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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통성 없는 편집광 왕자…상드, 소설로 쇼팽 흉봤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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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송동섭의 쇼팽의 낭만시대(50)

프레데릭 쇼팽. 1838년경, 연필화. 루이기 칼라마타. 바르샤바 쇼팽기념관 소장. [출처, Wikimedia Commons]

프레데릭 쇼팽. 1838년경, 연필화. 루이기 칼라마타. 바르샤바 쇼팽기념관 소장. [출처, Wikimedia Commons]

상드는 번잡한 파리보다 노앙에 머무는 것을 선호했다. 가을이 되면 쇼팽이 먼저 파리로 돌아가고 상드의 합류는 늦는 경우가 많았다. 1845년 겨울부터 이듬해 봄까지 상드와 쇼팽이 주고 받은 편지는 확연히 줄었다. 상드도 건강이 좋지 않았지만 쇼팽은 더 아파서 감기에, 심한 기침이 끊이지 않았다.

쇼팽의 상태는 때로 위중해서 몰린 박사를 급히 불러야 할 때가 잦았고, 주위 사람들을 긴장시키기는 경우도 있었다. 상드는 쇼팽이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어서 지나치게 건강에 신경 쓴다고 투덜댔다. 하지만 그의 쇠약은 확연했다. 1846년 4월 중 쇼팽은 투르에 있는 친구 프랑숌의 집에 머물며 다소 활력을 찾았다. 쇼팽이 좋아져서 돌아왔지만 상드는 잔소리와 트집잡는 것이 늘었다고 그를 비난했다.

상드는 여전히 사랑이 실린 애칭을 사용해서 쇼팽을 불렀다. 하지만 그녀도 집안에 형성된 한쪽의 모리스와 자신, 그리고 다른 한쪽의 쇼팽과 솔랑주 사이에 생긴 묘한 기류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오귀스틴의 입양 이후로 더 자주 일어나는 갈등은 집 주인 상드로 하여금 쇼팽과 아들 모리스 사이에 선택을 하도록 몰고 가는 분위기였다.

그것은 상드에게 큰 갈등을 주는 문제가 아니었다. 상드의 눈에 쇼팽은 이미 질투가 심하고 뚱하게 삐친 모습으로 각인되어있었다. 어느 날 상드는 쇼팽은 없어도 참을 수 있지만 모리스가 없으면 걱정에 빠지게 된다고 친구에게 털어놓았다. 상드의 속내는 얼마 가지 않아 매우 분명한 방식으로 만천하에 드러났다.

1846년 5월, 노앙에서 상드는 새 소설 『루크레지아 플로리아니(Lucrezia Floliani)』을 완성했다. 상드는 여기에 정성을 기울였다. 그런데 소설의 내용이 의미심장했다. 이 소설은 누가 봐도 쇼팽과 그녀의 관계를 염두에 두고 쓴 소설이었다. 그녀의 작품은 대부분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아름다운 여주인공 루크레지아는 3명의 남자에게서 4명의 자식을 두고 30세에 은퇴하여 고향의 호숫가에서 목가적인 삶을 살고 있다. 그 때 쓸쓸해 보이는, 연약하나 섬세한 남자주인공 카롤 왕자가 나타난다. 루크레지아보다 6살이 아래인 카롤은 자신을 과잉 보호하던 어머니를 잃고 동시에 연인도 잃은 후 실의를 극복하려 여행하던 중이었다.

루크레지아에게 잠깐 스쳐 지나갈 줄 알았던 카롤은 갑자기 심한 병에 걸려 쓰러지고 여주인공은 헌신적으로 그를 보살펴서 회복 시킨다. 그러던 중 두 사람은 열렬한 사랑에 빠진다. 소설 속에서 여주인공은 너무 관대하고 너무 순수하며 너무 희생적인 모습이다.

조르주 상드. 루이기 칼라마타. 1840. 판화. Isabelia Stewart Gardner Museum(미국, 보스턴) 소장.

조르주 상드. 루이기 칼라마타. 1840. 판화. Isabelia Stewart Gardner Museum(미국, 보스턴) 소장.

여주인공이 서민적이고 솔직한 개방적인 사람인데 반해 폴란드식 이름을 가진 독일인 카롤은 귀족적이고 말이 별로 없었으며 속을 잘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다. 여자가 독립적이고 전통에 무관심한데 비해 남자는 도덕적으로 융통성도 없고 관습에 매인 사람이다.

