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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유리장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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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김승현 기자 중앙일보 사회 디렉터
김승현 논설위원

김승현 논설위원

유리벽은 그 너머가 보여서 위험하다. 금세 도달한다는 확신이 죽음으로 이끌기도 한다. 국립생태원에 따르면 한국에서만 하루 약 2만 마리, 연간 800만 마리의 새들이 유리벽에 부딪혀 목숨을 잃는다. 소음을 막고, 채광을 좋게 하는 도심 속 유리벽 저편을 향해 전속력으로 날아가다 충돌하는 것이다. 환경부와 지방자치단체의 대책은 ‘5X10 규칙’이다. 새가 높이 5cm, 폭 10cm 이하 공간은 비행할 수 없는 곳으로 인식한다는 점을 이용해 유리벽에 그만큼의 공간이 안 보이도록 맹금류 그림 등을 붙여 효과를 보고 있다.

유리천장, 유리바닥에 노출된 사람들도 새들만큼이나 절박한 처지다. 유리천장(glass ceiling)은 1970년대 후반 미국 사회에서 여성 승진의 어려움을 비판하며 등장한 용어인데 한국에선 지금도 존재감을 내뿜는다. 세계여성이사협회(WCD)가 조사한 상장기업 여성 임원 비율은 한국이 2.3%(2019년 1분기 기준)로 프랑스(41.2%), 스웨덴(36.9%), 미국(23.4%)에 크게 뒤처진다. 평등의 가치를 신봉한 여성들은 유리장벽 바로 저편 남성 사회의 위선에 치를 떨고 있다.

유리바닥(glass floor)은 또 어떠한가. 특권층의 신분 추락 방지 장치가 최근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로 드러나면서 대학 입시 제도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 보이지 않는 장벽 위의 경쟁자를 상대하기 위해 학원가를 맴돌던 학생과 학부모는 배신감에 분노했다.

19일 문재인 대통령의 ‘각본 없는’ 국민과의 대화에 대해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뭔가 유리장벽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라고 취지를 설명했다. 진솔한 대화로 유리벽에 갇힌 듯한 국민의 숨통이 트이길 기대한다. 동시에 유리장벽은 가까이서 확인될수록 치명적이라는 사실에도 유념해주길 바란다.

김승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