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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딸린 관용차 타려는 지방의원 "특권 의식" vs "의정 활동"

중앙일보

입력

박용근 전북도의원(장수)이 지난 8일 열린 제368회 정례회에서 5분 자유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용근 전북도의원(장수)이 지난 8일 열린 제368회 정례회에서 5분 자유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릇된 특권 의식일까, 정당한 의정 활동일까. 지방의회마다 몇 대 안 되는 이른바 '기사 딸린 관용차' 이용을 두고 찬반이 엇갈린다.

[이슈추적] #박용근 전북도의원 '관용차 사유화' 논란 #서울·세종 출장 때 '의정 활동' 배차 요구 #일각선 "사적 용도, 지인 면담 목적" 지적 #朴 "한 번도 개인 업무로 탄 적 없다" 해명 #충북도의장 등 관용차 이용 절제 분위기도 #시민단체 "명확한 배차 기준 만들어야"

지난해 6·13 지방선거로 전북도의회에 입성한 의원은 모두 39명. 이 중 무소속 박용근 의원(장수군)이 서울과 세종시 등에 갈 때 '의정 활동'을 내세우며 도의회 관용차 배차를 요구해 "관용차를 사유화한다"는 지적이 일각에서 나온다. 정작 박 의원은 "개인적으로 탄 적이 없다. 원활한 의정 활동을 위해서는 관용차 지원을 늘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14일 전북도의회에 따르면 도의회가 보유한 관용차는 버스 2대와 승합차 1대, 승용차 4대 등 모두 7대다. 승용차 4대는 중·대형이다. 송성환 도의장 전용차를 빼면 3대뿐이어서 의원들은 상임위원회나 도의회를 대표해 가는 행사에만 제한적으로 관용차를 타고 있다.

전북도의회 관계자는 "의원 대부분이 지역구 행사는 물론 국회 등에 갈 때도 주로 자가용이나 KTX 등 대중교통을 이용한다"고 설명했다. "1년에 관용차를 타고 서울에 올라가는 의원은 손에 꼽을 정도"라는 것이다. "가끔 관내에 큰 행사가 있거나 의원 여럿이 참석할 때에만 상임위원회 전문위원실을 통해 관용차 배차를 요구한다"고 했다.

지난해 7월 2일 전북 전주시 전라북도의회에서 열린 제11대 전북도의회 개원식에서 송성환(맨 앞줄 가운데) 도의장 등 의원 39명과 송하진 전북도지사, 김승환 전북교육감 등이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뉴스1]

지난해 7월 2일 전북 전주시 전라북도의회에서 열린 제11대 전북도의회 개원식에서 송성환(맨 앞줄 가운데) 도의장 등 의원 39명과 송하진 전북도지사, 김승환 전북교육감 등이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뉴스1]

올해 도의회 관용차를 이용해 서울 출장을 다녀온 의원은 모두 5명, 19차례인 것으로 확인됐다. 국주영은 의원 등 4명은 1~3차례 국회에서 열린 공식 회의나 토론회, 지방분권 TF 회의 등에 참석했다.

가장 많이 관용차를 이용한 박 의원의 배차 목적은 5차례 모두 '의정 활동'이었다.  하지만 도의회 일각에선 "박 의원이 사적인 용도나 지인 면담을 위해 관용차를 이용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국주영은 의원은 박 의원을 지목하지는 않았지만, "공적인 성격을 띤 행사에 초대되거나 도의회를 대표해 가는 자리라면 얼마든지 관용차를 지원받을 수 있지만, 성격이 불명확하거나 개인적인 의정 활동까지 관용차를 이용하는 건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이에 박 의원은 "국회에서 정세균 전 국회의장이나 고창 출신 안규백 국방위원장을 만나거나 의원 보좌관 등을 면담했다"며 "산업자원부 근무 때 쌓은 인맥을 활용해 지역구인 장수군을 비롯해 도내 타 시·군이 부탁한 예산 확보를 지원하기 위해 관용차를 이용했을 뿐 사적으로 탄 적은 한 번도 없다"고 반박했다. 박 의원은 정세균 전 의장이 산자부 장관 시절 정책보좌관이었다. 그는 "세종시에 갈 때도 대부분 기재부나 산자부 등 정부 부처를 방문했다"며 "전북대 산학협력교수를 한 적이 있어 김동원 전북대 총장 등과 함께 기재부 교육 담당 과장을 만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오히려 박 의원은 "원활한 의정 활동을 위해서는 관용차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장거리 운전 중에 민원 전화를 받고 처리하느라 사고 날 위험이 크다"는 게 이유다. "의원이 사고가 나면 지역 주민도 피해를 본다"는 취지다. 박 의원은 "전북도의원의 의정비는 연간 약 4800만원으로 행정직 공무원 급여와 비교하면 7급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라며 "의정비를 올리지는 않더라도 지역 주민과 편하게 만나 민의를 수렴할 수 있는 방향으로 시스템을 보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6월 28일 전북 전주시 전북도의회에서 직원들이 6·13 지방선거 당선으로 11대 전북도의회를 구성할 도의원들의 명패를 정리하고 있다. [뉴스1]

지난해 6월 28일 전북 전주시 전북도의회에서 직원들이 6·13 지방선거 당선으로 11대 전북도의회를 구성할 도의원들의 명패를 정리하고 있다. [뉴스1]

지난 11일 전북도의회 행정사무감사에서도 일부 의원이 "회기 중 상임위 단위에서 가야 할 현장이 많은데, 전북을 벗어나거나 전북 내에서도 거리가 먼 시·군을 둘러볼 때는 관용차 지원을 확대해 줄 것"을 의회사무처 측에 요구했다. 한준수 의회사무처장은 "회기에는 관용차 배차 일정이 빽빽해 운전직이 바쁘다"며 "하지만 의원 보좌 기구로서 상임위 전문위원실이나 사무처 직원 차량을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취지로 답변했다. 이를 두고 "의회사무처가 직원 인사와 승진에 절대적 영향력을 가진 의원들의 요구를 거절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관용차를 최대한 자제하는 지방의원도 적지 않다. 장선배 충북도의회 의장은 지난해 7월 취임 이후 출·퇴근은 물론 주말 공식 행사에도 의장 전용 고급 관용차 대신 본인 승용차를 이용해 '소탈한 행보'라는 평가가 많다.

박병술 전주시의회 의장도 관용차는 업무용으로만 쓰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로 시의장이 꼭 가야 하는 공식 행사가 있거나 하루에 행사가 몰릴 때만 관용차를 부르는 식이다. 그는 "운전직·수행비서 등 공무원도 편하고 나도 편하려고 관용차 이용은 절제한다"고 말했다.

이창엽 참여자치전북시민연대 사무처장은 "관용차는 의회 차원의 공식적인 업무에 이용하기 위해 제공되는 건데 의원 개인 용무나 지역구 의정 활동에 관용차를 임의대로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의원들 스스로 무엇이 관용차가 필요한 공식 업무이고 의정 활동인지 명확한 기준이 담긴 규정부터 만들 필요가 있다"고 했다.

지난해 7월 2일 전북 전주시 전라북도의회에서 열린 제11대 전북도의회 개원식에서 도의원들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뉴스1]

지난해 7월 2일 전북 전주시 전라북도의회에서 열린 제11대 전북도의회 개원식에서 도의원들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뉴스1]

전주=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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