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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금리 떨어지고 집값 안정되면 전세의 존재감 점점 사라질 듯

중앙일보

입력

한국·볼리비아에서도 전세계약 비중 감소… 집값 상승은 전세 존속의 배경

볼리비아의 부동산 거래 사이트. / 사진:연합뉴스, 울트라까사

볼리비아의 부동산 거래 사이트. / 사진:연합뉴스, 울트라까사

서울 집값이 계속 오르고 대전의 집값 상승률은 하늘을 찌르고 있다. 내려가기만 하던 울산의 집값도 하락을 멈추었다. 오르기만 하는 서울 집값도 계속 오르기에는 부담스러워 보이나 향방을 말하기는 쉽지 않다. 오르는 시기가 있으면 내려가는 시기도 있는 게 이치다. 문제는 언제냐다. 서울 강남 집은 이미 평범한 월급쟁이는 소유할 수 없는 대상이 됐다. 전세라도 싸면 다행인데 새 집 전세는 엄두가 안 나고 녹물 나는 재건축 아파트 전세는 그나마 싸 보이나 들어가 살기가 불편하다. 어린 시절 전세를 보며 신기해했다. 외국인에게 전세제도를 설명해도 뭐 그런 제도가 있냐며 호기심 어리게 보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많은 돈을 집주인에게 맡겼다 다시 받는다는 게 월세에 익숙한 이들에겐 낯선 풍경으로 다가오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 고금리 시절 전세는 의미 있는 제도였다. 사금융으로 대출해주기도 했지만 은행에만 맡겨도 상당한 수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조원경의 알고 싶은 것들의 결말(2) 전세제도는 사라질까?

고금리 시절 전세는 의미 있는 제도

전세의 구조를 간단히 살펴보자. 주택 수요자가 집주인에게 무이자로 돈을 빌려주고 대신 그 집에 들어가 사는 것이 전세의 골자다. 주택을 담보로 돈을 받은 집주인은 계약기간 동안 그 돈을 이용해 수익금을 얻고 세입자는 주택을 사용하는 일종의 전당(典當) 개념이다.

일반적으로 전세가격은 금리와 반비례한다. 통상적으로 금리가 낮으면 전세가를 올려 받을 수밖에 없다. 집값 상승기에는 집주인이 집을 사고 받은 전세금으로 다른 집을 사기도 한다. 이는 일종의 무이자 담보대출이다. 전세제도는 이처럼 집값이 오를 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으나 내릴 때는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집값이 내리면 집주인은 임차인에게 본인 부동산의 효용을 매우 낮은 돈으로 제공하는 셈이라 손해라는 인식을 할 수가 있다. 집값이 내려가면 역전세 대란이 생겨 집주인이 전세금을 내줄 여력이 사라지고, 전세금으로 다른 곳에 투자까지 했다면 고통은 두배가 된다. 이 경우 전세금 관련 소송이 발생할 수 있어 사회 문제가 될 수 있다.

집값이 오르지 않자 전세금을 더 올려 받거나 월세로 전환하려던 것을 그리 오래지 않은 시기에 경험했다. 그래서 집 사지 않는 풍조가 만연해 전세가 상승만 이어지기도 했다. 심지어 언론에 전세가가 집값을 능가했다는 이야기도 들려오기도 했다. 몇년 전의 일이건만 오래된 이야기처럼 들려온다.

이런 측면에서 집값은 언젠가 반드시 오른다는 가정을 버리면 집을 파는 게 더 현명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집을 사고 파는 데는 거래비용이 많이 들고 전세가가 지속 상승한다면 집을 사는 게 차라리 번잡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 2015년 분양시장 활황은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감보다는 치솟는 전세금에 지친 세입자들이 대거 분양시장에 뛰어들었기 때문에 발생한 현상이다. 당시 몇년간 주택가격이 정체되거나 떨어졌는데 분양을 통한 내 집 마련 수요가 계속 늘어난 것은 높은 전세에 대한 대체의 개념이었다.

