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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시간넘게 합의문 못낸 동맹, 지소미아에 한미동맹 시계제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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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ㆍ미동맹이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ㆍ지소미아) 종료 문제로 시계제로로 향하고 있다. 청와대는 15일 일본이 바뀌어야 지소미아 종료를 변경할 여지가 있다는 뜻을 알렸는데 이날까지도 일본은 바꿀 생각을 보여주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은 “북한만 득을 본다”며 종료 결정 재고를 요구했다. 한·미·일의 이같은 관계가 계속될 경우 오는 22일 자정을 기점으로 지소미아가 종료될 수밖에 없어 한ㆍ미 관계에서 전례를 찾기 어려운 변곡점이 다가오고 있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과 마크 에스퍼 미 국방부 장관이 15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에서 제51차 한?미 안보협의회(SCM) 고위회담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마친 뒤 손을 맞잡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정경두 국방부 장관과 마크 에스퍼 미 국방부 장관이 15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에서 제51차 한?미 안보협의회(SCM) 고위회담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마친 뒤 손을 맞잡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오후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을 접견한 자리에서 “안보상으로 신뢰할 수 없다는 이유로 수출규제 조치를 취한 일본과 군사정보를 공유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문 대통령은 또 “한ㆍ미ㆍ일 간 안보 협력도 중요해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밝혔다고 고민정 대변인이 전했다. 미국이 강조하는 3국의 안보 협력을 계속 유지하겠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공동성명서 핵심 문구 놓고 한·미 이견"

하지만 한ㆍ미동맹은 이미 과거엔 없던 장면을 노출하고 있다. 이날 서울 국방부 청사에서 열린 제51차 한ㆍ미안보협의회의(SCM)에서 양국은 공개적으로 입장차를 드러낸 채 회의를 끝냈다. 이날 SCM은 오후 1시 30분에 끝났는데 이례적으로 5시간 45분이 지나서야 합의 결과가 담긴 공동성명서가 나왔다. 에스퍼 장관과 정경두 국방부 장관이 공동 기자회견까지 마친 후에도 양국이 내놓은 합의문이 없었다는 의미다.

국방부 관계자는 “공동 성명서 문구는 이미 만들어졌는데 에스퍼 장관이 결재하지 못해 늦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박원곤 한동대 국제지역학 교수는 “역대 SCM 가운데 회의 시작 이전까지 양국 국방장관이 공동성명서를 승인하지 않은 적은 거의 없다”며 “아무리 늦어도 SCM 회의가 끝나면서 나왔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정부 소식통은 “한ㆍ미간 핵심 문구를 놓고 이견이 있어 에스퍼 장관이 서명하지 않았다”며 “지소미아 관련”이라고 귀띔했다.

에스퍼 장관은 공동 기자회견 후 전쟁기념관에 들렀다. 오후 4시 문재인 대통령을 접견한 뒤엔 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과 만났다. 공동성명서 발표가 늦어진 이유를 놓고 공동성명서를 확정하기 이전에 미국 측이 국방부가 아닌 청와대를 상대해야 할 사안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한ㆍ미동맹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사건”이라며 “미국이 한국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오후 청와대 본관 접견실에서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과 해리 해리스 주한미국대사 등을 만나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오후 청와대 본관 접견실에서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과 해리 해리스 주한미국대사 등을 만나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청와대사진기자단]

나란히 서서 다른 얘기한 한·미 국방

정 장관과 에스퍼 장관이 나란히 서서 진행한 공동 기자회견은 그간 ‘빛 샐 틈이 없다던 한ㆍ미동맹’이 얼마나 벌어져 있는지를 확인해 주는 자리라는 평가가 나온다. 두 장관은 현안마다 말이 달랐다. 에스퍼 장관은 지소미아에 대해 “전시 상황을 생각할 때 한ㆍ미ㆍ일이 효과적으로 적시에 정보를 공유하는 게 중요하다”며 “지소미아를 종료하도록 방치하면 (정보 공유의) 효과가 약해지기 때문에 (한ㆍ일) 양측이 이견을 좁힐 수 있도록 촉구했다”고 했다. 그는 특히 “지소미아를 종료하거나 한ㆍ일 관계가 갈등ㆍ경색한다면 득을 보는 나라는 중국과 북한”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공통의 위협이나 도전에 (3국이) 대응할 수 있도록 다시 관계를 정상 궤도로 올리기 위해 노력해야만 할 이유가 있다”고 말했다.