루크레지아를 만나기 전 카롤의 여성이라고는 헌신적인 어머니와 죽은 약혼자가 전부였다. 그는 24세에도 성적인 경험이 없었고, 자신의 순결을 완전히 영혼의 제단에 바친, 경멸과 두려움으로 성애(性愛)를 거부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아름다운 전원에서의 짧은 행복한 시기가 지나자 두 사람의 사랑은 엉뚱하게 변질된다.

카롤은 스스로의 꽉 막힌 세계에 갇혀 루크레지아에게 자신의 생각과 행동 방식을 강요하고, 그녀를 속박하여 독점적으로 차지하려 한다. 카롤은 뚱한 내성적 성격 속에 근거 없는 심한 질투와 외골수적 철학으로 루크레지아를 숨막히게 한다. 행동은 예의와 교양이 있고 공손하지만 그 뒤에 숨은 카롤의 편집광적인 성격은 은근하면서도 집요하게 루크레지아를 괴롭힌다.

차라리 밖으로 소리치거나 불만을 드러내면 좋으련만 카롤의 말없이 압박하는 삐뚤어진 사랑은 루크레지아를 힘들게만 만든다. 카롤의 속박을 벗어나려 10년간 애쓰던 여주인공은 뇌졸중으로 쓰러지고, 결국 죽음으로써 그 굴레를 벗는다.

소설 속에서 순수하나 병약하고 우수에 찬 모습으로 그려진 카롤의 첫 인상은 쇼팽의 젊은 날의 모습과 닮았고, 두 주인공의 6살의 나이차이도 쇼팽과 상드의 관계와 같았다. 카롤은 여주인공의 아이들도 좋아하지 않았다. 여주인공은 까만 피부 톤에 작고 통통하여 상드와 닮았다. 그 여주인공은 상드가 스스로 생각하는, 혹은 남들이 봐주었으면 하는, 자신의 모습이 틀림없었다.

두 사람의 오랜 친구 들라크로와도 그 때 노앙에 같이 있었다. 상드는 몇 번에 걸쳐 거실에서 쇼팽과 들라크루아를 앞에 두고 새 소설을 읽어주었다. 들라크루아는 상드가 읽어 주는 것을 듣고 깜짝 놀랐다. 소설 속에서 여주인공은, 오직 동정심에서 나온 사랑에 빠져 ‘가치도 없는 남자’에게 자신을 바치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었다.

쇼팽이 그토록 가치 없는 남자인가? 그가 그녀에게 속박이었던가? 쇼팽이 편광적으로 자신의 세계에 빠져 상드를 숨 막히게 하는 존재란 말인가? 소설에서처럼, 그들 관계에서 쇼팽은 가해자이고 상드는 피해자인가? 쇼팽과 함께 그것을 듣는 것은 고문을 받는 듯 괴로운 일이었다. 그는 쇼팽이 받을 상처와 충격을 염려했다.

상드의 소설 루크레지아 플로리아니의 표지. 브뤼셀의  C. Mucquardt 출판사본. 1846년. [출처 open library]

상드의 소설 루크레지아 플로리아니의 표지. 브뤼셀의 C. Mucquardt 출판사본. 1846년. [출처 open library]

그런데 소설 속 주인공인 두 사람의 현실에서의 반응은 이상하리만치 별다른 것이 없었다. 비방하는 자 상드는 아무일 없는 듯 편안했다. 비방 받는 당사자 쇼팽은 소설에 대해 칭찬의 말만을 할 뿐이었다. 자정이 다 되어서 그는 쇼팽을 부축해서 이층 방으로 인도했다. 병약한 쇼팽은 걷기도 힘들어했고 계단을 오를 때면 숨이 넘어가는 듯해서 도움이 필요했다.

그는 조심스럽게 쇼팽의 반응을 살폈다. 쇼팽은 여전히 무심했다. 이 소설은 신문에 연재되었고 독자들의 뜨거운 반응을 받았다. 쇼팽과 상드의 지인들은 소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았다. 그들은 상드가 소설을 통해서 쇼팽에게 가하는 혐오스런 공격을 알아보았다.

시중에 소설과 작가의 사생활의 연관성에 대해서 말들이 퍼졌다. 쇼팽을 동정하는 사람도 있었다. 들라크루아는 쇼팽이 소설을 충분히 이해를 못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후세의 어떤 분석가는 쇼팽이 세상사람들에게 바보취급을 받는 것보다 모른 채 하는 것을 선택했다고 주장했다. 쇼팽은 이미 몸과 마음의 아픔을 숨기는데 익숙해져 있었다.