가구소득과 주거 형태의 연관성을 분석해보면 소득 수준이 높을수록 자가와 전세 비율이 높아진다. 소득이 적을수록 월세와 보증부 월세가 차지하는 비중이 커진다. 저소득층이라고 해서 월세를 선호하는 게 아니라 높은 전세금을 감당할 여건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서울 도심권의 집 주인은 현금 유동성이 좋은 월세를 선호하기에 누군가 집을 구하려면 울며 겨자 먹기로 월세를 택하거나 아니면 집을 살 수밖에 없다. 흔히 서울 주택시장은 월세 확대, 전세 감소, 주거 수준의 양극화로 요약된다. 오래된 주택이 늘어날수록 슬럼화하는 지역이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할 것이며, 이들 지역은 소득이 상대적으로 낮은 계층이 모여사는 공간이 된다. 저금리가 지속되면 번듯한 서울 도심은 월세 시장와 자가 중심 시장으로 양분화할 가능성이 커진다.

저소득층은 울며 겨자 먹기로 월세 택하기도

이에 따라 집값이 오르지 않아도 능력이 되는 자는 은행 빚을 내서라도 집을 사고자 하는 욕구가 늘어날 수 있다. 매달 집주인에게 꼬박꼬박 돈을 줘야 하는 월세를 제외하고는 다른 대안이 없다면 집을 사는 수요는 증가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월세에 익숙한 나라들과 달리 전세는 (금액이 크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큰 부담이 없다고 느끼는 반면 월세는 돈을 꼬박꼬박 집주인에게 뜯긴다는 생각이 강한 것 같다. 일본도 주택시장이 장기 침체 현상을 겪었지만 새 아파트 수요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기존 주택 거래는 감소하는 현상이 나타나지만, 새 아파트에 대한 수요는 늘어났다. 명목상 주택보급율은 계속 늘어나는 추세라 통계만 보면 주택이 남아돈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 그러나 편리한 생활을 담보하는 양질의 주택 공급은 여전히 부족하다. 앞으로도 새 아파트 수요가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다. 맨해턴의 원룸 아파트 가격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비싸다. 그 돈 주고 교외에서 큰 집 사고도 남을 것인데, 그게 정말 개인의 취향의 문제만은 아닌 것 같다. 공급이 제한된 인기 지역의 부동산이 갖는 특성을 무시할 수 없다. 집값이 비싼 곳의 월세가 비싼 것은 말할 필요도 없겠다. 월가의 젊은이들이 맨해턴에 살고 남는 게 얼마나 될지 생각해 본다.

파리의 집값이 계속 오르는 이유는 파리 밖에 나가지 않는 사람들 때문이라고 한다. 고층 건물의 제한과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역사로 파리는 주변에 집이 건축되어도 사람들이 심리상 파리 안에 살려고 하기에 집값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심지어 그곳에 계속 살았거나 살다가 다른 어디로 잠시 가서 산 경우에는 회귀하는 연어의 심리가 작용할 수 있는 게 부동산시장이다.

부동산이 일종의 신분을 나타내는 지위재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도 인기 지역의 높은 주거비를 설명하는 이유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 수준으로 산업생산지수가 복귀하지도 않은 영국의 경우 집값은 글로벌 금융위기 수준을 훨씬 상회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개발도상국에서 큰 돈을 번 부자들이 좀 더 안전한 선진국으로 자산을 보관하는 ‘에셋 파킹(asset parking)’ 현상 때문이다. 벤쿠버에서 중국인들의 부동산 사랑은 그들에게 특별한 세금을 매기게 했다. 캐나다의 외국인 부동산 취득세 인상은 그런 폐해로 생긴 제도이다. 중국 큰 손이 세계 부동산 가격을 올려놓았다는 것은 익히 아는 사실이다.

전세제도는 한국에만 있다?

