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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바다에서 800년, 육지로 나온 고려 보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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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충남 태안에 자리한 국립태안해양유물전시관 1·2층에 걸쳐 실물 크기로 재현 전시된 고려시대 조운선 ‘마도 1호’. [사진 태안군]

충남 태안에 자리한 국립태안해양유물전시관 1·2층에 걸쳐 실물 크기로 재현 전시된 고려시대 조운선 ‘마도 1호’. [사진 태안군]

전시실에 들어서자 집채만한 선박이 뱃머리를 늠름하게 치켜든 채 관람객을 맞았다. 돛대까지 총 20m 높이를 수용하기 위해 전시장 1·2층을 텄다. 한쪽 벽면에선 풍랑이 몰아치는 서해 풍광이 그래픽 영상으로 재현되고 있었다. 금세라도 출항할 듯한 이 배는 지난 2010년 충남 태안군 마도 해역에서 발굴된 ‘마도 1호선’을 실물크기로 재현한 것이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가 2008~2010년 수중 발굴 후 약 4년 간 복원연구 끝에 2014년 11월 현재 모습으로 완성했다.

국립태안해양유물전시관 개관 #‘바닷속 경주’ 마도 해역에서 #10여년 전 13세기 난파선 발견 #고려청자와 밥솥·장기알도 나와

마도 1호선을 비롯, 서해 중부 해역에서 발굴된 수중문화재들을 보존·관리·활용하기 위한 국립태안해양유물전시관(이하 ‘태안전시관’)이 18일 문을 열었다. 태안 마도 해역은 2007년 고려청자 운반선인 태안선을 시작으로 침몰선 5척이 잇따라 발굴돼 ‘바다 속 경주’라고 불린다. 태안전시관은 인천·안산 해역 침몰선 3척까지 총 8척의 난파선과 유물 3만 여점을 관리하기 위해 2011년 착공해 지난해 말 완공했다.

이날 충남 태안 신진도에 위치한 태안전시관을 찾았을 때 총 4개 전시실 가운데 백미는 3실에 위치한 마도 1호 실물 모형이었다. 길이 10.8m, 너비 3.7m, 깊이 2.89m에 달하는 초마선급으로 곡물 1000석(51t)을 실을 수 있는 규모다. 오연주 학예연구사는 “선체 자체는 원형을 확인하기 어려웠지만 갯벌 등에 파묻혀 보존된 갑판 부재 및 당대 기록 등을 바탕으로 원형에 가깝게 재현했다”고 설명했다. 선형 및 형태 규명을 위한 3D 프린터 1/20 축소 모형 3척을 제작실험했다고 한다. 특히 이곳 태안전시관으로 옮겨오는 과정에서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가 위치한 목포로부터 약 보름에 걸쳐 실제 항해해 왔다고 한다.

배의 존재가 처음 알려진 것은 2007년 7월 마도 해역에 어부가 설치해둔 그물에 물고기와 함께 고려청자 26점이 걸려오면서다. 앞서 대섬 인근에서 주꾸미와 함께 딸려 올라온 고려청자로 인해 확인된 태안선에 이어 이 일대가 ‘난파선들의 공동묘지’임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난파선 5척 발굴 지점과 유물전시관.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난파선 5척 발굴 지점과 유물전시관.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마도 1호선은 절대연대가 확인된 최초이자 유일한 고려 해양문화유산이기도 하다. 이를 뒷받침한 게 수중에서 건져올린 목간(木簡) 및 죽찰(竹札)이다. 일종의 화물표라 할 목간과 죽찰이 69점이나 수습됐고 여기엔 붓글씨로 정묘, 무진 등의 간지와 날짜가 적혀 있었다. 이를 통해 확인한 바에 따르면 배는 1208년 전남 수령현(장흥), 죽산현(해남), 회진현(나주, 이상 현재지명) 등에서 거둔 곡물과 각종 화물을 개경으로 운반하던 중이었다. 지방에서 중앙으로 보내던 ‘세금’을 운반하던 이른바 조운선(漕運船)이다. 수신인도 당시 대장군, 별장 등 고위 관료로 명시돼 있었다.

전시 2호실에는 이 같은 고려인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일상 유물이 배치됐다. 세금으로 바치기 위해 운반되던 벼와 쌀, 콩, 조, 메밀 등의 곡물이 800년의 시간과 심해의 압력을 버티고 생생히 모습을 드러냈다. 청자 연꽃줄기무늬 매병과 죽찰, 두꺼비 모양 벼루 등 보물 3점이 은은한 조명 속에 빛났다. 거의 온전한 형태의 청자와 각종 자기가 6열6단짜리 집단장에 모여 있었다. 오 연구사는 “생산지에서 소비지(개경)로 배송하는 선박이라 동종 유물이 무더기째 나온 점을 강조하기 위한 배치”라고 소개했다.

태안 마도 해역 침몰선에서 나온 철제 솥과 뚜껑. 강혜란 기자

태안 마도 해역 침몰선에서 나온 철제 솥과 뚜껑. 강혜란 기자

특히 선원들의 선상 생활을 짐작해 볼 수 있는 소품들이 다채롭다. 철제 솥과 뚜껑, 청동 수저와 국자, 심지어 무료함을 달래기 위한 장기알도 발굴됐다. 발굴된 숟가락 숫자 등을 볼 때 선원은 11~14명으로 추정되며 총 20~30일 항해를 위한 물자가 실려있었다고 한다. 전시실 한쪽에선 태안선 발굴 때 나온 인골이 유리관 형태에 담겨 관람객을 맞았다. “화물칸에서 함께 발견된 걸로 보아 난파된 배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수장된 걸로 보인다”는 설명이 따랐다. 전시 유물은 총 2500점에 이른다.

마도 해역의 안흥량은 고려·조선시대 별칭이 난행량일 정도로 해난사고가 잦았다. 빠른 물살과 곳곳에 산재한 암초 때문이다. 특히 신진도의 동서를 통과하는 물길이 합쳐지는 ‘관장목’은 진도 울돌목, 강화 손돌목 그리고 황해도 인당수와 함께 우리나라 4대 험조처(險阻處)로 불린다. 실제로 이날 연구소 인솔로 안흥량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올라가자 아찔한 절벽 아래 삼킬 듯이 널뛰는 파도가 기세를 올리고 있었다.

수백년간 갯벌 속에 묻혀 있던 난파선과 유물이 외부로 노출된 계기는 지형의 변화 때문이다. 90년대 마도와 신진도가 육지와 연결되면서 시행된 제방공사로 인해 바다의 물길이 바뀌었고 이에 따른 해저 지형의 변화로 유물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진호신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관은 “태안이 서해안에서 제일 돌출된 곳이라 개경·한양을 향하는 연안선은 이곳을 통과해야만 했다”면서 “아직 발굴되지 않은 난파선과 유물이 산적할 것으로 기대되는 이유”라고 덧붙였다.

태안=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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