상드는 이 소설과 사생활의 연관을 강하게 부인했다. 소설은 소설일 뿐이라는 것이다. 어떻든 명백히 이 소설은 쇼팽에 대한 상드의 마음의 변화를 분명히 한 것이었고 다가올 두 사람의 극적인 종말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이미 상드는 쇼팽의 면전에서 화를 내고 있었다. 상드가 “이젠 더 이상 참을 수 없다”고 윽박질렀기 때문에 그는 그녀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상드는 쇼팽의 변화에 화를 내길 잘했다고 로지에르에게 전했다.

쇼팽은 아버지를 잃고 더 자주 가족에게 편지를 쓰기로 작정했다. 그는 시간이 날 때면 누나 루드비카가 지난 번 노앙 방문 때 머물렀던 옆방을 찾았다. 누나의 향취가 아직 남아 있는 듯 했다. 그는 그곳에서 바르샤바 가족에게 편지를 썼다. 일상의 사소한 일들이 담긴 그의 편지는 이전보다 길어졌다.

방의 창문으로 합승마차가 지나가는 길이 내려다 보였다. 쇼팽은 한해 전 여름, 어머니의 프랑스 방문을 추진했던 것을 떠올렸다. 러시아에서 바르샤바를 거쳐 돌아오는 한 백작부인이 도와준다면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 계획은 실행되지 못했었다. 때마침 길 저 위쪽에서 마차 한대가, 마치 꼬리처럼 먼지를 이끌며 달려오고 있었다. 쇼팽은 오랫동안 그리워했던 어머니가 저 마차를 타고 와서 내리는 것을 상상했다. 그 마차는 멈추지 않고 저택의 모퉁이를 돌아 지나갔다.

그 해 여름은 어수선했다. 초 여름부터 큰 비가 계속 왔고, 홍수가 나서 여름 내내 노앙이 있는 베리 지방의 낮은 지역은 물에 잠겨 있었다. 농사는 망쳤고 곡물의 가격은 치솟아 농촌의 민심은 들끓었다. 프랑스 농촌 여러 곳에서 생활고에 찌든 농민들의 폭동이 일어났다.

상드의 소설 루크레지아 플로리아니의 삽화. 삽화를 그린 사람은 상드의 아들 모리스. [사진 구켄베르크 e book 프로젝트]

상드의 소설 루크레지아 플로리아니의 삽화. 삽화를 그린 사람은 상드의 아들 모리스. [사진 구켄베르크 e book 프로젝트]

여름이 끝나고 가을에 들어서자 쇼팽은 어느 때처럼 파리로 가기 위해 노앙을 나섰다. 여전히 늦더위가 있었고 비로 인해 길은 물에 잠긴 데가 많았다. 노앙의 손님이었던 상드의 친구 엠마누엘 아라고와 쇼팽이 르와르 강을 건너기 위해 올리베에 도달하여 보니 강은 위험 수위에 있었다. 무리하게 다리를 건너려던 일행은 다리가 중간이 끊어져 있다는 것을 알았다. 마차는 다리 위에서 옴짝달싹 할 수 없었다.

그들은 강 중간에 멈춰선 마차에서 내려야 했다. 그리고는 위험한 줄사다리를 타고 부서진 다리에서 내려와 가까스로 강가로 다시 나올 수 있었다. 11일 뒤에 쇼팽은 다시 출발하여 파리로 향했다. 이것이 노앙을 떠나는 쇼팽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이 모든 해프닝이 쇼팽을 떠나 보내는 그곳 자연의 특별한 작별방식이었음을 그는 알지 못했다.

이것으로 쇼팽의 좋았던 시절도 끝으로 가고 있었다. 『루크레지아 플로리아니』 속에서 두 주인공의 관계는 약 10년간 지속되다가 끝나는 것으로 되어있었는데, 그 때는 쇼팽과 상드가 처음 만난 지 10년에 다가가고 있었다. 상드는 루크레지아보다도 강해서 절대로 그대로 쓰러지지 않고 왕자를 물리칠 사람이었다.

쇼팽이 유작으로 남긴 왈츠 a단조 작품번호 B.150 (B는 J.E. 브라운의 분류번호이다)은 단순하지만 듣는 이를 추억에 빠지게 하는 마력이 있다. 이 곡을 들을 때면 곡을 완전히 펼치는 것도 힘들어 하는 병약한 쇼팽의 모습이 그려진다. 하지만 이 곡은 그가 아직 힘이 남아있던 때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다음 편부터는 쇼팽과 상드의 결별로 끝맺음 되는 상드가족 주연의 막장드라마가 펼쳐진다.

스톤웰 인베스트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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