평상시라면 노조의 과도한 요구안을 일축했겠지만, 합의서가 발목을 잡고 있다. 대신 외부전문기관에 의뢰해서 나온 필요인력(1800여명)의 단계적 충원, 그리고 4조 2교대 전면시행 대신 현장 상황에 따른 3조 2교대 일부 유지 등의 협상안을 내놓고 노조와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유정훈 아주대 교수는 "인력 충원과 근무 체계는 기술발전, 산업구조 개편, 경영 상황 등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데 정치적으로만 섣불리 판단한 결과가 이런 후폭풍을 불러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실 철도가 협의서나 협약서 때문에 발목이 잡히는 건 이번만이 아니다. 지난 대선 당시 정치권이 노동계와 맺은 정책협약 역시 논란이다. 2017년 5월 1일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였던 문재인 대통령은 한국노총 김주영 위원장과 함께 '대선승리 노동존중 정책연대 협약서'에 서명했다.

 이 협약서에는 '재임기간 동안 정책협약 12대 과제를 이행한다'고 되어 있으며, '철도공사와 철도시설공단을 통합한다'는 내용이 12대 과제에 포함돼 있다.

 또 같은 날 더불어민주당과 철도노조가 맺은 정책협약서에는 '경쟁체제란 이름 아래 진행된 철도 민영화 정책을 반대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이를 종합하면 코레일과 SR(수서고속철도) 통합은 물론 건설을 담당하는 철도시설공단까지 합치겠다는 얘기가 된다.

 철도노조가 4대 요구 조건 중에 하나로 KTX·SRT 연내 통합을 주장하며, 정부에 약속 이행을 요구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과거 철도 운영과 건설을 모두 담당했던 철도청 시절로 돌아가는 셈이 된다. 또 DJ·노무현 대통령 시절 시작된 철도구조개혁을 원점으로 되돌리는 상황이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시곤 대한교통학회장(서울과학기술대 교수)은  "정치적 고려가 다분한 합의나 협약이 철도정책을 왜곡시키고 있다"며 "무엇보다 경영과 고객 서비스, 안전을 개선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정책이 추진되어야 한다"고 비판했다.

 강갑생 교통전문기자 kksk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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