결론적으로, 우리나라의 전세제도는 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를 바탕으로 임차인에게는 낮은 임차비용의 주거서비스를 제공하고 집 주인에게는 소액투자를 통해 자본이익을 확보할 수 있는 제도로 역할을 해왔다. 그러는 와중에 집값에 대한 상승 여력이 크지 않다고 시장에서 판단하는 경우 전세의 월세화가 진행됐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전세제도는 우리나라의 특수한 제도일까? 안티크레시스(Antichresis)라는 전세계약이 기원전 15세기 메소포타미아에 존재했다. 초기의 전세는 메소포타미아 문명권과 그리스·로마를 거쳐 초기 중세시대 대륙법(Civil Law) 아래 있던 프랑스와 스페인 등에서도 흔적을 찾을 수 있다. 근대에 와서는 1804년 나폴레옹법전에도 등장하며 남부 프랑스에서도 시행됐다. 미국 루이지에나주와 아르헨티나, 볼리비아를 포함한 남미 국가의 민법에도 전세제도가 명시돼 있다. 이들 중 대다수의 나라에서는 전세가 실존하지 않지만, 한국에만 남아있는 유일한 임대차계약은 아니다. 지구 반대편 볼리비아에 안티크레티코(Anticretico)라고 불리는 전세계약이 이뤄지고 있다. 안티크레티코는 안티크레시스의 스페인어로 안티(Anti)는 그리스어로 ‘대가(against)’를, 크레시스(Chresis)는 ‘사용(use)’을 뜻한다. 볼리비아의 안티크레티코는 우리나라의 전세와 매우 유사하며, 전체 가구의 5% 내외가 안티크레티코 계약을 맺은 임대주택에 거주하고 있다. 통상 계약기간은 2년이며 입주 때 전세금을 집주인에게 지불하고 계약 종료 때 집을 비워주면서 동일한 금액을 반환받게 된다.

집주인은 다주택자인 경우도 있지만, 우리와 유사하게 자기 집을 전세 주고 본인도 전세나 월세로 거주하는 경우도 많다. 우리의 전세와 다소 다른 점도 발견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세입자가 거주하는 대가로 임대료를 지불하는 개념이지만, 볼리비아의 안티크레티코는 집주인이 세입자로부터 돈을 빌리는 대출(Loan) 방법의 일종으로 인식하는 경우도 있다는 점이다. 계약기간이 만료됐는 데도 전세금을 돌려주지 못하면 극단적인 경우 소유권이 세입자에게로 넘어갈 수도 있다. 볼리비아에서 전세계약을 할 때는 변호사를 통해 법원으로부터 주택에 설정된 다른 권리(저당권 등)가 없다는 것을 확인받도록 하며, 등기부에 기록하도록 했다. 또 쌍방의 합의에 따라서는 보증금을 기한 내에 반환하지 못할 경우 소유권이 자동적으로 임차인에게 귀속되도록 계약서를 작성할 수도 있다. 현재 볼리비아에서는 등록되지 않은 임대차계약이 많고 이런 계약은 주거 안정성이 매우 취약하므로 안티크레티코는 임차인 입장에서 상대적으로 안전한 임대차계약으로 평가받고 있다.

인도의 전세의 경우 극소수 지역에서 특수하게 나타난다. 2~3년간 정해진 목돈을 지불하고 계약이 만료되면 임대인은 이자 없이 원금만 지불한다. 만약 임대인이 계약 만료 때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면 집은 임차인에게 양도된다.

전세의 역사가 기원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만큼 뿌리가 깊다는 점은 우리에게 전세를 탄생과 소멸의 단선적인 과정이 아닌, 감소와 증가라는 순환적 과정으로 바라볼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나라와 볼리비아에서 공통적으로 전세계약의 비중이 감소하고 있다는 점은 세계적으로 희귀한 전세가 곧 멸종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기준금리 1% 시대, 전세제도 영향은?

다수의 국내 전문가들은 우리의 전세 감소와 월세 증가 현상을 세계화되는 주택시장의 흐름으로 보며, 가격 상승 기대가 사라지면 전세의 소멸은 불가피한 자연스런 현상으로 받아들이는 듯하다. 그런데 왜일까? 거주의 선진화가 아니라 양극화의 진전으로 월세가 증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허전한 마음이 든다. 전세가 감소한다면 (물론 등락이 있어 증가하는 현상도 있음) 그게 주택시장 발전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닐 수도 있다. 소득 정체로 전세금을 올려줄 수 없는 세입자들이 불가피하게 월세시장(반전세 포함)으로 편입되고 있는 것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대다수 전세의 월세 전환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겠다.

한국은행의 금리 인하로 역사상 기준금리가 가장 낮은 1.25%대가 곧 깨지고 1% 이하로 낮아질 수도 있다. 가계부채가 많은 상황에서 금리가 지속 하락하는 것은 부채관리에 상당히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기준금리 인하는 금리 경로, 자산가격 경로, 신용 경로, 환율 경로, 기대 경로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정부의 금리 인하 조치는 다양한 금리 파급경로를 통해 기업 투자 확대, 가계 소비 증대로 내수 경제를 진작시키고, 수출기업들이 국제시장에서 가격경쟁력을 지녀 대내외적으로 경제 활력을 되찾게 하기 위한 판단이 작용한 것이다.