에스퍼 "지소미아 방치 안 돼"

이에 정 장관은 “지소미아는 본 회의의 주제는 아니었다”면서도 “에스퍼 장관과 개인적인 의견 교환이 좀 있었다”고 시인했다. 그러면서 “일본이 안보 상황 문제로 한국을 신뢰할 수 없다며 수출규제를 했기 때문에 우리 정부가 심사숙고 끝에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내렸다”며 “에스퍼 장관과 미국이 일본에 대해 적극적인 노력을 해 달라고 당부했다”고 말했다. 국방부는 “한ㆍ일 관계 개선을 위해 일본의 전향적 태도 변화를 끌어낼 수 있도록 미 측의 적극적인 관심과 협력을 당부했다”고 설명했다. 이는 일본의 책임을 거론하면서 미국의 개입을 요구했다는 뜻이다. 그러나 에스퍼 장관이 국방부 기자회견에서 내놓은 요구는 일단 한국의 지소미아 복귀였다. 홍규덕 숙명여대 정치학과 교수는 “한국이 지소미아를 종료할 경우 이를 말렸던 미국은 보복 조치에 나설 수 있다”며 “당장 대북 정보를 일부 차단하는 등 눈에 안 보이게 보복할 수 있다. 결국 이는 한국 내 반미 여론을 부추겨 한ㆍ미동맹이 흔들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지난해 6월 포항시 독석리 해안에서 한·미 해병 8000여 명이 참가한 대규모 상륙훈련 [중앙포토]

지난해 6월 포항시 독석리 해안에서 한·미 해병 8000여 명이 참가한 대규모 상륙훈련 [중앙포토]

정경두 "공평한 수준서 방위비 결정"

에스퍼 장관은 또 “연말까지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이 늘어난 상태로 제11차 방위비 분담금 협상(SMA)을 체결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 국방장관을 옆에 세워 놓은 채 한국 국민에게 ‘연내 증액 타결’을 선언한 것이다. 에스퍼 장관은 “한국은 부유한(wealthy) 국가이며, (방위비를) 조금 더 부담할 수 있고(could), 조금 더 부담해야만 한다(should)”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이 지출한 방위비 분담금의 90%는 다시 한국으로 그대로 들어오는 예산”이라며 “그런 의미에서 미국은 한국뿐만 아니라 다른 우방국, 동맹국이 방위비 분담금을 인상한 수준으로 요구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앞서 정 장관은 모두발언에서 ”방위비 분담금은 공평하고 상호 동의 가능한 수준에서 결정해야 하며, 제10차 SMA 만료(다음달 31일) 이전에 타결해야 한다는 것에 양국이 공감했다“고 말했다. 정 장관이 ‘공평’과 ‘상호 동의’를 강조했는데, 에스퍼 장관은 ‘인상’으로 평행선을 달린 것이다. 두 장관은 ‘올해 안 타결’이라는 원칙에는 합의했지만 정부는 미국이 요구한 50억 달러 분담금을 받아들일 생각이 전무하다.

양국 국방장관이 공감한 건 이달 한ㆍ미 공군이 실시하는 연합훈련을 재조정하는 정도였다. 에스퍼 장관은 “외교적 문이 닫히지 않도록 지원한다”고 말했고, 정 장관은 “비핵화를 위해 최적의 결심을 할 것”이라고 했다. 에스퍼 장관이 기내에서 “연합훈련을 다소 조정할 것”이라고 말하자, 김영철 북한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위원장은 14일 심야에 “긍정적인 노력으로 평가한다”고 반응했다. 국방부 당국자는 “현재까지 (연합훈련 계획이) 바뀐 것은 없지만, 미국 측과 계속 협의 중”이라고 말했다. 한ㆍ미는 전시작전통제권 전환과 관련해 지난 8월 미래연합군사령부의 기본운용능력(IOC) 검증 결과를 승인한 뒤 이를 토대로 2020년 완전운용능력(FOC) 검증을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정 장관과 에스퍼 장관은 19일까지 태국 방콕에서 열리는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ㆍ아세안) 확대 국방장관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16일 함께 한국을 떠난다.

미 합참의장, 서울서 한·미·일 화상회의 

한편 박한기 합참의장은 마크 밀리 미 합참의장, 야마자키 코지 일본 통합막료장과 함께 화상회의를 열어 동아시아 지역의 평화와 안전보장을 위한 다자간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이 자리엔 필립 데이비슨 미 인도ㆍ태평양사령관 로버트 에이브럼스 한ㆍ미연합사령관, 케빈 슈나이더 주일미군사령관이 참석했다. 동아시아를 책임지는 미군 지휘부가 총출동했다. 합참은 3국의 합참의장이 역내 평화와 안정을 증진하기 위해 상호 안보 현안들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고, 다자협력을 넓혀 나가는 데 동의했다고 밝혔다. 이를 놓고 미국 측의 압박으로 지소미아에 대한 한·미·일 3각 협의가 열렸다는 관측이 다수다.

이철재 기자, 박용한 군사안보연구소 연구위원 seaj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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