그러나 금리 인하는 긍정적 파급효과 외에 부정적인 효과도 초래한다. 대출을 받아 원리금을 상환하고 있는 가구나 대출을 받을 계획을 가지고 있는 가구에게 금리 인하는 좋은 소식이다. 게다가 신축주택 공급계획을 가지고 있는 건설사에게도 금리 인하는 희소식이다. 그러나 금리 인하는 지속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전세 가구에게 좋은 소식만은 아니다. 월세화의 속도가 더 빨라지면서 전세가격 상승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전세제도는 주택가격이 상승하고 고금리일 때, 집주인과 세입자가 동시에 만족할 수 있는 임차방식이다. 반대로 주택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가 적고 저금리이면 집주인 입장에서 전세보다는 월세가 더 유리하기 때문에 집주인은 전세주택을 월세 주택으로 더 빠르게 전환하려고 할 것이다. 결국 전세를 찾는 세입자와 월세를 놓는 집주인 간의 수급 불일치로 전세가격 상승 현상이 지속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

서울의 경우 주택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기준금리가 더 낮아지게 되면 어떤 현상이 발생할지 궁금해진다. 여전히 주택가격이 상승하는 한 전세를 끼고 집을 사려는 수요는 있기에 저금리라도 전세는 여전히 인기가 있을 수 있다. 집값이 마냥 상승할 수 없는 상황에서 기준금리와 전세가격의 인과관계를 생각해 본다. 기준금리 인하가 단독이나 연립과 같은 비아파트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친다고 할 수 없지만, 아파트 전세가격에는 유의미한 영향을 줄 수 있다. 전세가격은 통상적으로 9~10개월 정도 후행한다. 이는 기준금리 인하가 바로 시장에 영향을 주기보다는 금리의 파급경로에 따라 장·단기 금리에 영향을 미치는 시차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전세화의 월세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비아파트보다는 보증금 규모가 커서 월세화의 속도가 더디 나타나고 있는 아파트 전세시장을 중심으로 더 많은 영향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결국 금리 인하는 아파트에 살고 있는 전세 가구에 더 많은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전세입자들이 다음 거처를 선택할 때 대안은 무엇일까. 주택 구입, 월세 전환, 전세 유지의 방법이 가능하겠다. 시장은 지속적으로 기준금리 인하를 선택할 것이고 이로 인해 매매와 전세시장의 불안심리가 커질 수 있다. 전세시장의 불안심리 확산은 주택 구입 여력이 있는 고가 전세 세입자에게는 큰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주택 구입 여력이 부족하고 월세 전환마저 주거비 부담 증가로 이어지는 중·서민층에게 더욱 위협적이다. 비아파트와 저가 아파트 중심의 빠른 월세화는 오히려 주거격차를 더욱 심화시킬 수도 있다. 그래서 정부는 기준금리 인하의 그늘에 있는 ‘가계부채 증가’와 ‘전세가격 상승으로 인한 서민의 주거 불안정 확산’에 대한 세밀한 관리 전략을 그래서 고심해야 한다.

가계의 부에서 부동산 비중이 큰 한국

우리나라의 가계의 부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다른 나라와 비할 수 없을 만큼 크고 금융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작다. 그 원인이 고금리 상황에서 전세제도에 기인한 바 크다. 금리의 지속적인 하락은 전세제도의 유용성을 저하시키고 있는데, 반면 최근 집값 상승은 전세제도의 존속을 연장시키고 있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저금리와 마이너스 금리가 부동산에 미치는 영향을 먼저 살펴보자. 마이너스 금리로 돈을 빌리면 사실상 빌린 돈보다 덜 갚게 된다. 애플은 마이너스 이자율의 유럽 채권을 발행했는데, 이는 애플이 돈을 빌리기 위해 나중에는 돈을 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에서 금리가 마이너스로 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물론 조만간 미국에서 마이너스 금리가 나올 것 같지는 않다. 연방기금금리(FFR, Federal Fund Rate)는 여전히 2%를 넘고 10년 만기 재무부 수익률은 약 1.5%이다.

미국 이외 나라의 채권 중 45%가 현재 마이너스 금리인데, 모두 합쳐 약 15조 달러 상당의 채권이다. 혹자는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금리 인하 압력을 받고 있어 불황이 일어나기 전에 금리를 몇차례 인하하면 마이너스 금리가 경기 부양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한다. 모를 일이다. 마이너스 금리는 주택담보대출과 투자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마이너스 금리는 미국 경제에 대한 신뢰를 잠식할 수 있기에 주식시장의 하락을 야기할 수 있다. 일부 업종은 특히 타격을 입을 것이다. 은행들은 수익률이 하락할 것으로 예상하는데, 이자 수입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반면 마이너스 금리가 미국까지 확산될 경우 부동산은 몇 안 되는 수혜 대상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부동산 투자자들에게 마이너스 금리는 대출을 훨씬 더 싸게 만드는 원리로 작용한다. 국채 수익률이 마이너스라 해도,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마이너스로 바뀔 가능성은 작다. 그러나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장기 채무상품에 따라 움직인다고 가정할 때, 분명히 큰 폭의 하락이 있을 수 있다. 2019년 11월 현재 30년 만기 고정금리 주택담보대출의 평균 APR(Annual Percentage Rate)은 약 3%대이고, 30년 만기 국고채 수익률은 2%에 머물고 있다. 만약 30년 만기 재무부 수익률이 전례 없이 1% 혹은 심지어 0.5%로 떨어진다면, 이는 쉽게 3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2%~2.5%의 범위로 떨어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만약 당신이 부동산에 투자하려고 20만 달러를 빌리고 있다고 하자. 금리 하락으로 당신의 월간 부채 비용은 감소할 것이고, 부동산 현금흐름이 종전보다 좋아 질 것이다. 부동산 리츠회사가 수익률이 3%인 채권을 발행하고 그 돈을 수익률이 8%인 부동산을 매입하는 데 사용할 수 있다면, 수익률은 5%이다. 나아가 수익률이 0%나 1%인 채권을 발행할 수 있다면 마진도 훨씬 좋아질 수 있다.

추세적으로 금리가 내리막길이라고 하자. 10년 이상 장기 대출 때 고정금리보다 변동금리가 나을 것이다. (집값의 적정성을 아무도 모르지만, 집값이 적정하다고 한다면) 전세로 살 바에는 내 집을 사는 게 나을 수 있다. 국채 10년 금리가 0%대에 진입한 국가들의 고령화율과 한국의 인구 추계를 이용해 추정해 보면 한국도 국채 10년 금리가 몇 년 안에 0%대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제로 금리로 마이너스 성장이 특이하지 않은 상황이 도래할지 모르지만, 경제가 마이너스의 영역에 있다고 이게 과거와 같은 금융위기를 초래한다고 말하는 것은 비약이다. 이런 상황에서 제로 금리로 가계는 저축을 줄이고 부동산과 같은 위험자산에 투자를 늘려 수익률을 높이려고 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몇 가지 추정을 할 수 있겠다. 저물가와 저성장이 주택시장의 기본 환경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 주머니 시정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오른 주택에 과감히 달려들기는 버겁다. 그래서 수요가 뒷받침되는 인기 있는 곳에 투자하는 것이 더 높은 수익률을 올릴 수 있다고 생각해 이곳으로 돈이 몰릴 수 있다. 부동산시장의 차별화가 예상되는 것이다. 핵심 지역 또는 개발 이슈가 있는 곳은 수익률을 제대로 실현하는 곳이기에 이런 곳으로 투자처가 한정될 전망이다. 은행의 예금 금리가 제로에 가까워질수록 부동산시장은 월세와 임대를 중심으로 재편되고 전세는 지속적으로 축소될 것이다. 낮은 금리가 가속화되고 장기적으로 부동산 가격이 안정화된다면 그런 경향은 증가할 것이다. 마이너스 금리 시대에 재산이 집밖에 없는 사람들은 전세를 선호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여러모로 전세의 존속에 어려움이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 필자는 국제경제 전문가로 현재 기획재정부 국장(국립외교원 파견)이다. 대한민국 OECD 정책센터 조세본부장, 대외경제협력관, 국제금융심의관 등을 지냈다. 저서로 [한 권으로 읽는 디지털 혁명 4.0] [식탁 위의 경제학자들] [명작의 경제] [법정에 선경제학자들] [나를 사랑하는 시간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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